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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기 269 - 日本 나라(奈良), 교토 킨카쿠지(金閣寺)
2019년 3월19일(화) 오사카에서 나라(奈良)로 갔습니다. 794년 수도가 현재의 교토 시로 옮길때까지 중심지였습니다.
710년이후 현재 나라 남부현에 있는 시아스카 촌(明日香村)주변에 있었습니다.
사슴을 방목하는 나라공원. 약 1,200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습니다. 과자(센베)를 구입하여
사슴에게 다가가니 먼저 냄새를 맡고 다가옵니다.
사슴공원이라고도 불리는 나라공원. 아무런 제약 없이 사슴들을 만질 수 있는 공원입니다.
사슴은 일본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동물이지만, 나라 공원의 사슴들은 워낙 사람들의
손길에 익숙해져 있어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슴용 먹이를 줄 수 있어서 먹이를
달라고 쫓아다니는 사슴이 많습니다. 수사슴들은 10월에 뿔을 잘라 사람들이 안전하게 만져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 과자나 기타 음식들을 먹고 다니면 사슴들에게 뺏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동서 4km 남북 2km 에 이르는 드넓은 부지에 공원의 울타리가 따로 없이 24시간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도 없습니다.
뒤엔는 흥복사(興福寺)가 있습니다. 고후쿠지(흥복사)의 고주노토(五重塔)는 중앙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후쿠지는 나라현청 맞은편에 위치한 절로 아스카 시대 말기 백제 도래 세력인 소가씨 집안
을 몰아낸 후지아라 집안의 사찰입니다.이 지역은 나라공원으로 통칭되며 우뚝 솟아있는
5층탑은 나라공원의 상징입니다. 높이 50.8m의 이 탑은 전쟁으로 인해 여러번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으며 지금의 모습은 1426년에 다시 지어진 것입니다.
사슴(시카)대한 경고문입니다.
공격을 대비하여 숫사슴은 뿔을 짤랐습니다. 소목 사슴과에 속하는 중대형의 초식동물로
아름다운 뿔을 지니고 있어 한국사람들이 보약으로 녹용을 제공받습니다. 디즈니의 애니
메이션으로 나온 밤비와 대등한 덩지를 갖고 있는데 잘 훈련시키면 말 처럼 타고 다닐수
있다고 합니다. 종류로는 사향노루, 꽃사슴, 고라니, 노루, 순록, 아기사슴, 엘크 등이
있습니다.
옛날 어머님이 화투 '육백'을 칠때 "이노시카초(猪鹿蝶)(""(이노;돼지 시카:사슴 초:나비)용어를
사용 했던 기억이 납니다. 육백점이 나는 화투인데 어머님은 고스톱도 못치시고 오직 육백만
치셨던 생각이 납니다. 또한, 사슴보면 전병태총장 생각이 납니다.
일본의 고대 수도는 아스카, 후지와라쿄(694~710), 헤이조쿄(710~784)라는 이름으로 나라
지역에 세워졌습니다. 후지와라쿄와 헤이조쿄는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장안을 모방으로 격자모양의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황실은 또한 수나라, 당나라문물을 수용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졌고 7세기까지 나라는 한반도의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백제의 많은 피난민들을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황실에서 보호 속에 나라시에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경내의 고쿠호칸(國寶館)에는 수 많은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 청동불두는 일본인들
이 세 번째로 좋아하는 불상이라고 합니다. 이 곳의 불상들은 대부분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모두 후지아라 집안의 사재(私財)였다고 하니 당시 후지아라 집안의 위세를 짐작할
만 합니다.
고대 백제 이주민들이 계속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들이 가져간 문화내용들이 일본고대 국가의
힘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야스카문화의 원류를 백제에서 찾고 있는것입니다.
고분시대의 후반기인 6세기 초부터 7세기 중엽까지 야스카(飛鳥)라 하여 일본역사의 무대는
규슈(九州)지방에서 긴기(近畿)지방으로 옮겨지며 쇼도쿠(聖德)태자 시절에는 국가의 면모와
체재를 갖춘 고대국가의 면모를 지니게 됩니다.
일찌기 왕인(王仁)박사가 265년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주고 4세기 중엽 근초고왕때 아직기
(阿直岐)가 일본의 사신으로 가서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켰습니다. 뿐만아니라 백제는 일본에
도기, 직조, 그림등의 기술을 전래하였으며 무령왕이 오경박사 단양이(段陽爾)와 고안무
(高安戊)를 파견하고 성왕이 562년 노리사치계(怒唎斯致契)를 보내 처음으로 불경과 금동
석가여래상을 전래한것은 일본 아스카 문화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왓소축제(「四天王寺ワッソ」祭り)가 왕인 박사를 비롯한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파한 백재인
들의 모습을 재현한 마쓰리(祭り)로 왕인박사가 일본에 왔다는 '왔소' 축제가 199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왕인박사를 비롯하여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파한 고대 백제인들의 모습을
재현한 가장행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행렬이 오사카 번화가를 누비며 시텐노지(四天王
寺)에 이르는 동안 '왓소, 왓소'하며 구호를 외치는 데서 '시텐노지 왓소'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후원자였던 칸사이코긴(関西興銀) 은행의 도산에 의해, 2001년부터 2년간 중지
되었다가 2003년데 재개되었습니다.
도다이지 東大寺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원의 정문은 난다이몬(南大門).
송나라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서로 짜맞춘 기술이 백제의
영향을 받은 증거를 보여줍니다.
동대사의 다이부쓰덴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로 752년에 건설된 것을 여러 차례의 전쟁과 화재로 소실된 후 에도 시대에 재건한 것입니다.
지금의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원래 크기에 3분의 2 밖에 되지 않는 다고 합니다.
2층으로 만들어진 지붕이 건물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1층 지붕 중앙의 청동 구조물이
당시 사무라이 정권을 상징하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다이부쓰덴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좌불로 높이만 15m에 달합니다. 1년에 한번 대불상이
목욕을 하는데 이 때 2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불상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는 광경은 불상
못지않은 볼거리라고 합니다.
일본에는 우리의 고대사와 관련된 유물이 많다. 두 나라 사이에 교류가 많았고, 그 교류의
결과인 유적이 일본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물들 중에 일본 나라지역에 있는
동대사(東大寺·도다이지)만큼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곳도 없습니다.
동대사는 누가 뭐래도 일본에서 가장 큰 절입니다. 우리에게도 매우 낮익은 절이기도 합니다.
동대사의 부속건물인 정창원에서 국사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는 '신라장적'이 나왔기 때문
입니다. '정창원 문서'로도 불리는 신라장적은 통일신라 서원경(청주) 부근 4개 촌락의
경제적 요소들을 조사하여 기록한 문서로 통일신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동대사가 있는 지역 이름인 '나라'는 꼭 우리말 같습니다.사슴이 어슬렁거리는 정문 남대문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문이다. 문위에는 '대화엄사(大華嚴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동대사는 통일신라의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그것에 감동하여 지었다
고 했는데, 절 이름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남대문을 통과하면 중앙에 중문을
가진 회랑이 가로 막습니다. 평지에 있는 절은 절의 경내와 그 바깥을 구분하는 회랑을
지었습니다. 우리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평지 절간이 이런 회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불국사는 산지에 지은 절간이면서도 아직 평지절간의 회랑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대사의 역사와 미술이 동대사 박물관에서 볼수가 있습니다. 동대사의 금당에는 거대한
노사나부처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당 이름은 거대한 부처님이 있는 집이라는 대불전
(大佛殿)이 되었습니다. 원래 대불전 앞에는 동서로 두개의 목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경주의
감은사나 불국사와 같은 1금당 쌍탑 가람배치입니다. 동대사가 통일신라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니 사슴이 바로 앞에 서있습니다.
이곳 나라는 고대 백제와 신라의 숨결이 있는 도시입니다.
동대사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중 앞에 건물이 일본식이라 사진을 찍었습니다.
天平庵이라는 식당입니다. 식당앞에 뿔달린 동자가 있습니다. 이것이 나라시의 마스코트
입니다. 담징이 그린 벽화가 있다는 호류지(法隆寺)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중국관광객이 같이 버스를 기다리길래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니 대만에서 왔다고 합니다.
차에 그려진 이 그림이 나라 시의 마스코트입니다. 일본은 각시마다 캐럭터를 만들어
상품화 하고 있습니다. 상품화된것이 유명해진것이 많습니다.
시간상 호류지를 안보고 나라시에서 금각사를 보기 위해 교토역으로 갔습니다.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이지만, 킨카쿠지(金閣寺)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에서
는 금각사라는 발음으로도 통합니다.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 義満)가 별장으로 건립하였으나 그의
사후 선종 사원이 되었습니다. 문화재 천국인 교토에서도 명실공히 교토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였으나, 1950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 견습 승려의 방화에 의해 본래의 누각이 소실
되었습니다. 현재의 누각은 1955년 재건된 것. 1994년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오계인 불살(不殺), 부도(不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忘語), 불음주(不飮酒)이 쓰여져
있습니다.
교토시 기타쿠(北區)에 있는 금각사(金閣寺, 긴카쿠지) 절은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절에
이어서 교토에서 두 번째로 찾는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겉모습도 금박으로 화려하고,
1950년 7월 2일 학승에 의해 불에 탔다가 다시 지은 일이 소설의 소재가 되면서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년), 금각사, 신쵸샤
(新潮社), 1956년.)
사실 불을 낸 학승은 일찍이 스님이셨던 아버지를 여의고 스님이셨던 작은 아버지 집에서
자라다가 금각사 절에 머물면서 교토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금각사 사리전에 불을 냅니다.
범인으로 체포된 뒤 어머니가 면회를 오지만 자신은 한 번도 따뜻한 어머니 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서 면회를 거부합니다. 집에 돌아가던 어머니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합니다. 불은 낸 학승은 형기를 마치고 석방 된 뒤 몇 달을 살지 못하고 폐병으로 죽습니다.
여느 자연 풍경이나 경치가 그렇듯이 금각사 절은 갈 때마다 새롭게 보입니다. 아마도 금각사
절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늘 다르고, 시간이나, 날씨가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겨울 눈이 내린 금각사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햇살에 더욱더 금빛이 나는것 같습니다. 금각사 절의 원래 이름은 린사이쇼(臨濟宗, 임제종)
쇼코쿠지파(相國寺派, 상국사파) 긴카쿠(金閣, 금각) 로쿠온지(鹿苑寺) 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긴 이름보다 금각사라고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세계
각국에서 옵니다. 버스간에서는 아르젠티나 모녀도 보았고 절 내에서는 불란서 관광객과
담화를 하였습니다.
금각사 절 건물은 처음부터 절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가마쿠라(鎌倉) 시대
사이온지 긴츠네(西園寺公慶)의 별장인 기타야마테이(北山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카가(足利) 3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義満)가 마음에 들어서 1397년 사이온지
가문으로부터 물려 받아서 산장 기타야마덴(北山殿)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개장 수리를
하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천억 엔 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요시미츠가 죽은 뒤 그의 유언에 따라서 무소소세키(夢窓疎石, 1275-1351년) 스님을 주지로
모시고 요시미츠의 법호 로쿠온인덴(鹿苑院殿)에서 두 글자를 따서 로쿠온지(鹿苑寺)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후 1994년 교토의 다른 유명한 곳과 함께 교토 고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금각사 절에서 금박을 입힌 곳은 사리전뿐입니다. 이유는 삼층에 부처님 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각사 사리전은 일층은 침전 형식이고, 이층은 무가(武家) 형식, 삼층은 중국식
선종 불전 형식입니다. 금박은 이층과 삼층에 안팎으로 되어있습니다.
금각사 사리전은 일층, 이층, 삼층이 모두 다른 건축양식을 지닌 것이 독특합니다. 지붕은
삼나무 껍질을 쌓아서 만들었고, 우진각 지붕으로 처마는 지붕 꼭대기 한 점에서 만납니다.
지붕 꼭대기에는 봉황 장식이 서 있습니다. 지붕은 2003년 수리를 하였고, 건물 금박은
1987년 새로 입혔습니다. 이 금박은 동해 쪽 가나자와에서 만든 것입니다.
이 금각사 사리전은 니시혼간지 절 안에 있는 히운카쿠(飛雲閣), 교토 동쪽에 있는 은각사 등
과 더불어 교토를 대표하는 삼대 누각입니다. 금각사 사리전과 히운카쿠는 배를 타고 건물로
들어가는 배 현관이 똑같습니다.
금각사 절에는 여러 건물과 연못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섹카타이(夕佳亭) 다실은 금박으로
빛나는 금각사 사리전과 대비되어 초라합니다. 들어갈 때에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기둥이 낮고, 방 역시 두 세 사람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습니다.
섹카타이(夕佳亭) 다실은 에도시대 작품으로 수키야(数寄屋) 형식입니다. 이곳 다실에서
앉아서 서쪽으로 지는 멋진 해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하여 섹카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다실 앞에 있는 석등은 아시카가의 8대 장군 요시마사(義政)가 애용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류몬타키(龍門滝) 폭포와 잉어석(鯉魚石) 팻말이 있습니다.
금각사 절 안에 있는 지장보살입니다. 주위에 여러 나라의 많은 동전이 던져져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교토에는 지장보살상이 많습니다.
금각사 절 안에는 금각사 사리전 앞에 있는 연못을 교코치(鏡湖池) 연못이라고 하고,
섹카타이 다실 앞에 있는 못을 안민타쿠(安民澤) 연못이라고 합니다. 이 두 연못은 모두
인공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두 연못 사이의 낙차를 이용하여 류몬타키(龍門滝) 폭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못에
있는 물은 주변에 있는 샘이나 기누가사야마(衣笠山) 산을 비롯한 여러 산들에서 흘러 내려
온 것입니다.
금각사 절 동쪽에는 후도도(不動堂)가 있습니다. 이곳에 모셔진 본존은 고보다이시(弘法大師,
774.6-835년)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시후도묘오(石不動明王)로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교토의 유명한 콩(마메)으로 만든 과자(豆菓子)를 팝니다.
아버님이 일본동요를 부르시던 생각이 납니다. "뽀뽀뽀 하도 뽀뽀, 마메가 ....."
줄을 흔들며 소원을 빕니다.
금각사를 나와서 아라시야마(嵐山)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길을 물어서 버스정류장 가는데 하마(浜)스시집이 보여 들어가니 로보트 맨이 좌석 발권
합니다. 하마는 "해변 모래사장"을 말합니다.
요코하마(橫浜)는 옆으로 펼쳐진 모래사장이란 뜻입니다.(부루라이토 요꼬하마..ㅎㅎ)
이곳은 돌아가는 스시집으로 앞에 있는 화면에 먹을 스시를 누르면 만들어져 나오는데
돌아 나오기전에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스시 그릇을 벨트에서 꺼내어 먹습니다.
스시에 먹는 간장 종류입니다. 곤포로 만든 간장, 순한맛 폰즈, 사시미 간장, 달달한 간장,
다시간장이 있습니다. 다시는 맛을 낸다는 뜻인데 국물에 맛을 낼때 다시를 넣는다고 합니다.
폰즈는 본인이 L.A. 중앙일보 문화센타에서 초밥만드는것을 배울때 사용했던 소스입니다.
네델란드어 pons를 말하는데 만드는 법은 다시마물 1/2컵, 간장 1/2컵, 식초 1/2컵, 강판에
간 무 1/2컵, 다진 마늘 2큰술, 다진 파 2큰술, 통깨 1큰술, 설탕 2큰술, 겨자 1작은 술로
만듭니다. 5 가지 다 찍어서 스시(초밥)을 먹었습니다. 초밥 의 한자는 寿司(수사)이고,
뜻글자로는 물고기젓이라는 뜻인 지(鮨) 또는 생선젓이라는 뜻인 자(鮓)를 사용합니다.
기차를 타니 한국과 동일하게 다들 핸드폰(携帶:케이다이)를 보고 있습니다.ㅎㅎ
일본은 버스를 탈때는 뒷문에서 타고 내릴때 앞문으로 내립니다. 뒷문에 탈태 표를 받는데
그것은 정리권(整理券)이라고 합니다. 정리권에는 번호가 있는데 번호에 해당하는 요금이
앞의 화면에 나옵니다. 정리권에 해당하는 요금을 지불을 합니다. 또한 일본의 버스 운전사는
내리는 승객들에게 "아리가도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이유는 본인이 모는 버스를 이용해서 고맙다는 표현입니다.
금각사를 가는 버스를 타니 금각사정류장이 몇정거정 남았는지 앞 화면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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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피터 후기 읽다보면 넘 잘써 질투가난다....ㅋ ㅋ 못하는게 뭐냐? 글솜씨도 스고이. That's crazy
凄くない。。。
칭찬하니까 몸 둘바를 모르겠어.
(얼굴 벌게졌음)
나는 칭찬에 약한가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