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도 2살이 많은 서울로 중3때 전학을 온 이 친구와는, 보성중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고학으로 학비를 벌던 나와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팔이'에 따라 나섰다.
동아일보사 후문에서 가판신문을 1부당 5원에 100부씩 사들고 남대문시장, 남산, 묵정동, 대한극장 앞을 돌아 삼일로, 종로통, 동대문시장, 동숭동 서울대학교 앞, 혜화동로터리, 삼선교, 미아리고개, 종암동, 미아삼거리, 대지극장 등지를 돌아다녔다. 신문 1부당 20원이 시판가였으니 벌이가 제법 짭잘했다. 다 팔고 몇부 안남으면 세차장, 고물상, 복덕방, 포장마차 등에 '공짜'로 선심을 쓰기도 했다. 하도 걸어다녀서 발에 물집이 가실 날이 없었다. 이 친구는 "그 때 서울구경을 원없이 다했다"고 했다.
경신고등학교로 진학한 그 친구와 배재고등학교로 진학한 나는 이후에도 오랜 인연들이 이어졌다.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를 딴 그 친구, 석사학위 논문을 인쇄제작하면서 서문에 '이근규에게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회고록 인사말에서나 그러는 거지, 나 참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야..." 말은 그러면서도 석사논문을 어루만지며 고맙고 감격스럽게 받아들던 기억도 있다. 지금껏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이 친구에게 갚을 수 없는 신세를 많이도 졌다. 참 사연도 많다. 언제 시간이 나면 일일이 기록해보고 싶을 정도로 아프지만 풍요로운 삶의 편린들이다.
...모처럼 서울 강남의 한 고급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와 있던 그 친구는 커피숍에 있지 않고 로비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끼린데 공연히 비싼 커피숍 보다는 여기서 이야기하자..."
"그동안 성공과 실패를 두루 겪으며, 고통과 좌절 속에서 오늘까지 우리 잘 버텨왔다. 이름 석자에 명예와 도덕성을 지키려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죽을 힘을 다해 살았다." "이기적으로 살지 못해서, 돈 때문에 어렵고 힘들었지...하지만 이렇게 건강하고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매사에 감사하면서 또 다시 우리, 새로운 꿈을 가지고 끈질기게 도전하자...다시 힘을 내어 두주먹 불끈 쥐고 이를 악물자~" "우리 울지 말자...통곡하고 아파할 시간이 없어...온몸을 던져 우리 남은 삶을 불살라가자~"
첫댓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쓸쓸한 날에, 문득 생각나는 오랜 이야기가 있어...이렇게 전해봅니다~^^
로비에서의 웃음이 어릴적 그것과 흡사해보이네요 ㅎㅎ
그런 모습을 기억하고 있군~~^^
오늘 대전에 가 있는 태형의 어머님을 만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