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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27 악령들로부터 구원하라(마가복음5장1-5절)
성경말씀은 마가복음 5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마가복음 5장]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구원’이라는 말을 거의 별로 안 썼죠.
기독교 이전에 하나님 모를 때 우리가 구원이라는 단어나 개념 용어 이것이 말은 있지만, 거의 구원이라는 말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하다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기독교의 용어중에 가장 절박하고 가장 중요한, 기독교 모든 교리의 거의 중심에 구원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단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라는 말이 ‘여호수아’라는 히브리어가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음역되면서, 여호수아라는 말이 헬라어로 표기가 안 되니까 ‘예수스’로 됩니다. 예수스..
‘예수스’가 우리 한국으로 올 때 끄트머리에 ‘스’자가 하나 빠져가지고 ‘예수’가 되어 버린 거예요.
뿔이 올라가면 여호수아인데, 여호수아라는 말은 ‘여호와 수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구원하시는 여호와, 여호와의 구원..’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 예수죠.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말은 여호와의 구원을 믿는다..
여호와의 구원으로 다가오신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피로서 우리 죄문제를 해소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을 믿는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우리 기독교적인 구원 개념이고, 유대인들은 그런 구원 개념을 그렇게 알고 있지 않았어요.
유대교가 바벨론 포로 가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예수님 오셨을 때는 500년 400년 역사를 갖고 있었지만, 그 유대교의 구원의 개념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고, 대체로 유대교가 가지고 있는 구원의 개념은 무겁게 매운 압제자의 멍에로부터 구원받는다.
이를 테면 바벨론의 멍에라든지 아니면 헤롯이 지운 멍에라든지 로마가 지웠던 멍에라든지 이런 강대국이라든지 이런 침략자들이 와서 압제자들의 학정이나 폭정에서 구원받는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죠.
그런데 기독교가 와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준 구원은 그것과 한참 거리가 멀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준 구원이 제일 먼저 어떤 구원을 보여주셨느냐?
첫째 질병으로부터 구원이예요.
예수님을 찾아가면 병이 낫는 거예요.
두 번째가 귀신들로부터 해방이라는 거예요.
세상 어떤 종교가 귀신을 쫓아내는 굿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가 본대로는 굿을 하면 귀신을 쫓겨나가는 게 아니라 귀신을 더 초대하는 거야.
그것은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우리 집에서 굿을 제일 많이 했으니까..
예수님 믿기전에 우리는 1년에 두번 이상 굿을 해요.
봄 가을로 아주 춘추로 연중 행사로 했어요.
여러분 ‘단골’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그 단골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점쟁이가 늘 가는 곳이예요.
우리 집이 단골이었어요.
점쟁이가 오면 우리 집이 제일 만만해가지고..
우리 어머니가 사람이 좋으니까.. 우리 어머니 자랑해도 괜찮겠죠?
우리 집은 우리 아버지가 사람이 좋으니까 사랑방이고, 우리 어머니가 사람이 좋으니까 점쟁이가 오면 단골로 우리 집에 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귀신은 달래거나 섬기면 더 많이 와요.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굿을 많이 했는지..
굿을 많이 하는데, 굿을 많이 하는 집치고 집안 편안한 집이 없어요.
굿을 많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불행에 더 깊이 빠지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는 우리 큰집 중간 큰집 그리고 외가집 작은 외가집 할 것 없이 한집도 예외가 없이 장남이 비명에 가는 거야.
나이 40도 안 되어서 장남들이 다 쓰러지는 거야.
40이 아니고 20대 30대 장남들이 막 쓰러지는 거야.
저도 예수님 믿기 전에 첫 아이를 남자 아이를 낳았는데, 낳으면서 사산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우리 집 차례인데, 우리 큰형님이 자꾸 이런 저런 질병을 앓고 수술을 몇번하고 폐병에 걸리고 하여튼 굉장히 어려웠을 때에 제가 한번 제안을 했죠.
‘이러지 말고 바꿉시다. 확 바꿉시다. 그냥..’
여태까지 제사를 하는데 우리 집처럼 제사를 극진히 모시는 집이 없어요.
우리 아버지는 그냥 제사 극진하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아주 극진하게 제사를 모시는 거예요.
따라서 저도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제사 모시고 했는데, 다 집안마다 불행이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그래서 바꾸자 해서 바꾸고 나니까 그 뒤로도 귀신들이야 장난을 했을지 모르지만, 어떻든 우리 집에 와서 우리가 예수 믿고 난 이후로 우리 집안에 아무도 장남이 쓰러진 일이 없단 말이죠. 현재까지..
그래서 귀신들로부터 구원이예요. 구원..
귀신의 훼방과 장난으로부터 악령의 권세로부터 구원. 이것은 굉장한 겁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맨 먼저 질병 치료하고 귀신 쫓아내고 이렇게 하셨어요.
그 다음에, 우리 사람이 살아가면서 왜 구원이란 단어가 절실하냐 하면, 이런 저런 어떤 불행한 일을 만납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래도 대체로 행복해 보여요.
얼굴에 행복을 써 붙인 것 같아. 얼굴이 훤하고..
보니까 별로 행복한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예수 믿는 것 말고는 별로 행복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행복해 보여요.
그래서 여러분이 아마 어쩌면 불행을 잘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사람이 뭐가 그렇게 맨날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까?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제 일 요소가 뭐 같아요?
전혀 그러니까 불행을 모르는 거야.
제가 보는 대로는 건강을 잃어버리는 거죠.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면 누구든지 다른 어떤 조건이 있어도 행복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것 같아요?
처음부터 건강하니까 잘 모르죠..
여러분 잃어버린 후에야 소중함을 아는 거죠.
건강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은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저는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라도 이런 저런 건강 때문에 사선을 넘나들었던 적이 두번 정도 경험이 있어요.
그 때는 너무 믿음이 충만해서 그런지 죽음이라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고, 한창 젊을 때 갓 결혼해서 몇년밖에 안 되었는데,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너무 커서 죽음이라도 두렵지 않았어요.
폐결핵 때문에 피를 토하고 그러면서도 죽음 자체가 그렇게 두렵지 않았어요.
지금이 오히려 두려워요.
지금은 믿음이 없어졌는지, 내가 뭘 했다고 하나님 앞에 가겠나 그런 두려운 마음이 있는데,
그 때는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도 죽음이 안 두렵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결핵이 치유가 되고 그리고 결핵성 늑막염이 네번 다섯번 재발해가지고 폐속에 거품이 부글부글하는 이런 경험을 했는데, 네번이나 재발했으니까..
그 당시는 의료보험도 안 되고 그냥 두러누워서 낫고 또 재발하고 이렇게 했었는데, 지금 재발 안한지가 10년 되었으니까..
이제는 재발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렇죠..
그 때는 믿음이 충만해가지고 틀림없이 죽음으로 가는 것 같은데, 별로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어요.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좀 더 알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것이 내가 볼 때도 시원찮은데, 하나님 볼 때 오죽 시원찮겠나..
이렇게 보니까 죽음이라는 게 천국가는 것은 분명한데도 겁나는 거예요.
그래서 질병으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몰라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중에 가장 심각한 게 건강 문제예요. 질병..
예수님이 오셔서 거의 그런 질병을 걷어내고,
그 다음에 귀신을 쫓아낸 거예요.
그 다음에 사람이 행복한 요건중에 돈이나 재산이 다는 아닙니다. 아무리 돈 많다고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기본으로 의식주 문제와 자녀들 교육시킬 만한 그 정도도 해결이 안 될 정도로 가난하게 되면 행복하기 어려워요.
절대 빈곤이 있어서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될 정도로 어렵다든지 하면 행복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수시로 집에서 셋집에서 쫓겨나야 된다. 소득은 하나도 안 올라가는데, 집세는 자꾸 올라간다고 해 보세요.
그리고 양식이 딱 떨어져가지고 돈이 한푼도 없이 양식이 떨어졌다든지.. 옷은 내가 볼 때 얻어입어도 문제가 안 될것 같아요. 한국은..
그런데 집문제와 양식 내지는 출입을 해야 될 때 차비가 없다든지 그렇게 되면 불행한 거죠.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가난에서도 구원이 필요한 거예요.
가난에서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그래도 어렵지만 그런대로 살아가니까 절박할지 모르지만, 지금 겨우 생활하는 상태에서 직장에서 바로 잘렸다..
그러면 절박합니다. 그리고 어디 받아주는 데가 있느냐?
받아주는 데도 별로 없어요. 절박한 거죠.
가난으로부터 구원..
아까 얘기했죠?
압제자의 폭정이나 학정에서 구원하는 것, 질병에서 구원하는 것, 가난에서 구원하는 것, 귀신의 권세에서 구원하는 것..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독교가 갖고 있는데,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거예요. 죄로부터..
그래서 최소한 우리가 5가지의 구원이 있는 거죠.
그 다음에 더 어려운 게 있어요.
더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인간관계가 잘못되어서 불행한 사람이 많아요.
어떻게 하기 어렵습니다.
제일 해결이 안 되는 게 인간관계가 잘못되어서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요.
남편을 잘못 만나가지고 불행한 사람이 있어요.
아내를 잘못 만나가지고 아무리 뼈빠지게 벌어오는데도 불행한 사람이 있어요.
제가 아는 진주에 어떤 부인은 남편이 꽤 벌어오는데 맨날 매월 몇백만원 적자야.
이혼을 하자니 그것도 기가 막히고 애들도 있고, 안하자니 때릴 수도 없고 때리면 죽어버리고..
이 인간관계가 잘못되어가지고 불행한 이것은 참 예수 믿어도 참 어렵습니다.
믿음으로 인격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아내를 잘못 만나든지 남편을 잘못 만나든지 하면 기가 막히는 거야.
여러분 솔로몬이 세번씩이나 잠언에서 하는 말이 뭐예요?
‘다투는 여자와 함께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게 낫다.’
얼마나 사무쳤던지 솔로몬의 잠언에서 세번씩이나 나옵니까?
또 다투는 남자 때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게 낫겠죠.
인간관계가 어려운 수가 많아요.
그래서 대개 다섯가지 여섯가지 구원의 개념이 있는데, 오늘 여기 한 케이스는 마가복음 5장에서 나오는 얘기는 귀신으로부터 구원받는 문제죠..
[마가복음 5장]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거라사인의 지방이다’ 하니까, 거사라라는 도시가 아닐 수 있어요.
‘거라사’ 하는 것을 그 쪽에서는 ‘쩨라쉬’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성지순례 갈 때 ‘거라사’ 하지 않고 ‘쩨라쉬’ 하니까, 거라사 하면 거의 다 잘 몰라요.
요단강 동편이 있고 큰 로마시대의 도시인데, 이른바 데카폴리스 로마시대의 팔레스타인에 10개 도시중에 들어가는 큰 도시입니다. 굉장해요..
그러니까 그 거라사라는 도시에 간 게 아니고, 거라사인의 지방 어떤 곳인데,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성경에서 특히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그렇고 제자들도 귀신을 말할 때 대부분 앞에 ‘더러운’ 귀신이라고 되어 있어요. 더러운 귀신..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여러분 혹시 귀신들어가지고 자기 몸을 자꾸 자해하는 사람들, 자해하다가 자살까지도 가죠.
자해하고 자살 같은데, 사실은 타살일 수 있는 거예요.
본정신이 아니죠.
자기 영혼이 자기 몸을 상하는 게 아니라고..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놀랍지 않습니까?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을 정도인데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서 절을 하는 거예요.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벌써 그런 말씀을 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죠.
그 때,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희한한 일이죠.
그 한 사람에게 들어있는데 그 귀신에게 ‘너 이름이 뭐냐 하니까’ 군대라고 하는 거야. 군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군대는 원래 뭐할려고 만든거죠? 군대는 전쟁할려고 만든거죠.
전쟁은 두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공격적인 전쟁이 있고 하나는 방어적인 전쟁이 있어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어지간하면 공격적인 전쟁은 별로 안 했죠.
늘 우리나라는 방어하는 정도 이렇게 했는데,
남의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 만든 군대가 있어요. 항상..
그럴 때 군대를 이끌어 가는 영이 있다는 거예요. 군대 영이..
사람을 가지고 군대를 만들어가지고 침략해서 사람을 죽이게 하는 그런 영의 세계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파사국 군’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에..
다니엘서에서 봤죠?
이 군대의 영이 있어야 군대를 만들어요.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서 군대가 없으면 되느냐?
군대가 없으면 바로 침략당하죠.
군대라는 게 있어서도 안 되고 없어서도 안 되고 참 큰일이야.
제가 군에 가서 제 나름대로 철학서적을 읽고 그랬거든요.
인생의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철학서적을 읽고 했는데, 창문으로 연병장을 내다보는데, 연병장에서 뭐 하느냐?
총 앞에 대검을 꽂아서 하는데, 그 때는 안 꽂고 총검술을 하는 거야.
총검술이 ‘찔러 찔러 길게 찔러 우로 돌아 돌려찔러’ 이렇게 하는데,
이게 뭐하는 것이냐 하면, 사람이 사람 찌르는 연습을 하는 거야.
‘야 이것 참 해서는 안 되겠다..’
물론 우리는 침략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국토 내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어떻든 마음에 안 들어요.
저도 그것 가르치는 조교 했거든요.
그것도 김신조 때문에 5분 전투대기조라고.. 그 5분 전투대기조는 무시무시하게 훈련하는데, 그 때부터 ‘야 군대는 문제다..’
이 때 군대귀신이라는 건데 ‘우리가 많다’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지는 잘 몰라요.
한 사람속에 얼마나 많은 영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우리가 꼭 하나 아실 게, 영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개념과는 다른 거예요.
우리가 만약에 한 사람의 영혼이 한 사람의 육체만하다면 한 사람에게 한 영혼밖에 못 들어가겠죠?
그런데 우리 성경에는 여기 군대가 있고 일곱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만났던 어떤 처녀는 백 둘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내가 들어가서 세어보지 못했지만 그 말대로는 백 둘이라는 거예요. 진짜 힘이 세요.
여기 보니까 분명히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쇠고랑을 깨뜨려버린다는 거예요.
지금도 이해가 안 됩니다.
여러분 쇠고랑과 사람이 어느 것이 더 단단합니까?
쇠고랑이 더 단단할 텐데 그것을 끊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센 것은 내가 못 봤는데,
전에 한번 얘기 했죠?
처음 예수믿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민인옥이라는 경상남도 산청군 특리에 20세 안팎되는 처녀에게 악령이 들어갔는데, 귀신이 백 둘이 들어갔다고 하면서 ‘네가 누구냐?’ 하니까 ‘누가 대답하면 되는데?’ 그래요.
나이가 나보다 10살이나 아래인데 나보고 말을 놓아 하면서 ‘누가 대답하면 되는데?’ ‘무슨 소리냐?’ 하니까 ‘우리가 여럿이거든.’ 그래요.
그럴 때 주저하면 안 되거든요
‘야 너희 중에 대장 나와!’
‘내가 대장이다.’ 하는데 ‘네가 누구냐?’ 하니까 ‘천사장 루시퍼다 왜?’ 하고 완전히 갖고 노는 거예요.
평소에 그 자매가 정신이 건전할 때 귀신들리기 전에는 얼마나 겸손하고 착하고 얌전하고 여성스럽고 했어요. 산청에 있는 민씨 종가집 딸이거든요.
민씨들이 자녀 교육을 똑바로 하는 집안이라서 정말 예절교육을 바로 하는 집안인데, 내앞에서 ‘얍! 얍!’ 하고 ‘손 내려!’하면 올리고 ‘내려!’ 하면 더 올리고 완전히 조롱하는 거야.
안 당해봐서 웃고 있지만 한번 당해봐.. 얼마나 기분 나쁜지..
그래서 손을 내리라고 하니까 더 올리고, 내가 내리려고 이렇게 하니까 안 내려가는 거예요.
내가 목수 일을 해가지고 보통 사람도 저를 못 당해요.
당기면 뒤로 떨어지는데,
야들야들한 처녀 손을 내가 내릴려고 해도 팔이 부러지면 부러졌지 안 내려가는 거야.
손을 드니까 몸체가 달랑 들릴만큼 힘이 빳빳한 거야.
그래서 저는 여기에 전혀 해석할 것도 없이 그대로 믿어요.
힘이 센 거예요.
군대귀신이 들어가니까 군대만큼 힘이 세고, 백 둘이 들어가니까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것은 전혀 해석할 필요가 없고 문자대로 실제로 그래요.
그러니까 도시에 있는 목사님들이나 이런 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귀신을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귀신과 씨름해본 적도 없고 그러니까 이런 성경은 이해가 안 되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하여튼 시골에, 그냥 다 쓸만한 사람은 도시로 나가버리고 전부 귀신들린 그런 사람만 남아있는 그런 동네에 살다보니까 늘상 만나는 게 그런거야.
그래서 그런 야전부대 소총소대의 소대장처럼 정말 그런 악령들과 씨름을 해봐야 성경이 제대로 보인다니까..
마산 무학산 밑에 가면 지금도 있는가본대, 무학산 기도원이 있어요.
거기에서 당시에 우리 한국에서 귀신 쫓아내는데 권위자라는 강신오 목사님이란 분이 있었어요.
지금은 벌써 하늘나라에 갔을텐데, 제가 초신자일 때 그분은 60대가 되었으니까..
강신오 목사라는 분이 감리교 목사님인데, 한국에서는 귀신 쫓아내는 데에는 그 당시에 일인자였어요.
그런 집회를 하는데, 목사님들이 와서 뭐라고 하느냐?
그 목사님이 성경에 있는 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하니까, 일반 목사님들이 뭐라고 하느냐?
‘진짜 귀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들이 그래요.
전혀 귀신을 모르는 거예요.
실제로 존재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미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시 묻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 했더니 군대라는 거예요.
10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원리가 있죠?
아무리 군대이거나 무슨 어떤 귀신이라도 예수님 앞에는 그저 꼼짝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여기 여러분이 가끔 의문을 제기하는데, 어찌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안 먹는데 여기에 돼지를 치고 있었느냐?
제가 알아보니까 로마군대에 납품하는 업체가 그 땅에서 돼지를 많이 먹였다고 해요.
로마인들은 돼지를 먹었으니까..
그래서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는데, 여기는 그런 말이 없는데, 누가복음에 이 기사를 다룰 때 누가는 또 더 세밀히 알아보는 사람인데, 누가가 더 세밀하게 알아보니까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가 먼저가 아니고,
일단 ‘무저갱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장면이 나와요.
왜 이 귀신이 예수님에게 무저갱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하겠습니까?
보나마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벌써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생겼거든. 자기들이..
그러니까 무저갱으로 집어 던질려고 온 것을 알기 때문에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영적인 원리를 또 하나 배울 것은, 성경에 보면 이미 천사들 중에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그런 악한 영들을 어둠의 구덩이에 던져서 영원히 심판때까지 가두어 두었다. 하는 말이 있어요.
가두어 두었는데 도대체 떠돌아다니며 지금도 괴롭히는 이 귀신은 뭐냐?
성경은 이것을 세세히 말하지 않습니다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일부 아주 극악무도하고 사람이 감당치 못할만큼 악독한 그런 귀신들은 진작 무저갱에 이미 갇혀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남아서 인간세상에서 성도들사이 교회사이에서 여전히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시험하고 예수 못믿게 하고 미신 섬기게 하고 우상 숭배하게 하는 이렇게 하는 악령들은 악하기도 하고 거짓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악독해가지고 사람이 감당치 못할만한 그런 것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 시험용으로 시험하기 위해서 영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도 하고 시험하기 위해서 조금 남겨놓은 겁니다. 조금..
그런데 또 한가지 원리는 조금 남겨놓은 귀신들 중에 어떤 것은 점점점점 세상에서 더 악해져 가는 게 있는 거야.
성품이 악하게 된 그 상태에서 고정이 아니고, 처음보다 점점 더 악해져가는 악령이 있다는 거예요.
여쭤 봅시다.
부모님이 우리가 어릴 때 우리를 키울 때 우리 어머니가 처음부터 ‘이놈 못된 놈으로 길러보자.’ 그런 엄마 있어요? 없어요?
본인이 어릴 때 ‘나는 앞으로 악한 사람이 될거야.’ 그렇게 결심한 적 없죠? 그렇죠?
그런데 악의 요소가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타고 난 원죄의 죄성이 우리속에 있었고, 아무리 윤리 도덕교육을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이 점점 파괴되고 세상은 점점 더 흉포하고 강포하고 악해져가요.
그러면 이게 어디에서 이렇게 도덕 윤리 교양교육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 가느냐? 누구의 영향이냐?
영적인 문제죠.
여기에도 이 군대귀신도 처음부터 이렇게 악하지는 않았을거야.
그런데 지금은 너무 악해가지고 그것도 한 사람에게 이렇게 군대라는 영이 딱 들어가 있으니까 아무 사람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을 정도로..
다시 말하면 사람이 감당치 못할 정도로 악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거기 가시는데, 여러분 이 거라사 지방에 예수님이 가셔서 지금 이 사건 이 일 외에 달리 하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단지 이 한 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가셨다는 거예요.
최종적인 결론을 내면 지금도 수시로 너무 악해서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귀신은 수시로 예수님께서 묶어서 무저갱에 집어넣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교리까지는 아니라도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거죠.
따라서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를 보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도 내신다.’ 믿어집니까?
이런 영적인 원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귀신이라는 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너무 두려워서 벌벌 떨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냐?’ 하는 것처럼 귀신들이 악하고 점점 더 나빠지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포기하거나 낙심하거나 두려워하면 그러면 바로 귀신들 기분좋게 하는 거야.
자 그래서 예수님께서,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그러니까 그 악한 영이 사람에게 들어가니까 사람이 아주 제 정신이 아니더니, 돼지에게 들어가니까 돼지도 본정신이 아니죠.
여러분 돼지가 자살했다는 말 들어봤어요?
창세이후로 돼지가 자살했다는 말 없잖아요.
그런데 돼지가 물에 들어가서 다 빠져 죽은 거예요.
우리 어릴 때 이런 말이 있었어요.
산청읍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매촌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 매촌이 어디냐 하면 우리 부목사님 고향 동네예요.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에 거기에 나보다 한 학년 위에 남학생이 광견병에 걸렸어요.
왜 걸렸느냐 하면, 봄이 되면 개가 미치는데 개가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죠?
뭘 알아야 하지.. 모르면 설교가 안 돼.
개가 미치면 주인을 몰라봐요.
광견병은 광우병과 다릅니다.
광견병은 바이러스에 의해서 생기는데, 개가 미쳐버리면 뇌에 손상이 생겨서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나 보고 물어요.
물면 놀랍게도 사람도 그 광견병처럼 되어가지고 사람도 미쳐버려요.
우리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미쳤나?’ 그런 말 하죠.
요즈음은 잘 안 쓰는데, 옛날에는 그런 말 많이 썼어요. ‘네가 미쳤나?’ 그러면서..
그런데 내가 확인은 못해봤는데 그 때 소문듣기로는 그 광견병 걸린 개에게 물려서 미쳐버린 우리 초등학교 한해 선배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사람이 개처럼 짖는다는 거예요.
혹시 그런 것을 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듣기는 들었어요.
그래서 이것이 단지 광견병이 단지 바이러스만의 이야기냐? 아니면 그것도 어떤 영이 있느냐?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예요.
제가 하도 어려서 겪은 사건이기 때문에 나중에 예수 믿고 나서 미치는 것이 귀신에 의해서 미칠 수 있다 하는 것을 정리하고 나니까, 사람인데 광견병 걸린 개에게 물려가지고 사람도 개처럼 짖는다는 거죠.
어떻든 여기,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17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참 웃기는 얘기죠.
보세요. 아니 그렇게 그 지역에 무덤가에서 위협적으로 하던 사람이 온전히 정신이 완전해가지고 옷을 단정하게 입고 앉은 것을 보면 감사라든지 감격이라든지 잔치를 해야 될 것 아녜요? 그렇죠?
그런데 뭐라고 해요?
제발 이 동네에서 소란피우지 말고 떠나달라..
사람이 온전하게 된 것은 관심이 없고 돼지가 물에 들어가서 자살한 것 때문에..
예수님이 밀어 넣은 것 아니잖아요. 돼지 지가 들어갔지..
그러니까 시비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제발 더이상 말썽피우지 말고 떠나달라 이랬다는 거예요.
사업상 지장이 있으니까..
아마 오늘날도 그렇지 않겠나 싶어요.
사람 나은 것은 관심없고 돼지 죽은 것 손해본 것만 가지고 떠나달라 하지 않겠나. 지금도..
16 이에 귀신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17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다시 말하면 그 거라사 지방에서는 이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죠?
단지 이 사건 하나만 해결하시고 돌아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감당치 못할만한 일.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기도할 수 있고 간구할 수 있지만, 하나 안 하나 하나님이 알아서 이런 것은 제거한다는 거예요.
전에 우리가 가나안 여인 중에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자기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다. 이렇게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페니키아 지방으로 가셨어요.
그 때 국경을 넘어간 거죠.
물론 로마시대니까 국경이 없습니다만 거기 가서도 아무 일 한 것이 없고 단지 그 사건 하나 해결하고 오신 거예요.
사람이 감당치 못할 그런 정도가 되니까, 예수님께서 가셔서 해결해 놓고 오신거죠.
두 케이스죠. 이 사건과 수로보니게 딸 이야기..
19절,
19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데카’는 10이예요. ‘볼리’하는 것은 폴리스.
‘데카폴리스’는 10개의 도시라는 뜻이죠. 로마가 팔레스타인 통치를 위해서 10개 도시를 정책적으로 세웠던 것인데,
그 도시의 이름들이 스키도폴리스, 히포스, 가다라, 벨라, 필라델피아, 거라사, 디온, 가나다, 다메섹, 라바나 예요.
이렇게 10개 도시가 데카폴리스인데, 이 지역에 전파되어서 모든 사람이 다 신비하게 기이하게 여겼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자, 이 사람들이 평소에 같으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릴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회당장이야.
가버나움에서 회당장이면 당당하게 당시에 상당히 지도층 인물인데, 이사람이 젊은 예수님앞에 와서 발 앞에 엎드리고 안할텐데,
딸이 죽게 되니까..
12살 먹은 딸이 그저 다 죽어가고 있는거야.
여러분 12살이면 얼마나 예쁩니까? 12살이면 보통 5학년이죠.
여러분 여자아이가 어릴 때도 예쁘고 다 커도 예쁘지만 12살때 제일 예쁘죠.
좀 더 크면 징그럽고 하지만 12살 때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런데 그게 죽게 되었다는 거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딸이 죽게 되니까 그냥 예수님 앞에 와서 절하는 거야.
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왜 에워싸고 밀고 하느냐 하면, 길이 좁아요.
지금처럼 8차선이 아니고 다 길이 좁으니까 들어가다가 떠밀리는 거예요.
그런데 가는 중에,
25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혈루증’ 하는 말은 혈우병과 다릅니다.
‘혈우병’ 하는 것은 지혈이 안 되고 계속 피가 흐르는 것이 혈우병이고,
혈루(血漏)하는 것은 피가 끊임없이 흐른다고 되어 있어요. 원어에 보면..
여성들 부인병인데 계속 하혈하는 겁니다. 기가 막히죠.
먹었는데 자꾸 피나 고름이나 이런 것이 계속 나오니까 성적인 질병인데, 다른 병도 자랑하기 쉽지 않지만 그것은 참 말하기가 민망스러워요.
그러니까 예수님께 떳떳하게 와서 내 병 고쳐주십시오. 말도 못해..
보나마나 성병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여간해서는 건전한 가정생활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대개 어떤 문란하거나 어떤 죄와 관계있어서 생기는 수가 더러 있으니까..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거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우리 요즈음 같으면 ‘내가 너를 고쳐줬어. 너 잊으면 사람 아니야.’ 그러면서 막 비끌어서 매주 기도원에 오라고 이렇게 할텐데, 예수님은 그렇게 안한 거죠.
‘내가 너를 고쳐준 게 아니고 네 믿음이 너를 고쳤으니까 평안히 가라..’
여러분 이런 것을 보면 얼마나 예수님이 멋쟁이입니까? 그렇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병에서 놓여서 건강할지어다.’
이 여자가 마치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안 해주면 은혜받기는 받았는데 도둑질 은혜야.
떳떳하지 못할 것 아냐?
그리고 그 여자가 원래 나병이라든지 치명적인 성병이나 이런 병들은 같이 생활을 못해요. 원래..
한 마을에 같이 살지 못하고 불가촉 질병, 서로 접촉해서는 안 되는 질병이라 해가지고 격리된 그런 곳에 살아야 되는데,
이렇게 나았다는 것을 확인받아야 건강한 사람으로 공동체 삶 속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나은 것을 확인해줘서 돌려보내야 떳떳하게 되거든요.
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거기 줄을 그으세요.
옛날에는 제가 이 본문을 소개할 때 제목을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런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었어요. 오래전인데..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훤화(喧譁)’는 잘 안 쓰는 말인데, 앞으로는 바꿔야 합니다. 이런 말은..
떠들어. 그냥 수군거리고 웅성거리고 떠들고 하며..
울고 불고 떠들고 그런 거죠.
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사람들이 ‘아니 우리가 자는 것과 죽은 것 그것도 구별 못할까봐..’ 하면서 예수님을 비웃더라는 거야.
40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이 ‘달리다쿰’ 하는 말이 히브리어가 아니고 이게 아람어예요. 아람어..
갈릴리 지방에서 쓰는 언어인데,
..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그런데 놀라운 게 ‘야이로’라는 말이 헬라어로 제대로 발음하면 ‘이아에이로스’예요.
이것을 야이로라고 한 거예요.
‘이아에이로스’라는 말을 직역하면 ‘그가 깨우신다.’ 그런 말이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서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고 깨우셨다는 거죠.
깨울려면 잠든 게 있어야 깨우죠. 그렇죠?
잔다 해가지고 깨우신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 아이 이름을 잘 지어야 돼요.
깨울 일이 없도록..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이게 예수님의 사역 중에 이때쯤이면 거의 절정기가 되겠죠.
그 거라사 지방에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군대귀신을 끝장을 내어서 바다에 집어넣어버렸고,
이 12년을 혈루증으로 앓았던 여인을 고치고..
12년을 앓았어. 그리고 수많은 의사를 만나봤는데 돈만 탕진하고 점점 더 괴롭게 된 여자를 간단하게 예수님이 어떻게 한 것이 아니고, 그 여자가 예수님 옷가에 손을 대었는데 나았다는 거야.
그리고 완전히 죽어서 숨 넘어가버린 그런 소녀를 살려낸 이런 사건들이 이어졌어요.
이렇게 마가가 소개하는 예수님은 좋은 일만 좋은 일만 하는 분이시다.
로마 판도 그 당시에 마가가 활동할 그 시대에 예수님을 소개하되 마가가 이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것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하시는데, 그 모든 하시는 일이 다 선한 일이다.
병자가 낫고 미친 사람이 정신이 온전케 되고, 열두 해를 앓던 사람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좋은 일만 좋은 일만 하신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 속에 하나도 나쁜 일이 없었다. 좋은 일만 하신 분이다.
이렇게 복음서를 가지고 로마 판도에 소개하는 것을 볼 때에, 한편은 이 복음서가 그것을 기록을 해서 교육을 하기 위해서도 기록되지만, 그 당시에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변증서 형식으로 기록된 겁니다. 기독교 변증서..
기독교는 그런 이상한 사이비 이런 게 아니다.
좋은 일만 하는 종교다. 하는 것을 아주 극명하게 소개하기 위해서 변증 형식으로 썼다고 봅니다.
특히 마가복음도 그렇지만 누가복음 같은 경우에는 같이 십자가에 못박혔던 강도도 ‘이분이 하신 일 중에 옳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여러분 죽으면서 하는 말은 힘이 있잖아요.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 하는 강도의 말은 힘이 있다니까..
그래서 순교자의 말은 힘이 있는 것 아녜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다른 것은 다 몰라도, ‘기독교인들이 하는 것 중에 옳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런 말을 들어야 돼요.
이게 안 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교회가 욕을 먹습니다.
우리 샤론교회가 하는 일 중에 옳지 않은 일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일이 없었다. 이런 말을 들어야 선교가 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하신 아름다운 일을 본받아서 선한 일에 열심 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악령으로부터 악한 영으로부터 더러운 귀신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열두제자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가서 거라사인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를 온전케 하실 뿐 아니라,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통하는, 참 부끄러워서 말도 못할 그런 병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고,
죽어서 온 가족의 슬픔이 되었었지만 다시 깨워서 살게 하시고 달리다쿰 하시고 살려내신 사건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아름다운 일을 교회가 본받아서 항상 선하고 아름다운 일로 미담의 꽃을 피우는 우리 샤론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