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로 가는 길
신항만 공사는 단순히 바다 매립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항만 시설을 뒷받침할 주거와 상업 단지가 조성되어야 하고 도로도 닦아야 하니 진해와 부산 사이의 해변은 온통 공사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진해~부산 간 해변은 무질서하고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살풍경만 가득 할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도시가 가깝고 엄청난 공사가 진행 중인 바닷가에 이처럼 한적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진해와 부산을 잇는 국도(2번과 77번 중복노선)는 내륙으로 다소 들어가 있고, 신항만 공사는 바다 안쪽에서 진행되기 때문일까, 바다를 끼고 나란히 달리는 해안도로는 엄청난 격동을 겪는 주변 환경에도 아랑곳 않고 착 가라앉은 아늑함을 유지하고 있다. 진해시는 2000년대 초부터 행암동에서 안골동에 이르는 약 20킬로미터의 해안도로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해안관광도로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 길은 짧지만 풍경이 다채롭고 사연도 깊다. 작은 포구가 있는가 하면 수십만 톤급 유조선이 만들어지는 세계 굴지의 조선소가 있고, 군함 내부를 볼 수 있는 해양공원, 임진왜란 때의 왜성, 신항만 전망대 등 볼거리가 숱하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여운과 울림을 남기는 것은 두 개의 노래비에 얽힌 이야기다. 1967년 발표된 ‘황포돛대’(이미자 노래)는 이 해안도로에 자리한 남양동 영길마을 출신의 이용일 씨가 전방에서 군복무 중 고향을 그리며 노랫말을 지었다. 1983년 발표된 ‘삼포로 가는 길’(강은철 노래)은 아직도 애창되고 있는데, 가사를 쓴 이혜민 씨는 실제의 삼포마을에 잠시 머물 때 경치가 너무 애틋하고 아름다워 노랫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아아, 뜬 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그 삼포가 여기 있고, 이 해안도로는 실로 ‘삼포 가는 길’이다.
코스안내 행암해변에서 황포돛대까지는 14.2km이고, 안골포까지 가면 20km 남짓 된다. 왕복해도 40km이고 높은 고개가 많지 않아 휴식과 관람 포함해 5시간이면 여유롭다.
1. 출발지는 진해 본시가지 최남단에 있는 행남동 해변이다. 작은 포구인데 횟집과 철길, 산책로가 멋스럽고, 진해만 저편으로 지는 노을이 특히 예쁜 곳이다. 해변에서 시가지를 벗어나 남쪽으로 작은 고개를 넘으면 곧 수치해변이다(1.2km). 해변에는 횟집과 모텔 등이 아담하게 모여 있다. 수치 가기 전 고갯마루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합포해전이 벌어진 합포마을 가는 길로, 합포를 거쳐 수치마을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 경우 행암~수치 간은 2.8km 정도 된다.
2. 수치 마을을 지나면 깜짝 놀랄 만큼 큰 규모의 공장이 드러나는데, 바로 STX 조선소다. 길은 조선소 뒤쪽 산기슭을 돌아나가 자연스럽게 조선소 ‘견학’을 시켜준다. 60m를 넘는 크레인과 엄청난 선박 구조물을 가까이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조선소를 왼쪽으로 돌아 본관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다시 바닷가로 나서면서 군함이 전시된 진해 해양공원 입구다. 해양공원을 지나면 경치는 한결 한적해진다.
3. 해양공원을 지나서 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작은 포구가 바로 삼포다. 삼포에도 횟집이 많이 있으며, 마을을 우회해 고개를 넘기 전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서 있다. 스위치를 누르면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삼포’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기 좋다.
4. 노래비를 지나 공구지고개를 넘으면 해안도로가 끝나면서 괴정포구에 도착한다. 괴정포구에서는 남쪽의 수도, 송도, 연도까지 육지로 이어졌으나 신항만 공사로 당분간 출입할 수 없다. 반대편으로 나가 제덕동 입구의 2번 국도 아래로 난 굴다리 직전에서 우회전해야 한다. 길은 다시 바닷가로 나서는데, 바다로 튀어나온 반도 지형의 끝에 신항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흰돌메공원이 있다. 매점, 관광안내소, 무료망원경이 갖춰져 있다.
5. 흰돌메공원을 돌아서면 웅동만이 육지 깊숙이 파고들고, 건너편으로는 안골동 해변이 가까이 보인다. 흰돌메공원에서 1.8km 거리에 ‘황포 돛대’ 노래비가 서 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해안도로 여정은 황포돛대 노래비에서 사실상 끝난다. 해안도로는 안골포의 거제행 여객선터미널까지 6km 정도 더 연결되지만 도중에 주물공단을 지나야 하는 데다 안골포 일대까지 시가지가 들어서서 지금껏 거쳐 온 해안도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래도 이곳의 별미인 ‘굴구이’를 맛보려면 안골포까지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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