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정민 『일침(一針)』에서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아들에게 써 준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근래 고요한 중에 깊이 생각해 보니, 몸을 지녀 세상을 사는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천금의 재물은 흙으로 돌아가고, 삼공(三公)의 벼슬도 종놈과 한 가지다. 몸 안의 물건만 나의 소유일 뿐, 몸 밖의 것은 머리칼조차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모든 일은 애초에 이해를 따지지 않고 바른 길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패해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이것은 이른바 순순히 바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만약 이해를 꼼꼼히 따지고 계교(計巧)를 절묘(絶妙)하게 적중시켜 얻으면 속으로는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고 실패하면 후회(後悔)를 못 견딜 것이다. 그 때 가서 무슨 낮으로 남에게 변명(辨明)하겠느냐.’(原文省略)
이어서 말하기를,
‘원유부(遠遊賦)에서는 “아득히 텅 비어 고요하니 편안하여 즐겁고, 담박하게 무위(無爲)하자 절로 얻음이 있다. [漠虛靜而恬愉, 淡無爲而自得]’고 했다. 이 말은 신선(神仙)이 되는 첫 단계요, 병을 물리치는 묘(妙)한 지침이다. 늘 이 구절을 외운다면 그 자리에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다.‘ (原文省略)
이 편지의 주인공 이식(李植)은 조선후기 대사헌(大司憲), 형조판서(刑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호(號)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이며, 좌의정(左議政) 이행(李荇)의 현손(玄孫)입니다.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꼽혔으며 그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과 학자가 배출됐습니다.
흠이라면 당파(黨派) 이념에서는 어중간한 중립을 유지하였고, 광해군(光海君)의 폐모살제(廢母殺弟) 문제가 떠오르자 관직을 사양하고 경기도 지평(砥平:지금의 양평군 양동면)으로 낙향(落鄕)하여 남한강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고, 그의 호 택당(澤堂)도 여기에서 연유(緣由)되었다 하겠습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1625년(인조 3) 예조참의·동부승지·우참찬 등을 역임했고 다음해에 대사간·대사성(大司成)·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역임하는 등 인조(仁祖)대에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출세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문장은 우리나라의 정통적인 고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에는 「사간원차자(司諫院箚子)」 등의 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의 글 하나 더 소개할께요.
’재물은 썩은 흙(黃土)이요, 관직은 더러운 냄새(臭腐)다. 군자(君子)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할 것조차 못된다. 온 세상은 어지러이 온 힘을 다해 이것만을 구하니 슬퍼할 만하다. 탐욕(貪慾)스럽고 더러운 방법으로 갑작스레 부자가 되거나, 바쁘게 내달려 출세해서 건너뛰어 높은 자리에 오른 자는 오래 못 가서 몸이 죽거나 자손이 요절(夭折)하고 만다. 절대로 편안하게 이를 누리는 경우란 없다. 하늘(天神)이 분수 밖의 복(福)을 가볍게 주지 않음이 이와 같다. 구구하게 얻은 것으로 크게 잃은 것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이는 아주 사소한 것일 뿐인데도 보답하고 베풀어 줌이 이처럼 어김이 없다. 하물며 흉악(凶惡)한 짓을 멋대로 하고 독한 짓을 마구해서 착한 사람들을 풀 베듯 하고서 통쾌하게 여기던 자라면 마침내 어찌 몰래 죽임을 당함이 없겠는가? 하늘의 이치(理致)는 신명(神冥)스러워 두려워할 만하다.‘(原文省略)
이 글을 쓴 이의현(李宜顯)은 숙종(肅宗), 경종(景宗), 영조(英祖)대의 문신입니다. 자(字)는 덕재(德哉)이며, 호(號)는 도곡(陶谷)이고, 본관은 용인(龍仁)이고요, 그의 호 도곡은 자신의 본관이자 고향인 용인이 도자기로 유명한 것과 연관이 있다 하겠습니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으로 문학에 뛰어나 숙종 때 대제학 송상기(宋相琦)에 의해 당대 명문장가로 천거되었습니다. 1728년 무신란(戊申亂)이 발생하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기용되어 반란 관련자들의 치죄(治罪)를 담당하였고 이후 대부분의 벼슬은 충추부(中樞府)에서 유지함으로 청렴(淸廉)과 결백(潔白)을 목숨처럼 지키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편견없는 조사와 처벌을 행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워내고 비워내어 마음 속에 일체의 망상을 걷어내고, 고요한 가운데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말라'는 이 말은 권력을 탐하고 출세를 위해 남을 짓밟는 이들에게 좋은 가름침이 될 것입니다. 이의현은 이 말을 듣고 조금이라도 죄를 지은 사람들은 간담(肝膽)이 서늘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권력은 꿀처럼 달콤하나 그 권력을 믿고 세상을 농단(壟斷)하던 권력자들의 말로는 예외 없이 비참(悲慘)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례(事例)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듣고, 배우거나 또는 고전(古典)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례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듯, 차면 기울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것이 하늘의 법도(法道)요, 인륜의 이치입니다. 이런 이치를 깨닫고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한들 바닥의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남은 삶을 통해 남에게 위안과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힘써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