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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설교본문 : 로마서 4:18~5:11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1년 11월 28일
서 론 :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를
율법과 믿음과의 관계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구약의 율법도 본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었으나
사람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사람의 죄가 무엇인지만을 밝히는 죄의 증명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보다 나은 의를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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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해서
이 땅의 사람들이 모두 다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한 믿음이라야만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한 믿음이 무엇인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우리를 의롭게 할 믿음이란 무엇인가(4:18~25)
1. 믿음의 예 :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은 아브라함
1) 구원을 얻는 믿음의 모범 : 아브라함의 믿음
그러면 율법이 하지 못한 구원의 길을 여는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본문에서 주께서 받으실만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어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복의 근원’의 복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고 …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18~20절).
2)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으니(18절)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때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였습니다.
그때에도 아이를 낳기 힘들 때였는데,
아브라함은 그 후에도 25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가 그의 아들처럼 40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결혼한 후 무려 60년 동안이나 자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라는 구절이 담긴 의미란 바로 이것입니다.
3) 확신하였으니, 설득되었으니(21절)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확신했다’라는 이 말은 ‘설득되었다’라는 말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성격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되었다는 말입니다.
자신도 100세이고 아내 사라도 이미 90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이 능히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에 설득되어
믿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 묵상 :
① 무엇에 설득되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국 무엇에 설득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에 설득되어
그 소망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 자가 되고,
중간에 세상에 설득되어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멸망의 사람이 됩니다.
② 설득되기 이전에 욕심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에 설득되기 이전에 내 마음에 욕심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욕심이 있었기에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기라는 마귀의 유혹에 설득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에 대한 시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간신배들의 말에 설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말씀을 채우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세상의 헛된 말에 설득되지 않고,
우리를 영생으로 이끄는 진리의 말씀에 설득되는 자들이 됩시다.
2. 우리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1)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18~22절)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믿음을 의로 인정하실 때에
‘복의 근원’이라는 복을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도 계속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향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2) 이방인인 우리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23~24절)
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브라함이 육신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이지만,
신앙적인 면에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나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속에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를 위한 것
1)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자를 믿는 자를 의로 여기심(24절)
(24절 성경구절 위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니
이 믿음을 그에게 의로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다시 살리실 줄을 믿으면 이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나도 다시 살아나게 하실 줄 믿으면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셔서 그가 죄를 범한 자일지라도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2) 우리의 범죄 때문에 내어줌이 되신 예수님(25절)
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예수께서 대신 죽음에 내어줌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대신 우리가 받을 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죄 없는 자로 여기시기 위해
예수께서 죄 있는 자처럼 취급받고 그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3) 우리가 의롭다고 여김 받기 위해 고통당하신 예수님(25절)
(25절 성경구절 위에)
우리가 의롭다고 여김받기 위해 예수께서 고통당하셨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우리가 영원히 멸망 당하게 될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기 위해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살아나신 부활의 몸을 제자들에게 친히 보이셔서 그들의 믿음을 도우셨습니다.
그 모든 일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께 설득되어
초대교회를 일으킨 주님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 묵상 : 우리도 예수께 설득되는 자들이 됩시다.
이 세상을 만드신 그이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왕께서 종인 우리가 의롭게 여김 받게 하기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에 설득되고, 그 은혜에 설득되는 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믿는 자가 되고,
가인이나 가룟 유다처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제 2 부 :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5:1~11)
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1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디카이오덴테스)’는 것은 법정 용어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 죄인들을
죄 없다고 무죄 선고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무죄 석방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세례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죄가 없다는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미 우리는 지옥에서 석방된 자들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이미’와 ‘아직 아니’
그러나 우리가 그때 무죄판결을 받고 지옥에서 석방된 자유인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와 허물을 범하는 연약한 육신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무죄판결을 받은 상태로 살아가지만
아직 최종적인 판결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 상태는 아닙니다.
아직 우리는 다시 죄를 범할 수 있는
‘이미’와 ‘아직 아니’의 가변적인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고 무죄판결을 받아서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호소합니다.
계속해서 주님과 교제하여 하나님과 화평한 자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1절)
(1절 성경구절 위에)
1) 하나님과의 화해와 화평을 이루었다는 뜻은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① 첫째, 방탕한 아들을 아버지가 용납한 후에 오는 화해와 화평입니다.
② 둘째, 정죄에서의 구원 : 사형수가 무죄 선언을 받은 후에 누리는 화평입니다.
③ 셋째, 종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자가 누리는 화평입니다.
④ 넷째, 분리와 이탈에서 해방된 자가 누리는 화평입니다.
⑤ 다섯째, 진노에서의 해방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으로 들어온 자가 누리는 화평입니다.
2) 이 평화는 인간 감정의 평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예수 안에서 화평을 누린다는데
내 마음에는 왜 이렇게 고민과 갈등이 가득하냐고 묻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직 연약한 육신을 입은 사람이기에 당연히 고민도 갈등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육신의 일로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겪는 갈등은 죽을병에 걸린 자가 치유된 후에
오늘 저녁을 무엇으로 먹을까 갈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3) 이 평화는 황홀경에 빠진 자의 평온도 아닙니다.
또 이 평화는 엑스타시 상태의 평온도 아닙니다.
은혜를 마치 무당이 굿을 하다가
신비로운 황홀경에 도취 된 것과 같은 상태의 평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아무리 기도해도 그런 신비로운 평온의 상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평화는 이런 무아지경의 평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4) 무죄 선언을 받은 자가 누리는 평온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죄 선언을 받고,
그 죄의 결과로 오는 모든 심판과 진노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번뇌의 양심으로부터 해방되는 평온을 말합니다.
3. 말씀을 통한 성장 :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까지 달려 죽으신 것입니까?
그것을 본문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1)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과거부터 현재) : 1절
(1절 성경구절 위에)
• 칭의(稱義), 의인(義認)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어 하나님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은 것을
‘칭의’, 혹은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때 우리는 주께로부터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께로부터 의로 인정받고(의인),
의로운 자로 여김 받습니다(칭의).
‘의로 인정을 받는다’는 말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저 사람보다 더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가 하나도 없고 그 의도 100% 완벽한 순도의 의를 가지신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같은 완벽한 의를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만 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그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대가로 우리가 값없이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 인정받은 자, 그래서 칭의요 의인입니다.
2)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날마다 거룩해져 가는 현재의 삶) : 2절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성화(聖化) : 생명이 이어가는 것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막 태어난 갓난아이에 불과합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 힘으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갓난아이처럼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날마다 거룩해져 간다는 뜻입니다.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서 계속 그 은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은혜의 세계가 나의 거주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믿음이 생명처럼 자라납니다.
마치 화분에 물을 주면 그 화분의 나무나 꽃이 자라듯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동안
주께서 주신 신령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의 믿음이 자라납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성화’라고 합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미래) : 2, 11절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합니다.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영화(榮化)
‘영화’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천국에 완전히 들어간 상태를 뜻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자는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부터 그날을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
그날의 일을 마치 지금 내 눈에 사진처럼 보이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는 자는
그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메시야 잔치’라고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바로 그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메시야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4 환난을 통한 성장 :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1) 환난은 인내를(3절)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은혜의 세계 속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불신과 반역과 음모와 타락이 만연합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들도 필연적으로 이런저런 고통과 시련에 빠집니다.
마치 포도알이 포도즙 틀에서 짓밟히듯 시련과 고통 속에서 압박을 느낍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신실한 믿음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할 때
환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죄의 독소들이 빠져나갑니다.
그동안 내가 죄를 짓는 동안 마귀가 내 안에 집어넣은 죄의 독소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앙의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인내는 이런 환난의 압력에 최후까지 참고 견디는 능력을 뜻합니다.
2) 인내는 연단(자격)을(4절)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마치 욥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환난과 고통의 압력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가운데 우리는 연단(자격)을 얻습니다.
‘연단’은 혹독한 시련을 통과한 후에 얻은 자격이나 신앙의 인격 뜻합니다.
환난과 인내의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신실한 것임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훈련생이 그 훈련이 잘 되었음을 인정받아 합격증을 받고 훈련장을 나오는 것처럼
환난과 인내를 거치면서 연단을 얻습니다.
자격을 가진 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격이란,
어지간한 어려움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건실한 신앙의 인격을 말합니다.
이 신앙의 인격을 가진 자는 마지막 때의 대혼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3) 연단은 소망을 이룰 줄을 아느니라(4절)
(4절 성경구절 위에)
환난과 인내의 과정에서 연단, 즉 신앙을 가진 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게 되면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누릴 소망을 이루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환난은 내 믿음을 훈련하는 장이면서,
동시에 내 믿음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시험장이 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3절)
(3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기뻐 날뜁니다.
그리고 환난을 영광으로 여기며 자랑합니다.
그 환난과 압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 없는 자는 지금 느끼는 환난만 생각하고 고민에 빠져 있으나,
믿음이 있는 자는 지금 느끼는 이 환난으로
장차 영광을 얻을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제 3 부 : 이 일을 위하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5~8절)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과 은총이신지를,
세상 사람들의 죽음과 비교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법을 잘 지키는 보통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죽는 자는 거의 없고,
특별히 자애롭고 관대한 선한 사람을 위해 죽는 자는 간혹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향하여 적대행위를 한 원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의 상태가
바로 예수님을 향하여 적대행위를 한 주님의 원수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겠다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그 선물에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이 담긴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정표입니다.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교환하거나 맞바꾸어서 균형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친교를 맺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균형이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죄가 전혀 없고, 그 의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예수께서 죽으심과 우리의 죄를 서로 교환하셨습니다.
주님의 피와 우리의 더러운 죄를 맞바꾸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균형을 이루는 자가 된 것입니다.
화목 :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되어, 예수님과 균형을 이룬 자가 되었습니다.
● 묵상 : 죄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처럼 완전한 자가 된 것입니다.
단지 죄를 용서받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완전한 자가 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자가 된 것은 아니지요.
주님을 믿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허물과 죄의 습관들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하면 허물과 죄가 있음에도 전혀 없는 완전한 자로 여김받는 것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교환하고 맞바꾸셨기 때문입니다.
결 론 : 그의 살아나심으로 구원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9~10절).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주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완전한 의를 가진 자로 여김 받았으니,
주의 다시 살아나심으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사랑을 가지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으니,
주님을 찾고 부르는 자들을 얼마나 더 간절하게 살리려 하시겠습니까?
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가 주님과 화목 된 자로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갖고 누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 묵상 :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그 영광의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 영광의 소망을 가진 자를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그 소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말로는 천국의 소망을 가졌다면서 사는 것은
이 땅의 것을 얻기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천국의 소망을 가졌다는 말이 거짓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을 통해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며 소망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주님
주님의 말씀에 설득되어
아브라함처럼 믿음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 믿음으로 굳게 서서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교묘한 방식으로 미혹하는 사교 집단에
미혹되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건강하고 신실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루어
영광의 소망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장차 영광을 누릴 그 약속을 바라보며
환난 중에도 기뻐하며 즐거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 은혜 속에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