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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장막의 대제사장 예수
히브리서 8:1~6
찬송가 86장(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우리는 지난 번에 히브리서 7장에서 히브리서 기록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워져서 항상 살아계셔서 그 백성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심으로 그의 택한 백성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르는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과는 차별된 월등히 탁월한 대제사장이심을 여러 모양으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어지는 8장부터 10장까지 세 장에 걸쳐서 대제사장 예수께서 구약 시대의 율법 하의 제사장들과 달리 언약적 측면에서, 그리고 섬기는 성소의 측면에서, 또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의 측면에서 훨씬 뛰어나고 더 효력 있는 제사를 드리시는 분이라는 점을 좀 더 자세하게 증거합니다. 오늘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율법 시대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새 언약 시대의 제사장으로 세워졌다는 점을 자세히 풀어 쓰고 있는 히브리서 8장을 차분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대제사장 예수는 참된 장막에서 섬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여기서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이라고 해석했는데, ‘요점’이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래 단어 뜻으로 보면, ‘중요한 점’, 혹은 ‘핵심’이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7장에서 그토록 자세히 설명해온 지극히 뛰어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성도는 참으로 행복한 자요 위대한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점을 항상 우리도 잊지 말고 늘 감사하며 행복해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해도, 많은 돈을 소유했다고 해도, 대단한 권력과 자리를 얻었다 해도, 세상적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몸과 마음이 평안하다 해도 그것이 진정한 행복과 성공과 영광과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뒤집혀지는 것입니다. 안전한 것이 못됩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얼마나 쉽게 권력과 평안과 소유가 일순간에 뒤집혀질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누렸다 해도 결국 다 놓고 죽음을 맞이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까?
세상의 부와 귀와 지혜와 권력과 모든 쾌락을 다 소유하고 누렸던 솔로몬조차도 재임 40년만에 가진 것 다 내려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위 40년이니 아마도 그는 나이 50세에서 60세 정도로 세상 떠난 것입니다. 그가 말년에는 그가 쓴 전도서의 고백과 같이 진심으로 회개하였다고 보는데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주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심판을 당하고 지옥불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자들이니, 곧 우리는 가장 위대한 중보자이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그를 알고 그의 사랑을 입은 자가 되었다는 것처럼 가장 든든한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도 우리가 믿고 의지할 우리의 반석이시요 장차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우리를 덮을 때에도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 힘을 얻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손에 쥐신 승리자요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앞에 우리가 설 때에도 우리의 마음을 밝게 비춰주며 힘을 주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우리는 참으로 행복자입니다. 이 점을 항상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1절 후반절과 2절에서 우리가 소유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 곧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함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하늘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2절과 3절을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기록자는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그 하늘에 성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하늘의 성소를 ‘참 장막’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약 시대 성전을 일컫는 단어가 장막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증거궤가 있는 장막 곧 성막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때에 비로소 예루살렘의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곧 조상적부터 모리아라고 불리는 산에다가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 지상의 성전 역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장막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신 저 하늘 곧 하나님이 계신 위엄이 계신 곳을 히브리서 기록자는 ‘참 장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서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라고 동일한 취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일종의 성전입니다. 구약 시대 광야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깊이 좌정하신 지성소는 길이, 너비, 높이가 동일한 장방형이었습니다. 이처럼 장차 하나님과 주의 백성들이 영원히 거주하는 새 예루살렘 성전 역시 만이천 스다디온의 길이, 너비, 높이의 성입니다. 곧 성전의 지성소와 같은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세상을 떠나 거하게 되는 하늘 나라는 성소, 곧 성전 장막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듯 하늘의 도성인 천국이 하늘의 성소 장막이므로 그곳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는 것이요 그 모든 예배를 인도하고 집례하는 대제사장이 계신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바로 그 하늘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늘의 대제사장으로서 그곳에서 예물을 드리고 제사 곧 예배를 드림을 위하여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도 역시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드릴 제물은 10장에서 자세히 언급할 터인데, 그가 드리는 제물은 완전한 제물인 예수님 당신 자신의 몸입니다. 그가 자기의 생명 곧 그의 몸을 제물로 단번에 온전히 바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완전한 중보의 제사를 드렸으며,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향기로운 중보 기도의 제사를 드리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참 장막, 사람이 만든 장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깨뜨리셔서 온전하게 세워진 완전한 성전에서 지금도 우리 주님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한 제사장으로서 섬기고 계신 것입니다.
2절 전반절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고 하였는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영광을 얻으신 우리 주님은 지금도 그 영광 중에도 하나님을 섬김과 동시에 그의 백성 된 우리를 섬기고 계시니, 참으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섬김의 사역은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그 섬김의 본을 기억하고 지상의 성전에 거하는 동안에서나 장차 참 성전인 하늘의 성전에 올라가서나 항상 자원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사역에 힘을 다합시다.
이어지는 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율법에 의하여서 세워진 지상 성전의 섬기는 제사장들과 달리 하늘에 올라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보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히브리서 기록자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 지상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이 아직 파괴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13:23 말씀을 보면,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로 헌신한 주의 종 디모데가 아직 살아 있는 때이니 오래된 학설처럼 이 편지를 쓴 분이 말년의 사도 바울이거나 혹은 사도 바울의 순교 후 그의 동역자 중 어떤 사람이 성전이 무너지기 전 약 5년 정도의 기간 중이거나 혹은 로마 군대에 의하여 성전은 무너진 지 얼마 안되는 시기에 이 편지를 썼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들이 아직 살아 있었고 성전 예배에 대한 기억이 히브리인들에게 뚜렷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거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제사장 사역을 하지 않은 까닭은 지상 성전이 있을 때에는 율법을 따라서 예물을 바치는 육신의 제사장 아론의 후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우리 예수님은 하늘의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이시라는 점을 여기서 밝히며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육신의 제사장들이 지상 성전에서 섬기는 것은 참 장막인 하늘의 성소에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과 달리 불완전한 것임을 밝힙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지상 성전의 모든 기물들이나 그 지상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의 사역이 사실은 모형적이고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짜, 실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 성전을 본따 만들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5:40 말씀에 보면, 출애굽한 선민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도착한 후에 선민 언약을 체결한 직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시내산으로 올라오게 하여 40일 동안 금식하는 중에 각종 율법의 규례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때에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가장 중점적으로 우선적으로 가르쳐주신 것은 바로 성막을 짓는 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영 중에 거하실 수 있는 그의 발등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그들과 동행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제작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사안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그 성막을 짓도록 자세한 규례들을 주실 때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 점을 출애굽기 24장 40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하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실체인 하늘의 성전을 보여줄 수 있는 비슷한 모조품을 만들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성전의 실체가 아니라 성전의 그림자를 모세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그대로 만들라고 하신 것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5절에서 말하기를, 지상 성전은 하늘 성전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지상 성전은 사람이 손으로 지었지만, 하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완전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불완전한 지상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 역시 흠이 많은 인간 제사장일 수밖에 없지만, 완전한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셔서 일하시는 영원히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자는 완전하고 흠없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으로 행하시는 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참 장막에 들어가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섬기시는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이제 장차 하나님 앞에서 그 영광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텐데, 그 일이 가능하기에는 더 완전하고 거룩하고 영원히 살아계신 완전한 중보자가 주의 백성 곁에 계셔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다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6절에서 분명히 밝히십니다. 함께 6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그렇습니다. 옛 언약 시대, 옛 율법 시대에는 불완전한 제사장들이, 참 장막이 아닌 모형으로서의 성전에서 섬기면서 그 백성의 죄를 온전히 씻지 못하는 사역을 했지만, 이제 참 장막 하늘의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서 주의 백성들을 섬기도록 더 월등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워지셨으니, 참으로 주의 백성들은 복이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6절 하반절에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고 하였는데, 중보자라는 헬라어 단어 ‘메시테스’는 중간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차이가 있지만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시며 하나님 편에서 함께 도와주어 화목하게 하는 귀한 다리 역할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메시테스’는 ‘돕는 자’라는 뜻이 있고, ‘벌금을 대신 내주는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재판에서 보석금을 대신 내주고 끝까지 돕는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지만 하늘에 올라가서 우리를 그에게 가까이 이끄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지불하면서까지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하시어 하나님 앞에 영원히 설 수 있게 해주신 중보자이신 것입니다.
과거의 제사장들이 어찌 이렇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제사장들은 불완전한 성전에서 불완전한 죄사함과 불완전한 중보 기도로써 결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그의 완전한 심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참 성전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원히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고 늘 중보 기도를 우리를 위하여 드리시는 완전한 대제사장, 우리의 중보자가 계시니, 우리는 더 영원한 천국 성소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섬길 수 있는 축복을 감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 말씀에서 이른 대로, 우리는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항상 상기합시다. 이 사실보다 더 복스러운 것은 달리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대제사장 직분과 그를 통하여 우리가 실체인 영원한 하늘 성소에 들어가 영광의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는 특권을 누린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기뻐합시다. 그리고 이 땅의 지상 성전에서 예배 드림이 실체가 되는 저 하늘 성소에서 드리는 예배로 이어짐을 기억합시다. 지금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고로 성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일을 힘을 다합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봉사합시다. 그것들이 장차 영원한 천국 성소에서 주님의 빛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영원한 천국의 섬김으로 이어짐을 기억하고 더욱 열심을 내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