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딱 1년만이네.
다들 잘 지냈니?
스물일곱. 호시절을 잘 보내고들 있는지 늘 궁금하구나.
봄같지 않은 봄이지만, 다들 나름대로 인생의 봄날을 꾸며가고 있겠지?
나는, 그럭저럭 보내고 있어.
다가올 파도가, 고비가 좀 무섭기는 한데,
그냥 뭐, 늘 그랬듯이, 잘 겪어낼 수 있기만을 기도하면서.
지난 1년동안,
나는 혼자마시는 맥주의 맛을 알아버렸다.
지금도 하이네켄 한 캔을 비우고는
살짝 알딸딸한 기분으로 이곳을 찾았어.
그리고 지난 겨울부터 다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어.
뭐, 지난 몇달간 미사중단 때문에 가지는 못했지만,
지난주부터 다시 일요일 미사를 드리러 가고 있어.
그 어린날에
그저 친구들이 좋아서
어쩐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 같아서
성당에 열심히 다녔던 그날들과는 다르지만.
지금도 성당을 찾으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날들의 향기가 떠올라.
그렇게도 열심히 성당을 다녔는데, 성경 한구절 기억나는 건 없지만
새벽미사에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시끄럽게도 울어대던 까치소리
준경이와 반씩 나누어먹던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복사 설때 매었던 허리끈, 리본 달린 머리망, 제대방에 있던 간식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있었던 나.
지금은 다 허물어져버린 그 공간의 향기들은 쉽게도 떠오른다.
그닥 특별하지 않은 꼬맹이에게
세상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것만 같은 기대감을 채워주기 위해
아낌없이 집어넣은 그들의 희생에
너무나도 미안한 밤.
미안한만큼,
나는 오늘 조금 더 행복해보려해.
오늘 집어 넣고 있는 것은 나의 젊음이고, 나의 즐거움이고, 나의 순간들이니까.
그래야 언젠가, 먼 훗날에, 아마 한 20년 후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 스스로에게 덜 미안할테니까.
마냥 스스로를 보채던 10대 후반과 20대의 시간을 지나
주변의 사람들을 좀더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스스로를 좀더 보듬어주는
어른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스스로가 조금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날에
다시 돌아올게.
그럼 그날까지
다들 즐거운 봄날을 보내기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