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들이 남긴 흔적을 더듬다
~ 일본제일의 호수 비파호 일주 기행록(3)
5월 23일(목), 전날에 이어 걷기 좋은 날씨다. 여러 날 전에 살핀 예보로는 걷는 초반에 비소식이 있어 염려하였는데 귀한 행사에 대한 하늘의 배려인 듯. 오전 8시, 전용버스로 숙소를 나서 걷기 출발지점인 오미하치만시의 장명사(長命寺)로 향하였다. 버스에는 전날 저녁식사를 함께 한 더 조이 플러스 축구단의 코치와 선수들이 동승하여 더 밝은 분위기, 오늘도 좋은 날이어라.
더 조이 플러스 축구단과 함께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장명사에 이르니 9시가 가깝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더 조이 플러스 축구단 멤버들의 선창으로 '고, 고, 렛츠 고'를 연호한 후 비파호 일주 둘째 날 행보를 힘차게 내디뎠다. 출발지점인 장명사는 원래 전날 도착예정 지점인데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도착지점을 명란 젓갈타운으로 앞당긴 것이다. 곧바로 드넓은 호숫가, 우람한 크기의 황새 무리가 힘찬 날개 짓으로 주변을 배회하고 멀리서는 작은 새떼들이 수면 가까이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이 마치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듯.
출발에 앞서 스트레칭하는 모습
걷는 중 더 조이 플러스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환갑을 눈앞에 둔 여성들은 가벼운 몸놀림과 해맑은 표정이 주니어 뺨친다. 각기 여러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재원들이 더 큰 봉사차원에서 시니어축구 팀을 결성하여 일본까지 진출한 실력과 기백이 대단하다. 대화 중 2002한일월드컵 때 내가 쓴 책, ‘아들아, 대한의 골키퍼가 되라’를 언급하며 금방 친숙해 지기도. 이들 중 이혜경 선수는 다방면의 사회 활동 중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여류 도공 백파선(百婆仙)의 행적과 공로를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이름 없이 사라진 인물을 오늘에 되살리는 열정과 성심이 고맙다. 우리 모두 천하보다 귀한 생명 아닌가.
오늘 걷는 중인 오미하치만의 시립자료관 앞에는 조선통신사들이 왕래했던 조선인가도에 대한 설명 판이 설치되어 있다. 작년에 그곳을 지나며 살핀 내용은 이렇다.
‘에도시대에 막부의 장군이 새로 즉위할 때마다 조선에서 국왕의 친서를 가지고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는 관리뿐만 아니라 문인, 학자 등 많은 때에는 총 500 여명 규모로 구성된 사절단입니다. 이 사절단은 서울에서 에도(현재의 도쿄)까지 약 1년에 거쳐 왕복했다고 합니다. 그 거리는 약 2,000km에 이르며, 近江八幡(오미하치만)을 포함한 彦根(히코네)에서 野洲(야슈)까지의 일부지역에서는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길을 지금도 조선인가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近江八幡 시내에 위치한 本願寺別院(北元町)에서는 조선통신사 정사를 접대했으며 京街道의 일대에서는 수행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당시의 주민들은 마을 전체가 대대적으로 일행을 환영하였고, 문화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백파선도 그 중의 하나일 듯. 함께 걷던 더 조이 플러스 멤버들과는 한 시간 반쯤 걸은 후 아쉬운 작별, 큰 뜻 두루 펼치시라.
이어진 코스는 호수에서 약간 벗어난 평야지대, 오전 11시 경 오미하치만 시계를 지나 히가시오미 시계에 접어드는 들판에 보리이삭 누렇고 갓 심은 벼들이 파릇파릇, 평화로운 농촌지대가 계속 이어진다. 낮 12시 지나 걷는 길목의 공원(곳곳에 비파호국정공원이라 적혀 있다.)에서 도중 편의점에서 각기 준비한 점심식사, 13시에 오후 걷기에 나섰다.
한 시간여 걸으니 전망 좋은 호반의 휴식처에 이른다. 드넓은 호수를 조망하며 잠시 여유를 즐기기도. 다시 힘을 내어 열심히 걷기, 오늘의 도착지는 히코네의 어제 묵은 숙소. 조선통신사 걷기로 여러 차례 지난 히코네 시가지가 낯익다. 일행 중 더러는 유명한 히코네 성을 향하고 나머지는 숙소 행, 오후 4시 20분에 둘째 날 걷기를 무사히 마쳤다. 열심히 걸은 일행, 수고하셨습니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이틀 연속 같은 숙소를 이용하니 여장을 따로 챙기지 않아 가뿐하다. 잠시 휴식 후 저녁식사는 자유식, 삼삼오오 팀을 이루어 주변의 식당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잘 쉬고 내일 또 씩씩하게 걷자.
* 인터넷에서 살핀 여류 도공 백파선(百婆仙)의 기록 중 일부,
‘백파선은 400여 년 전 이름 없는 포로 신분의 조선인 여성이라는 사회적 위치에서 일본 아리타 도자기의 어머니로 불리게 된 인물이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많은 조선인 사기장(도공)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백파선의 남편 또한 사기장이었다. 남편이 죽은 후, 백파선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 그리고 함께하던 조선인 공동체를 이끌고 아리타에 정착했다. 백파선이라는 이름은 그의 높은 인덕을 기리기 위해 증손자가 비문에 새긴 이름이다.’
백파선을 소개한 이혜경 씨가 사진과 함께 보내온 메시지,
'교토에 잘 도착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비와코를 걸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일행 모두 건강하게 완주하고 귀국하시기 바랍니다.'
백파선을 열심히 설명하는 이혜경 씨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