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6.25일이 전쟁이 일어난지 67년이 되는 해이다.
내 나이 아홉살, 국민하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의 어린 시절 해방이 되자마자 좌익, 우익으로 사회가
시끄럽더니 전쟁이 나기 전, 밤마다 빨갱이들이 동내에
내려와 양식을 달라고 집집마다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더니
반공청년단이 결성되어 마을자체에서 경비를 서고 하던
마을을 골라 6.25가 발발하기 1년 전 추운 겨울날에 지네들
인척되는 집만 그냥 두고 나머지 집들은 모두 불살라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추위에 갈 곳 없는 백성들은 이웃마을로
옮겨다니면서 그해 겨울을 보내고 정부에서 지원해준 덕으로
겨우 집을 지어 생활하려고 할 즈음, 그 이듬해 여름, 전쟁이 터졌다.
우리는 피난을 갔고 인민군이 우리 마을까지 점령하였기에
피난을 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죽어도 집에서 죽어야
한다는 마을 어른들의 애향심 탓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집에서 세월을 보냈다. 새벽에 보리밥을 지어 날이 새면
언덕에 파놓은 굴(窟)속으로 가서 밤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와
잠을 지고 새벽이면 날마다 밥을 지어 먹고 굴 속으로
피난을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리하여 마을 청년들은 군대에 가서 싸우다가 전사를 했다고
통지가 오면 동내 전체가 울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도 군대에 갔고 나의 아들 두 놈도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그 세월이 지금은 역사가 되어 67주년
6.25 기념식을 티비에서 보고있노라니 눈물만 흘렀습니다.
세월은 모두를 잠들게 하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북한의 핵미사일을 그냥 볼 수만은 없지요.
6.25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또 전쟁을 당하고 말아요. 슬픈 역사도 역사입니다.
그냥 지나처서는 절대 않되어요. 안보는 우리의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