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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글모음집 [☆탁발托鉢☆]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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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托鉢]
범상梵相 글모음집 / 유마북출판사(2012.12.15)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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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
범 상
마음에 부처 닮아
염불 끈 부여잡고
걸방에 법을 담아
어깨에 둘러메고
삭발염의 먹물 옷에
오욕락을 잠재우고
복전福田 일구는 탁발승은
예토穢土에 거친 길을
목탁에 의지하여
굽이굽이 헤쳐 간다!
제 생각에 저를 묶고
아상我相에 금칠해서
진짜 부처 모신 곳에
석가모니 자취 없고
모두가 제소리네
<산문>
토굴에 살면서
범 상
학교에 다닌다고 산에서 내려와 달동네 무허가 판잣집을 얻어 걸망을 풀어놓을 조그만 장소를 마련했다.
그동안 김포 들판에 날아드는 겨울 철새를 세 번이나 보았고, 운동장 건너 풀숲에는 입학하던 해에 뒷산 장끼와 앞산 까투리가 결혼을 하더니 벌써 올봄에는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를 닮은 병아리를 데리고 나들이 나왔다가 인기척에 놀라 힘든 날개 짓으로 달아난다.
自性日일요일 법회를 보고 토굴에 찾아온 도반 스님들께 저녁 공양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차茶를 우려내고 모아두었던 찻잎을 간장에 무치며 때 이른 저녁 준비를 한다. 찻잎을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간장에만 무쳐놓아도 특유의 떫은맛은 사라지고, 산뜻하고 개운한 것이 토굴에 사는 재미만큼이나 만드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며 노력에 비해 훌륭한 반찬이 된다.
찻잎을 무치며 몇 해 전 일들을 떠올려 본다. 토굴에 사는 재미가 한창 생길 무렵 산철散節이 되어 도반 스님들이 혼자 있으면 넉넉하고 셋이면 비좁은 토굴에 노스님을 모시고 찾아왔다. 얼마 전부터 통화할 때마다 멋지고 넉넉한 토굴을 마련했고, 사는 재미가 너무 좋아 극락이 따로 없다며, 자랑을 늘어놓아 잔뜩 기대를 갖고 찾아온 도반들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급기야 성질이 급한 스님이 “스님 이런데 사시면서 무슨 자랑을 그리도 늘어놓았소”하고 퉁명스러운 말을 건넸지만, 난 그저 웃으면서 차를 권했다.
노스님께서 나를 쳐다보시더니 편안하게 웃으신다. 나는 스님의 미소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본래 성격이 급하여 모든 일들을 빨리 하려고 서두르고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탓에 내가 하는 일의 열에 아홉은 노스님께서 뒤를 따라 나니시며 치우셨고, 참회를 받아 절을 할 때면 시간과 숫자에 신경쓰느라 본래의 의미를 잊어버리곤 했다.
어느 날 스님께서 불단에 있는 향로에 타고남은 향을 뽑으라고 하시면서 젓가락을 주셨다. 젓가락으로 몇 개 뽑다가 마음이 성급해져서 손으로 향로를 휘젓고 있는데, 스님께서 오시더니 “누가 향을 뽑으라고 했느냐” 하고 물으셨다. “방금 스님께서 시키지 않으셨습니까?”하고 되물었더니, “그러면 이번에는 향을 뽑지 말고, 마음을 뽑아 보거라” 하시고 돌아서셨다.
그러한 스님이셨기에 토굴 자랑의 의미를 알고 계신다. 스님께서는 이곳저곳을 살피시고 몇 마디 말씀을 나누시더니 걸망을 풀어 귀하다고 아껴두었던 차 한 통과 책 한권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어서시며 “범상이의 살림살이를 보았으니, 내 살림살이 챙기러 가련다”하시며 돌아가셨다.
내가 사는 토굴은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 없어 언뜻 보면 매우 불편하게 보인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면 하루에 한두 번 해우소에 다녀오는 것, 샤워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불편함이 없다. 좋은 옷을 입을수록 거울을 보는 번거로움이 생기고 옷에 맞추어서 사소한 차림까지 신경을 써야하듯이 번듯이 갖추어 생활하면 할수록 꾸밀 것도, 필요한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토굴생활은 화려하게 꾸미는 번거로움보다, 오히려 작은 불편함이 소박함으로 다가와 마음을 더욱 편하게 해주는 묘한 즐거움이 묻어난다. 굳이 수행자다. 무소유다 하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함이란 물질적으로 무엇이 모자라서 생기는 것보다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 자신의 마음을 버리지 못해서 생기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활에 편리함을 위해 들여놓은 물건들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그것을 사용하는데 시간을 빼앗겨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하는 한가로운 시간과 넉넉한 마음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구들의 노예가 되어 시간과 여유를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편리함을 더욱 추구하게 되고 그 마음이 생활에 불만과 불편함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혼자서 토굴에 산다는 것은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도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자연과 같은 삶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토굴생활은 방일하려는 마음을 스스로 살피고, 지켜내려는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도 힘에 부치거나 시간에 쫓기는 일이 없어 언제나 자유롭고 넉넉하다.
그리고 특별히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오늘처럼 도반이나 동네 분들이 놀러오면 그 반가움은 산중생활이나 대중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토굴생활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저녁공양이 준비되고 소박한 밥상에 도반 스님들과 마주 앉았다. 밥상 위, 짝 잃은 발우에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윤기 흐르는 밥이 담아지고 몇 가지 밑반찬을 꺼내놓으니, 나의 작은 토굴은 잔치 집처럼 넉넉해졌다. 적당한 물기로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에 간장이 푹 베어들어 까맣게 변한 찻잎무침을 듬뿍 넣어서 비벼 먹는 맛은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의 정감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기도2
범 상
방울방울 떨지는
진줏빛 구슬
살아온 세월 씻어 내리니
마구간 돼지 송아지를 낳는다.
가섭도 몰랐던 이 소식 누가 알리요
낙조
범 상
생의 끝자락은
누구나 진솔해지는가 보다.
감히 쳐다볼 수 없었던
네가
진면목을 내어주는 것처럼
수행
범 상
술래인 내가
나를 찾는 숨바꼭질
사연
범 상
평생을 한 색으로 살아온
소나무는
외골수 고집으로
옹이를 만들고
할 일 없는 방석 늙은이는
텅 빈 손으로
허공을 빚어
사리를 만ㄴ드는데
서투른 목수의 대패는
옹이에 걸려 서슬퍼런 칼날이 무뎌지는구나
길을 가다가
범 상
매미 한 마리
거미줄에 걸려 날개를 떨고 있다.
매미를 살려줄까
아니
거미는 뭘 먹고 살라고
내 발 아래
내장이 튀어나온 애벌레는
반 토막만 꿈틀댄다.
<산문>
안 그래!
범 상
소의 평균수명은 15년이라고 한다.
다른 소에 비해 곱절이나 오래 살고 있는 소는 다리가 불편한 주인의 발이 되고 동무가 되고 그렇게 자식처럼 함께하는 동안 이제는 늙어서 제 몸조차도 가누기 힘들지만 30년을 그래 왔듯이 긴 삶의 끝자락을 힘겹게 밟으며 매일 같이 주인과 함께 산과 들로 나선다.
남들보다 몇 배나 힘든 고단한 삶을 40년이나 살았으니 이제는 모진 생명을 놓아 줄 법도 한데 수명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수의사의 진단결과에 할아버지는 “안 그래”라는 짤막한 대답으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 낸다.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문배우도 없고 특별한 연출이나 약속된 대사도 없다. 그래서 경북 봉화의 어느 시골 마을 노부부와 그들과 함께 늙어 온 소의 일상에 그저 카메라가 돌아 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사실적인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아마도 평생 가슴속에 “안 그래”라는 단어를 담고 살았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7살 때쯤 침을 잘못 맞아 한쪽 다리는 아예 성장이 멈춘 듯 장정의 팔뚝보다 가늘지만, 그 몸으로 남의 집 머슴을 살았고, 정상적인 기동이 어려워 기어 다니며 농사일을 한다.
그렇게 아버지라는 책임감과 지아비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팔십 평생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천근같은 삶이라는 무게가 담긴 지게를 기우뚱 등에 짊어지고 위태로운 삶을 소와 함께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반을 함께 나누어 짊어진 할머니 역시 고단한 일상을 메아리 없는 넋두리고 풀어내지만, 당신도 어머니이기에 가을걷이를 한 쌀자루에 자식들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고물이 된 할아버지가 고삐를 잡고 엉치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늙은 소가 이끄는 삐거덕 거리는 수레에 힘겹게 끌어 올린다.
그 고단한 삶의 의미가 여기 있었다는 듯 할머니의 얼굴에는 어머니만이 가질 수 있는 뿌듯한 사랑의 미소가 피어난다.
그렇게 시작된 아침! 이빨이 빠진 늙은 할머니가 배웅하는 손사래를 뒤로하고, 고물이 된 할아버지와 오래 살아 영물이 되었지만 세월을 못 이겨 네발을 가지고도 가끔씩 넘어지는 눈곱 낀 소, 그리고 어디 한곳 성한 데 없는 달구지에는 박물관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낡은 고물라디오가 매달려 자식 사랑과 고단한 삶을 싣고 읍내로 나간다. 단지 신식이고 성한 것은 고물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와 노랫가락뿐이다.
안 그래! 세상은 정말로 안 그래야 한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잘살아야 한다. 당신의 소가 기적적으로 긴 시간을 살아왔듯이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온 순박한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고달픈 삶을 이고지고 그렇게 끝없는 가난의 미로를 걸어왔다. 영화를 보는 동안 몇 번씩이나 상대를 헤아리기 어려운 뜨거운 분노가 목구멍을 치받더니 급기야 옆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두 눈에서 쏟아져 내렸다.
나는 가끔 승려라는 이유로 어르신들께 “부모를 모시지 않는 자식이 나쁜가요? 아니면 그렇게 가르친 부모와 사회가 나쁜가요?”라는 주제넘은 물음을 던져 본다. 이렇게 물어보는 데는 분명 우리 사회는 잘못 달려왔고 지금도 그렇게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워낭소리」는 ‘원한의 소리’이다. 그것은 재분배를 무시한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우리 농촌의 모습이고 산업사회가 빚어낸 비인간적인 이중성이며 그것에 대한 자각 없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소는 주인의 고삐에 길들여져 단 한 번도 뛰쳐나갈 생각도 못한 채 남들의 곱절이나 되는 긴 시간을 힘들게 살아왔다. 그 소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아직도 많은 부모들은 반공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있고 독재 권력의 횡포와 억압의 잔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자신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파렴치한 위정자들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판 대가로 성공과 부를 거머쥔 사람들 앞에 모자를 벗어 더 이상 빠질 게 없는 허연 정수리를 들어내며 연신 머리를 굽히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대통령도 보았고, 적은 돈을 들여서 많은 관객이 찾는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를 언급하며 “자녀9명을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키운 게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 라며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고 강조했으며, 이에 김여사도 “그게 바로 한국인의 DNA”라고 공감을 표시했다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접하며 또다시 가슴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평생을 벌어서 능력 있는 자식을 키워도 제대로 꿈을 펼칠 수 없는 사회, 나라 경제가 아무리 좋아져도 그저 소처럼 일만 해야 하는 인생.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운명인 듯 묵묵히 침묵하는 그들의 삶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라고…이건 어불성설이다.
대통령이 정말로 이 영화에 감동을 받았다면 지금이라도 민초들로부터 부와 명예를 가로챈 자들을 닦달하여 돌려주어야 하고 사죄를 시켜야 옳다고 본다.♠
엄마
범 상
엄마는
시퍼런 칼을 들고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서릿발 같은 들판에서
매섭도록 봄을 도려와
식구들 밥상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도려내온 봄으로
힘겨운 보릿고개를 의연히 넘으시던
칼칼했던 내 어머니는
풀 없는 목소리로
병원 밥이 맛있다며
억지 전화를 내려놓았다.
약속
범 상
우리
이 자리에서
‘꼭’ 만나자고
열 손가락 고리를 걸었는데
거기에는
버들강아지가 없는지
병아리 깃털이 검게 변했어도
하얀 눈 발자국은
아직도 시간을 밟고 있네요.
이제는 밟힌 세월이
아프다고 하네요!
알았어요.
된바람이 끝나기 전에
책갈피 모아 놓은 꽃잎을
약속 없는
강물에 띄어 보내렵니다.
뒤로 구르는 바퀴
범 상
내
나이
40을 넘으니
거울에 비친
얼굴에서
어머니 모습이 배어나고
담배를 비껴 물은
동생은 천상
아버지를 닮았다
십 년 맏이 누이
늘어진 젖무덤은
어머니 그것과 같아지고
애기 같던 여동생 뒤에는
오리 새끼 두 마리
뒤뚱거리며 따라나선다
나이 40
세월은
그렇게
뒤로 굴러가는가 보다.
사랑
범 상
흐드러진 벚꽃 뒤에
남겨질 버찌 한 알
네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마음은 벌써
까만 버찌처럼 타들어만 간다.
삶
범 상
아버지 무덤 자락에서
봄나물을 뜯어와
쌉쌀함을 즐기는 것.
<산문>
만원의 행복
범 상
요즘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주머니 속에 어떤 형태의 모바일이든 하나씩 넣고 다닌다. 물론 나 같은 승려들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들마저 너무나 세속적인 호사를 누린다고 한다.
무소유란 무엇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것들을 소유하지 않음이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과 제물에 대해서도 집착을 놓아버림을 말한다.
지금 밖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다. 산사가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약간의 번개에도 누전차단기가 떨어지고 인터넷케이블을 타고 들어와 컴퓨터를 망가뜨린다. 작년에는 외출하면서 전기선을 분리하지 않은 딱 한 번의 실수로 메인보드를 교체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전기선과 인터넷케이블을 빼어놓고 노트북 배터리에 의존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신문사로 보낼 때까지 기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가서 전송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내고, 뉴스와 각종 정보를 검색하는 컴퓨터는 호사를 누리기 위한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일상이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편리함의 추구는 탐욕 뿌리를 두고 있어 자칫 나태와 게으름으로 이어지지만, 지혜의 측면에 있는 효율성은 일의 능률을 높여주므로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제도할 중생이 있기에 존재가치를 지니는 출세간’은 효율적 입장에서 세속의 변화와 함께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세간의 본분인 세속을 제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설법전 불사가 마무리되고, 공사업자들이 떠난 지금 혼자서 인부들이 미처 살펴보지 못해 거칠게 마무리된 곳과 구석구석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주머니에는 현대인의 필수품인 모바일과 작업에 필요한 작은 공구들이 들어있어야 한다.
승복 바지에는 본래 주머니가 없다. 그래서 조끼주머니에 공구를 넣었더니 작업용 조끼가 아니어서인지 사다리를 오르거나 몸을 구부렸다 펼 때면 걸려서 위험 할 뿐 아니라 통이 넓은 바지도 한몫하여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마침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작업복 바지를 하나 살 겸 망해서 70%를 세일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옷가게에 들어갔다. 매장은 망했다고 보기에는 비교적 깔끔했고 옷들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쇼핑에 서투른 탓도 있겠지만 70% 세일이라는 플래카드만 생각하여 가격표는 보지도 않고 맘에 드는 바지 하나를 골랐다.
일단 입어보라는 종업원의 권유에 따랐고, 몸에 잘 맞았다. 하나 더 골라서 계산대에 갔더니 바지 하나에 6만 7천원이라고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가격에 놀라, 무슨 죄라도 지은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너무 비싸서 못 사겠노라며, 유명메이커라서 그렇다는 종업원의 친절한 설명을 뒤로하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문득 길가의 노점이 생각났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잠시 전의 사건을 기억하며, 3장에 만원이라는 글씨를 보면서도 내심 저것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형편없는 미끼상품일 거야 하면서 최소한 한 장에 만원은 하겠지 라며 바지 한 장을 골라 내밀었다.
주인은 계산은 하지 않고 치수를 살피더니 모양과 색깔이 다른 것을 몇 장 더 가지고 오면서 두 장을 더 고르라며, 바지가 맘에 안 들면 티셔츠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로 만원에 바지 3장을 샀다.
만원에 바지 3장이 며칠 동안 기쁘게 했다. 왜냐하면 작업복이 필요한 분에게 하나를 선물하고도 입지 않은 새 것 한 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6만 7천원짜리 바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지가 가지는 기능과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비싸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며칠 지나면 시들어 보기 흉하게 변한다. 그것은 아름다움 속에 시든다는 속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 속에 내재되어있는 추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할 때 유지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미 치료적 성격에서 시작된 성형수술이 미인 만들기의 상업 의료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고, 명품족이니, 된장녀니 하는 말들은 겉모습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부자들은 서민들에게 우월적 지위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의 명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성형미인, 명품족, 돈으로 서민들의 기를 죽이는 부자 등등 이런 것 모두는 아름다움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한낱 물건과 겉모습에 자신의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
범 상
책상 위에 손 때 묻은 사전 한 권이 있다.
나에게는
사전 같은 친구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도
유행처럼 변해간다.
친구는
책상 위에 사전처럼
그 페이지에 그 이야기
언제나 한결같다.
봄의 어원
범 상
흙이 되었든 죽음이
생명으로 돌아옴을
∙∙∙∙∙∙∙∙∙∙∙∙∙∙∙∙∙∙∙∙∙봄.
피서
범 상
혹시
불청객이
들이닥칠까
현관문을 꼭꼭 잠갔다.
텅 빈 도시에
몇 남지 않은
사람들마저 쫓아내려는 그놈을 피해
초인종마저 떼어버렸다.
옥상으로부터
소리 없이 스며드는
뜨거운 탐지기는
벌써 나를 눈치 챈 것 같다
어이쿠!
들켰구나!
살며시 커튼을 내리고
다시 한 번 문단속을 하였다
눈2
범 상
봄부터 달려온
치열한 삶을 내려놓은
대지는
본래마음을 드러낸다.
나도
잠시나마 내 삶을
뒤집어내어
하얀 눈빛에 비추어 본다.
올해는
눈보다 더 진한 색깔로
마음이 없는 사람들과
긴
이야기를 써내려 가봐야지.
유전
범 상
부러진 호미자루를 다시 해서 박았다
아버지 솜씨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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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내며
詩心이 말라가는 시인이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詩心마저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에서이다. 마치 타들어가는 논에 어렵게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는 농부의 심정이랄까!
붓다는 당시 인도의 여러 나라 중 가장 힘 있는 강대국과 번화한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셨다. 그것은 해탈의 가르침을 빠른 시간 내에 널리 펼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입멸이 다가오자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사는 ‘쿠시나가라’를 향해 마지막 유행을 떠나셨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살피는 것이 열반이며, 비 가릴 지붕과 바람 막을 벽이 없는 궁핍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대열반”라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정신을 계승한 대승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수행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출가 전부터 화두였으며, 지금도 변함없는 화두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바세계 탐욕의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듯 세속과 승가는 구분과 차별이 아니라 하나로 쉼 쉬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땅과 나무와 하늘이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탐스런 열매를 맺어 만중생을 살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하여 언제나 세속과 소통하려 애를 썼고, 사바세계의 모순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 마음하나 만으로 2004년부터 지금까지 8년이란 시간동안 인연이 닿는 대로 매주 1편 이상 칼럼을 써오고 있다.
붓다는 “좋은 국토와 좋은 국왕을 만나는 것도 큰 복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작금의 정치와 자본권력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재분배와 분배를 무시했고, 그 결과 모순의 간극은 더욱 넓어져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아팠다.
점차 글에 날이 서고 모가 나면서 아름다운 글을 쓰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칼럼을 쓰는 이유가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있듯이, 글쓰는 사람이 詩心마저 잃어버린다면 글의 목적을 잃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간간히 써 오고,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 엮기로 마음먹었다.
이 같은 생각에 함께하여 표지를 그려준 진철문 교수와 사진을 준비해주신 윤작가님,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신 문영희 선생님,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송진호 시인과, 책 이전에 서로 마음이 통해서 인연을 맺은 유마북 손혜용 사장님과 모든 분들게 보잘것없는 글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임진년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걸으며…
범상梵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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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 글모음 [※탁발托鉢※]
[ 추천사 ] -
부처님 닮은 범상 스님을 생각한다
범상스님은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조계종 승려이시다. 그를 안지도 10년이 넘었다. 함께 안산에 거주한 것이 계기가 된 셈이다. 지난 2000년 초, 송진호 시인의 소개로 첫 인사를 나누었다. 훤칠한 키에 육중한 체구, 그 얼굴은 절에서 늘 보았던 부처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당시 안산시 일동에서 작은 포교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와 자주 만날 수 있는 고리는 사회운동이었다. 그리고 그는 탁발수행을 한다고 했다. 지금 조계종은 금하는 모양이지만 스님의 삶을 보면 탁발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스님의 말씀대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중생은 절에서 만난 중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 5~6년 전 스님은 안산을 떠나 충남 홍성 오서산 정암사로 갔다. 그때부터 우리의 만남은 뜸해졌다. 그 대신 자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어느 해 여름에는 동아투위 장윤환 선생을 모시고 정암사를 찾았다. 장 선생은 워낙 박식한 분이라 두 분은 밤을 새워가며 종교 이야기 등으로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 날 밤에는 비가 억수처럼 내렸다. 이후 안산의 백곰산악회를 따라 오서산 산행을 갔는데 스님은 일행에게 하산 공양을 접대하여 주었다.
2004년 연말에는 스님의 안내로 오대산 일출을 보러간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안산에서 밤에 버스를 타고 새벽에 오대산 어느 골짜기 허름한 절에 도착했는데 범상 스님의 도반 스님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버스로 정상으로 이동하여 동해안 일출을 보았다. 광활한 운해를 향하여 일제히 쏟아지던 2005년 1월 1일 07시 35분 새해 첫날의 서광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지난 2005년 봄 우리는 함께 안산에서 ‘수리산 폭발물처리장 되찾기 안산시민연대’를 결성, 수리산 계곡을 차지하고 있는 군 폭발물 처리장을 이전시키려는 시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육군은 사격훈련 중 파생한 탄피 등 각종 미폭발물을 수거하여 이곳에서 폭발 처리를 했다. 그 바람에 주택가 피해가 클 뿐만 아니라 등산객에게도 피해를 준다 하여 이전을 요구했던 것이다. 수암봉 입구에 책상을 놓고 그 무더운 여름에도 서명을 받았다. 약 1만 여명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당국에 접수시켰지만 당국은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이는 군 당국의 제복우선인 군사문화가 시민우선인 민주문화와 충돌하는 현상의 하나다.
나는 일찍이 불교유신을 주장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스님에게 만해 한용운 같은 불교유신운동의 선두에 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만해 한용운은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인 <님의 침묵>을 펴냈고, 한국 근대 불교계에서 혁신적인 사상과 활동을 펼쳤으며(불교유신론), 3․1독립선언에 민족대표로 참가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혁명적인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불교에는 문외한인 이 사람이 우연히 만해를 읽은 이후 우리 불교가 너무 타락했음을 개탄하고 범상 스님에게 이를 전했다. 그 분도 나와 생각은 일치하였지만 아직은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내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 사회현상에 무관심 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지는 너무 오래 되었다.
나는 범상 스님을 만난 이후 불교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스님에게서 들은 말을 글에 인용하거나 지인들과의 대화 때 꺼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불교를 제법 아는 것 같은데, 언제 그런 공부를 했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다 범상 스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귀동냥으로 배운 덕택이다.
스님은 정암사에 계신다. 신도는 대개 충청인일 것이다. 충청도는 옛날에는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지역이다. 특히 홍주는 일제 치하에서는 만해 스님을 비롯하여 윤봉길 의사 등 수많은 애국자를 배출한 곳이다. 독립운동가란 단순한 일제 거부 운동가가 아니라 시대를 바꾸려는 개혁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지방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수구사상이 강하다는 평판이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님은 나름대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고 부단히 애쓰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스님은 추천시인이시다. 그 동안 혼자 힘으로 포교지를 여러 권 출판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 기고 등을 통하여 중생교화에 심혈을 쏟고 있다. 그의 개혁사상이 꽃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번에는 문집을 출간한다니 먼저 기쁘며 아울러 이 기회를 통하여 축하 인사를 드린다. 문화활동이란 승속이 함께 경하하고 권장할 일이다.
문영희
현) 6.15남북공동선언추진 안산본부 공동대표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겨레신문 이사
언론중재위원회중재위원
[ 추천사 ] -
한밤중에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어머니 치맛자락 냄새가 나는 듯했다.
수상한 밤이었지만 산을 오른 여정 탓인지 몸은 물에 빠지는 솜처럼 가라앉기만 했고 눈꺼풀이 천근이라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련한 목탁소리와 함께 독경소리가 들렸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할 수가 없는 시간에 들려 온 천산의 소리.
아침에 알아보니 범상스님이 오서산 새벽, 천지만물을 깨우는 도량석 소리였다.
목탁으로 만물을 열던 범상스님이 이제 詩로 사람마음을 열고자 한다.
시인 송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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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그러나 입멸이 다가오자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사는 ‘쿠시나가라’를 향해 마지막 유행을 떠나셨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살피는 것이 열반이며, 비 가릴 지붕과 바람 막을 벽이 없는 궁핍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대열반”라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
하여 언제나 세속과 소통하려 애를 썼고, 사바세계의 모순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 마음 하나만으로 2004년부터 지금까지 8년이란 시간동안 인연이 닿는 대로 매주 1편 이상 칼럼을 써오고 있다.
책을 내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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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상梵相 시인∥
∙ 대구 동화사 출가
∙ 불교인권운동
∙ 중앙승가대학에서 불교학․ 복지학 공부
∙ 2005년 <문학공간>으로 등단
∙ 안산타임스, 안산시민신문, 충민일보, 충청경제신문, 홍주일보 등에 칼럼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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