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숲과 문화연구회 격월잡지인
'숲과 문화' 2019년 7,8월호에 실린
이천용박사님의 글을
원문 그대로 인용한 글입니다.
☆☆☆☆☆☆☆☆☆☆☆☆☆☆
7월은 농사철치고는
특별히 바쁜 일도 없어서
어슬렁대기 좋은 계절이다.
시간이 나므로 호미씻이로 잔치를 베풀어
농공(農功)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으려고
이웃과 밀가루 음식을 해서 먹으며
정을 나누는 달이다.
7월에는
소서(小暑)와 대서(大暑)가 있는데,
소서는 7월 5일 무렵이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이 시기는
여름 장마철로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린다.
모를 낸 20일 뒤 대서 때에
논매기를 하고,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하기도 하고,
가을보리를 베어낸 자리에
콩이나 조, 팥을 심었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여서
과일과 채소가 풍성하며 맛도 좋다.
24절기 중 열두 번째에 해당하는 대서는
중복 무렵일 경우가 많으므로,
불볕더위, 찜통더위라는
삼복더위를 피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계곡이나 정자에서 쉬는 풍습이 있다.
가끔장마가 늦게까지 계속되면서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
무더위를 삼복으로 나누어
소서와 대서라는 절기로 부른 것은
무더위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다.
농가에서 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의미에서
뽕나무와 느티나무를
7월의 달나무로 선정한다.
뽕나무
(Morus alba L., Mulberry tree)
한자어로는 상이라고 하며,
전국적으로 마을 주변에 재배하는
낙엽교목 또는 낙엽관목으로
수고는 3~10m이다.
잎은 난상 원형 또는 긴 타원상 난형이며,
3-5갈래로 갈라진다.
꽃은 6월에 암수딴그루로 핀다.
열매 오디는 길이 1~2.5cm로서
6월에 흑색으로 익는다.
내한성이 강하며,
토심이 깊고 비옥한 토질을 좋아한다.
뽕나무 잎은
누에를 키우는 먹이가 되므로
일찍부터 재배를 권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대농가는 뽕나무를 300그루,
중농가는 200그루, 소농가는 100그루를
심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또 주인이 없는 야생 뽕나무도
엄중히 보호하였다.
『경국대전』 공전(工典) 재식조에 보면
각 고을에서는 옻나무, 뽕나무, 과일나무
관리 대장을 만들고
3년마다 대장을 정비한다고 하였다.
뽕나무의 잎은
상엽(葉)이라 하여
발열, 감창, 두통, 해수, 안질,
수종(水腫), 각기, 구갈(口渴) 등의
증상에 치료제로 쓰였다.
뽕나무의 껍질은 상백피(皮)라 하는데,
이것은 칼로 바깥쪽 껍질을 긁어낸 다음
속의 흰 껍질을 벗겨 말린 것이며,
치료제로 쓰였다.
뽕잎과 누에똥은 고혈압에 복용하며,
껍질을 달인 물에 곱슬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부드럽게 펴진다고 하였다.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는 맛이 달아
그대로 먹거나 술을 빚는다.
뽕나무 겨우살이는 상상기생(寄生)이라
하며 귀중한 약재로 취급된다.
뽕나무와 관계된 고사(故事)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한 효자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고자
시냇가에 나가 천년 묵은 거북을 잡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효자가 뽕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는 동안
거북이가, “솥에 넣어 나를 백 년을
고아보게 내가 죽나.
헛수고 하고 있네."라고 말하자
옆의 큰 뽕나무가 뽐내며,
“나를 베어 장작으로 만들어
불을 때어도 네가 죽지 않을 것이냐."
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효자는
그 뽕나무를 베어다 거북을 고아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에 기인하여
신상구(愼龜)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말조심을 하라는 뜻이다.
즉,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Zelkova serrata Makino,
Zelkova tree)
한자어로는
괴목(槐木), 규목(槻木), 궤목(木),
거(摩)라고도 한다.
높이는 20여 미터,
지름은 3미터에 이르며,
단독으로 자랄 때는 가지가 사방으로
자라서 수형이 둥글게 되고,
수피는 비늘처럼 떨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 또는 난형이며,
잎 끝이 좁고 가장자리에
뚜렷한 톱니가 발달한다.
어릴 때의 성장이 빠르고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며 햇볕을 좋아하는 나무이다.
목재는 결이 곱고 단단해서
밥상이나 가구재로 쓰였고,
불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주례(周禮)」에
‘동취괴단지화(冬取槐檀之)'라는
말이 있는데,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를
비벼서 불씨를 취한다는 것이다.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대부분 느티나무였다.
그것은 수관이 크고 넓게 퍼져
큰 그늘을 만들며, 병충해가 적고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이 들고
오래 살기 때문이다.
정자나무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전달하는 광장으로,
때로는 강학(講學)의 장소로 쓰였다.
마을에 있는 느티나무는
영목(木), 귀목(貴木), 신목(神木)으로
숭배하였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보면
'느티나무 세 그루를
중문(中門) 안에 심으면
세세부귀(世世富貴)를 누린다고 하고,
신방(申方) 서남간(西南間)에 심으면
도적을 막는다'고 믿어 왔다.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노여움을 사서 재앙을 입는다고 하여
얼씬도 못하게 함으로써
아름다운 수형과 긴 수명을
유지하게 하였다.
봄에 일제히 싹이 트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할 때는 흉년(凶年)임을
미리 알 수가 있었고,
위쪽에서 먼저 싹 트면 풍년이 들고,
밑쪽에서 싹 트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이 나무에 득남(得男)을 기원하면
아이를 얻는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아낙네들의 소원목이 되기도 했다.
한편,
밤에 나무에서 광채가 나면
동리에 행운이 온다고 믿었으며,
어떤 마을에서는 밤에 나무에서
우는 소리가 나면 불행이 온다고 믿어
두려워하기도 했다.
강화 정족산성 안의 느티나무는
'운나무'라는 별명이 있는데,
나라에 큰 변이 날 때마다 운다고 하며,
병인년 이곳에서 벌어졌던
한불(佛) 전쟁이 일어나는 전야에도
밤새워 울었다고 하며,
경술국치(庚戌國恥)에는 그 울음소리가
강화성안까지 들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