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식 수필가의 작품세계
『알콩달콩이어라』를 톺다
(사)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문학평론가 은종일
Ⅰ 프롤로그
『알콩달콩이어라』는 법수 정동식 수필가의 첫 수필집이다. 작가는 삼십여 년을 경찰에 몸담아 경찰의 꽃이라는 고위 간부로 정년 퇴임하였다. 상명하복 직선 조직에서 문학 작가의 출현은 드물었다. 조르주 심농, 요 네스뵈, 김성종 등 경찰 출신 작가들을 떠올린다. 모두 수사기관 내부의 위계와 권력관계, 정의를 추구하는 자와 현실에 타협하는 자 사이의 갈등을 밀도 있게 그려낸 소설가들이다. 법수 정동수 작가는 픽션(fiction)이 아닌 논픽션(nonfiction) 장르의 수필가로 데뷔하였다. 긴 설명보다 행동과 결과 위주의 서술을 선호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발아하고,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 맺은 가족 사랑 『알콩달콩이어라』의 상재는 문학계의 신선한 뉴스였다.
『알콩달콩이어라』는 제1부 「김 공주와 정 서방」 외 9편, 제2부 「울며 헤진 부산항」 외 9편, 제3부 「월야밀회」 외 9편, 제4부 「아흔의 우정」 외 9편, 제5부 「낯선 거리 낯선 밤」 외 9편으로 모두 50편을 담았다.
이를 내용별로 들여다보면 ‘가족 사랑’이 「김 공주와 정 서방」 외 14편으로 30%, ‘나의 삶’이 「내 삶의 누전」 외 11편으로 24%, ‘삶 안의 일반 주제’가 「하마터면」 외 9편으로 20%, ‘자연물’이 「숲속의 철학자」 외 6편으로 14%, ‘기타’ 6편으로 12%이다. 가족 사랑과 화자 작가의 이야기가 54%인 『알콩달콩이어라』를 톺아보고자 한다.
Ⅱ 첫술에 배부른 작품성
1. 실험 수필로 창작 지평 확장 시도
대문 작품으로 일컫는 수필집 첫 작품 「김 공주와 정 서방」은 수필의 통상적인 화자 시점(視點, View-point)이 아니다. 수필의 태생적 특성은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와서 직접 작품의 제재로 삼는 양식의 문학으로 출발하였다. 수필은 작가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소설과 수필은 많은 차이점이 있다. 어떤 연구자는, 수필은 보편적 내용 구조가 ‘경험+반응’으로서, 필자 스스로 겪은 일을 토로하는 것이 서술상 본질이어서 수필에서 운용하는 시점은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일인칭시점뿐이다, 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김 공주와 정 서방」은 ‘나’의 이야기를 소설적 화자 시점인 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집』이란 창작적 수필로의 진화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찰스 램은 《런던 매거진》에 ‘엘리야’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작품을 엮어 『엘리아 수필집』 제1집과 속집 제2집을 냄으로써 창작수필의 시조(始祖)로 올림을 받는 인물이다. 찰스 램의 대표작 「꿈속의 아이들」은 허구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쳐놓은 다음 안락의자에서 눈을 떴다며 수필로 빠져나온 작품이다. 수필의 화자 시점과 허구에 대한 잣대를 제시한 작품이다. 「김 공주와 정 서방」은 화자 시점 확장을 시도한 창작적 변화이자 실험 수필이다.
2. 실패를 제재로 문학성 제고
문학은 비공식 역사이다. 승리한 자들의 기록인 공식의 역사가 아니라 패배한 자들의 비공식 역사다. 무시되고 배제되고 잊히고 은폐된 자들을 호명해 주고, 어두운 역사의 지층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들려주고, 그들의 잊힌 이름을 기록해 주는 역사적 호명이자 해방의 서사다.
『알콩달콩이어라』의 다수 작품의 제재는 작가의 실패한 이력이다. 대표적으로 「외로움에도 길이 있다」, 「내 인생의 빨간 불」은 제재가 직장의 직위해제, 징계와 인사 조치라는 불편한 기억이다. 무장 탈영범의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상황 처리 책임과 희대의 탈옥수 관내 출현에 따른 현장 지휘 책임이라는 화자의 고난 극복사이다. 그 외에도 「낯선 거리 낯선 밤은」은 시위 현장의 방어 실패로 이마가 돌에 깨져 생명의 위협을 겪었던 일이고, 「김 공주와 정 서방」은 유리 지갑 봉급 생활자의 명품 가방 선물 실패이며, 「가을에 띄운 편지」는 친구에게 빼앗긴 첫사랑 실패이다. 「식물계 이단아 분꽃」, 「입춘첩」, 「내 삶의 누전」도 화자의 실패가 작품의 제재이다.
모로아가 말한 ‘자서전의 불안정성을 증명하는 여섯 가지 이유’에는 ①자연적인 망각, ②의식적인 망각, ③처음부터 불유쾌한 일을 말살하려는 정신 작용, ④수치심과 사양, ⑤기억의 합리화, ⑥자기와 친⸱근자를 높이려는 경향이다. 수필은 자아의 세계화이다. 그래서 ‘참’이 생명이다. 『알콩달콩이어라』는 실패를, 부끄러움을, 심지어 치욕을 작품의 제재로 삼음으로써 문학성을 드높였다. 문학은 사실의 세계를 진리의 세계로 그려가는 작업이다. 문학이 고수하는 독자성, 그것은 진실성이다.
3. 가족 사랑의 전범서(典範書)
잭 데리유는 “운명과 가족이 친지를 구성하고, 선택이 친구를 만든다.”라고 하였다. 모든 생명체의 본원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공동운명체가 가족이다. 인간관계의 구조 속에서 삶이라는 베틀을 차려놓고 비단 한 필 짜내는 것을 ‘인생’이라고 볼 때, 가족이야말로 운명적으로 확실한 씨줄이고 날줄이어서일 것이다.
『알콩달콩이어라』는 가족 사랑의 전범서로 손색이 없다. 「김 공주와 정 서방」, 「여왕의 귀환」, 「파랑새를 찾아서」, 「선양은 요순처럼」, 「칭찬 여왕」, 「그리움은 별빛 되어」, 「억수 할배」, 「거실 유감」, 「능선을 바라보며」, 「아흔의 우정」, 「새벽이 품은 사랑」, 「장모님은 그리움 나는 들꽃 향기여라」, 「귀가 보고와 밥상머리 교육」, 「사춘기의 슬픔과 운명의 갈림길」,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세요」와 같이 전체의 30%에 해당하는 열다섯 작품이 광의의 가족 사랑이다.
4. 언어 조탁과 서정적 감성, 지적 교감
수필 작품의 척도는 언어 조탁과 서정적 감성, 지적 교감이 좌우한다. 언어 구사 능력은 언어 조탁의 결과이다. 미적 표현의 자질은 서정적 감성에, 자아의 세계화를 위한 교술은 지성적 교감에 달렸다.
『알콩달콩이어라』 화자의 언어 조탁은 뛰어나다. 한 예로 ‘새벽’을 두고도 「해와 달이 보호하리라」에선 ‘어슴새벽’, 「해맞이」에선 ‘어둑새벽’, 「새벽이 품은 사랑」에선 ‘희붐해질 무렵’으로 조탁하였다. 「낯선 거리 낯선 밤」의 ‘안풍하다’, 「사춘기의 슬픔과 운명의 갈림길」의 ‘거리의 판사’ 등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의 ①②③④⑤의 예문은 서정적 감성의 표현이고, ⑥⑦⑧의 예문은 지적 교감의 표현이다.
①
느티나무 우듬지에 쉬어가는 봄빛, 하늘은 푸르고 홍매화는 붉다. 부부, 꽃을 바라보며 살포시 손잡는다. 방긋 웃는다.
-「김 공주와 정 서방」 끝부분
②
고독 속에서도 백성과 더불어 지내고자 했던 왕의 마음은 지금도 청룡포를 맴도는 바람으로 남아 있다. ~ ~ ~그 문장 하나가 동굴 속에 갇힌 나를 세상 밖으로 슬며시 떠밀어 주었다.
-「외로움에도 길이 있다」 끝부분
③
운무가 짙어지며 눈보라가 치더니 변화무쌍한 융프라우의 희미한 실루엣은 이내 종적을 감춘다. 세상은 온통 짙은 회백색이 되었다.
-「알프스 융프라우」 1. 끝부분
④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흐른다. 돌아서는 마음 한편에는 지워지지 않을 선명한 흰빛 하나가 남았다.
-「알프스 융프라우」 2. 끝부분
⑤
기룡산 하천원에 골바람이 분다. 경주성의 함성이 귓전을 때리는데, 묘 곁을 지키는 보랏빛 들꽃만 서글플 뿐, 잠든 억수 할배는 끝내 말이 없다.
-「억수 할배」 끝부분
⑥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입대를 코앞에 둔 우정의 패기는 서로의 심신에게 새긴 춘첩이었다. 붓으로 쓰지 않았지만, 한결같은 그 마음은 가슴에 알알이 박혀 이후 내 삶과 인간관계의 거울이 되었다.
-「입춘 덕에 웃는다.」 끝부분
⑦
지연⸱학연의 힘 있는 동창, 권력자나 재력을 갖춘 부자는 확실한 비빌 언덕이다. 하지만 가진 자만이 꼭 비빌 언덕이 되는 건 아니다. 정곡을 찌른 이웃 아저씨의 조언 한마디도 천군만마의 비빌 언덕이 된다. 난제에 부딪혀 발을 동동 구를 때, 삶의 지혜로 등을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거뜬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비빌 언덕 기댈 언덕」 중간 부분
⑧ 글은 말보다 느리지만 곱씹어 볼 여운이 남는다. 문득 누군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한편의 글로 아련함을 달랜다. 애틋하게 눌러쓴 글발은 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편지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가을에 띄우는 편지」 끝부분
5. 구성적 비유에 의한 형상화 시도
문학이란 추상적인 세계를, 언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형상화의 작업이다. 문학적 표현에서 이미지 형성은 주로 비유에 의한다. “일상적인 언어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 전달하지만, 비유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비유란 추상적인 원관념을 그와 외형이나 속성이 상통할 수 있는 사물을 보조관념으로 끌어들여 구체적인 형상이 떠오르게 함으로써, 추상적인 관념을 실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표현 기법이다.
『알콩달콩이어라』의 작품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하마터면」은 보조관념 ‘식물원 월담 뛰어내리기’로 원관념 ‘노년의 만용’을, 「입춘 덕에 웃는다」는 보조관념 ‘입춘첩 오기’로 원관념 ‘새로운 춘첩 향유’를, 「식물계 이단아 분꽃」은 보조관념 ‘멘델법칙의 이단아 분꽃’으로 원관념 ‘현실 적응에 실패한 화자’를, 「내 삶의 누전」은 보조관념 ‘가정 전기의 누전’으로 원관념 ‘화자의 에너지 방전’을, 「외로움에도 길이 있다」는 보조관념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의 처지’로 원관념 ‘화자의 직위해제’를, 「칭찬 여왕」은 보조관념 ‘이모님의 칭찬하기’로 원관념 ‘칭찬 여왕’을, 「가을에 띄우는 편지」는 보조관념 ‘화자 첫사랑의 실패’로 원관념 ‘첫사랑의 불완정성’을 형상화 시도한 작품들이다.
Ⅲ 에필로그
정동식 수필가는 「귀가 보고와 밥상머리 교육」에서 밝혔듯이 부산시 어린이 백일장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일찍이 문학 작가의 씨앗이 심어졌고 발아하였다. 정년 퇴임 후 응모한 2024년 제10회 매일 시니어 문학상(논픽션 부문) 수상은 문학의 씨앗이 성장하여 꽃피운 과정이자 결실이라 믿는다. 첫술에 배부른 『알콩달콩이어라』의 작품성도 이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수필과 신변잡기의 사전적 정의마저 헷갈리는 한국 수필의 현재진행형 현안 앞에서 수필의 창작 문학화와 수필 지평을 열어가는 정동식 수필가에게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알콩달콩이어라』의 출간이 출발점이 되어 더 좋은 작품집이 이어서 상재되길 바라며, 『알콩달콩이어라』가 사랑받는 수필집으로 독자들에게 회자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일독을 권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