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에서 무슬림(Muslim, 이슬람 신자) 여성의 베일을 둘러싼 갈등은 외신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소식이다.
특히 정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는 지난 2004년 초·중·고등학교 내에서의 히잡(Hijab,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 착용을, 2011년에는 공공장소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Burka) 등의 착용을 금지시켰다. 이슬람 사회는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2013년 7월에는 파리 교외에서 경찰이 부르카를 쓴 여성을 단속하다 마찰이 빚어지면서 무슬림 이민자들의 폭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누구든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을 철저히 배제하도록 한 공화국 헌법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무슬림 사회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리고 문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서구 사회는 오래 전부터 히잡을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며 비판했고, 이슬람 국가들은 여성 보호의 수단이라고 맞섰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논란은 쉽게 타협점을 찾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인 히잡이슬람 사회는 여성의 머리카락은 남성을 유혹하는 부분이라고 여겼다.
이슬람 사회의 여성들은 왜 히잡을 쓰는 것일까. 단어의 의미부터 그 유래를 알려준다. 히잡은 ‘가리다, 숨기다’의 뜻을 가진 동사 ‘하자바(Hajaba)’에서 파생한 말이다. 히잡의 단초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Koran)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코란 제24장 31절은 여성이 감추어야 할 부분을 이르고 있다.
“그리고 믿는 여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녀들의 시선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밖으로 나타내는 것 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 그리고 가슴을 가리는 머리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 남편의 아버지, 그녀의 아들, 남편의 아들, 그녀의 형제, 그녀 형제의 아들, 여성 무슬림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외에는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되니라.”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와 이슬람 율법학자들 역시 ‘손과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감추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더 완고한 무슬림은 여성이 얼굴마저 가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란과 무함마드 언행록 등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를 따른다면 무슬림 여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과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려야 하는 셈이다. 머리를 가리도록 하는 건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부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코란 제33장 59절은 여성이 외출할 때 입어야 하는 옷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언자여! 그대의 아내들과 딸들과 믿는 여성들에게 질밥(Jilbāb)을 입으라고 이르라. 그때는 외출할 때이니라. 그렇게 함이 가장 편리한 것으로 그렇게 알려져 간음되지 않도록 함이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시도다.”
이 부분에서 명시하고 있는 질밥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품이 넓은 원피스를 이른다. 이 의상의 목적은 여체의 윤곽과 굴곡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히잡에 품이 넓은 질밥을 입은 젊은 무슬림 여성들외부로 노출되는 부분은 손과 얼굴 밖에 없다.
눈만 드러내는 니캅을 입고 길을 가고 있는 예멘 여성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엄격한 규정은 이슬람교가 발흥한 7세기 이전의 아랍 사회에서 비롯된다. 당시 아랍에서는 유목민 부족들 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잦았다. 적의 침입이 있을 때면 특히 여성의 피해가 컸다. 성적 도구로 유린당하고 노예로 팔려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여성 보호’의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그 최소한의 방편을 의상으로 삼았다. 성적 매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슬람의 가르침대로라면 얼굴은 드러내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슬람 이전부터 생겨난 ‘순결’에 대한 강박은 몸의 모든 부분을 감추는 옷차림마저 낳게 했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이 입는 ‘부르카(Burka)’에서 찾을 수 있다. 부르카는 얼굴까지 가리는 데다 겨우 ‘밖’을 볼 수 있는 눈 부분마저 망사로 만든 의상이다.
히잡으로 상징되는 ‘여성보호’ 의식은 억압과 속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아랍 지역에서 여성들은 각종 금기 속에 살아간다. 아랍의 한 격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성의 육체는 사탄의 집.’ 여성은 연약하고 아름다워 사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이 같은 가치관은 여성의 ‘격리’, 남녀 ‘분리’로 이어졌다.
남녀 분리는 ‘칼르와(Khalwa)’의 금지, 그리고 ‘하렘(Harem)’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칼르와란 ‘두 남녀가 외부로부터 격리된 채 함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남녀가 외진 곳에 함께 있을 때 사탄이 제3자이다.’ 무함마드의 언행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아랍의 무슬림은 일상 속에서 칼르와를 피하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여성이 혼자 있는 집에 가족이 아닌 남성이 찾아가는 것은 금기다. 불가피하게 두 남녀가 있을 경우라도 문과 창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신성하여 범접할 수 없는 곳’을 뜻하는 하렘은 가까운 남자 친척을 제외한 남성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공간이다. 보통의 가정은 안방 또는 안채가 하렘에 속한다. 현재도 보수적인 무슬림 가정에 남성이 방문하면 그 집의 남자들만 거실에서 손님을 접대한다. 그 사이 여성들은 안채에 있으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성보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여성의 외출과 여행을 제한하는 데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지금도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외출할 때에는 남편이나 아버지 등 남성 보호자를 동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성이 히잡 등 베일을 쓰기 시작하는 때는 늦어도 초경을 한 날부터이다. 초등학교에서도 히잡을 쓰는 여자아이가 많다. 그 후 일생 동안 베일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10여 년 전 사막의 유목민 취재를 위해 요르단에 갔을 때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여학교인 암만 민족역사학교 교사가 한 말이다. 그가 늘 가르치면서도 얼굴을 모르는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시험을 치를 때가 무척 난감합니다. 일부 학생들은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드러내고 다니거든요. 그걸 악용해 대리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지요.”
부정을 막기 위해 그는 동료 여교사에게 학생들의 얼굴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했다. 남자인 그는 물론 그 사이 교실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히잡은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도 논란을 빚어왔다.
쿠웨이트의 경우 2008년 여성장관 2명이 취임 선서 때 히잡 착용을 거부했다가 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산 일이 있었다. 이어 2010년에도 쿠웨이트 사상 첫 여성의원인 롤라 압둘라 다쉬티 역시 히잡을 벗은 채 의회에 나타난 바 있다. 이 여성장관과 의원들은 히잡을 강요하는 것은 성의 평등과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그 ‘강요’를 거부한 것이다.
그보다 한참 오래 전인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후 여성들에게 차도르(Chador) 착용을 의무화하자 많은 이란 여성들이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 여성들 중에는 늘 차도르를 입어왔던 이들도 있었다. 강요에 대한 항의였던 셈이다.
터키는 인구의 99%가 무슬림이지만 공직자와 대학 내 히잡 착용은 오랫동안 금지돼왔다. 국부로 불리는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urk)가 1923년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오르면서 천명한 세속주의 원칙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이 세속주의와 종교적 신념은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 퇴학을 무릅쓰고 히잡을 쓴 채 등교하는 여대생들이 적지 않았다.
히잡을 옹호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싹튼 것이 ‘히잡 페미니즘(Hijab Feminism)’이다. 언뜻 형용모순처럼 보이는 히잡 페미니즘은 여성의 사회참여와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히잡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주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완고한 이슬람 사회에서는 히잡이 여성의 사회 활동을 보장해주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히잡 착용을 거부하는 여성이든, 히잡 금지에 반발하는 여성이든 저항의 대상은 다르지 않다. 선택에 맡기지 않는 것, 강요하는 것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히잡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히잡은 사막의 뜨거운 햇살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현실의 필요성이 히잡이란 차림을 낳은 측면이 있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히잡 등 무슬림의 의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청바지 등 캐주얼 복장에 히잡만 두른 여성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색깔도 검정, 흰색 등 단조로운 색상에서 벗어나는 추세다. 꽃 자수, 구슬 장식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히잡 또한 적지 않다.
이제는 히잡을 그저 멋스러운 패션의 하나로, 세계의 다양성을 확인하게 하는 독특한 전통의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종교 근본주의와 가부장적 인습을 걷어낸다면. 또 여성의 자유의지에 맡긴다면 말이다.
현대 들어 히잡도 멋스러운 패션의 하나로 변하고 있다.
혼동하기 쉬운 무슬림 여성들의 의상
• 히잡(Hijab)
아랍어로 ‘가리다’란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무슬림 여성들이 두르는 머리 가리개이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사각형으로 머리에서 가슴 부분까지 가린다. 얼굴은 가리지 않는다. 무슬림은 히잡을 종교와 여성성의 상징으로 여긴다.
• 니캅(Niqab)
얼굴을 가리는 베일. 눈은 보이도록 한다. 그러나 니캅은 별도로 눈가리개, 그리고 머리 가리개와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 부르카(Burka)
무슬림 여성의 베일 중 가장 극단적으로 몸을 감추는 의상이다.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며 눈 부분은 망사로 된 가리개를 착용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주로 입는다.
• 키마르(Khimar)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 형태이다. 머리카락, 목, 어깨는 완전히 감추지만 얼굴을 드러낸다.
• 차도르(Chador)
머리부터 몸 전체를 감싸는 망토형 외투로 이란 여성들이 입는다. 때때로 작은 머리 스카프를 그 밑에 쓰기도 한다.
• 알 아미라(Al-Amira)
두 부분(Two-Piece)으로 나뉜 베일이다. 알 아미라는 보통 무명 또는 폴리에스테르로 된 꽉 끼는 두건과 튜브 모양의 스카프로 이루어져 있다.
• 샤일라(Shayla)
직사각형의 긴 스카프로 주로 걸프지역 여성들이 착용한다. 샤일라는 머리를 감싸고, 어깨 부분은 걷어 올려서 두르거나 핀으로 고정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