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경이 하도 아름다워 달도 쉬이 가지 못하고 머물다 가는 자리. 영동 월류봉(400.2m)에 다녀왔다. 이지러지는 보름달이 아쉽다면 주말에는 월류봉에 가서 늦도록 머무는 달을 바라볼 일이다. 5개의 연봉과 한 개의 전망봉은 하늘 위를 걷는 듯하고, 발아래 초강천이 빚은 '한반도 지형'은 감탄을 자아낸다. 문득 월류5봉에서 뒤돌아보면 깎아지른 절벽 위로 지나온 길이 위태롭게 존재하고 있다. 지날 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아찔했던 순간이 어디 이뿐이랴.
풍경에 취해 달도 머물렀다는 곳
연이은 다섯 개의 연봉과 전망봉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하다
금강 상류 초강천의 물길은
깊디깊은 계곡을 선사했고
작은 '우리나라'를 빚어냈다
■달이 머무는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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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양민학살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영동 노근리 쌍굴. |
월류봉 등산로 입구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에넥스 공장 뒤편에 있지만, 대부분 월류봉 산행은 전망대가 있는 원촌리 월류봉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월류봉과 강변 절벽에 솟아 있는 월류정을 바라보며 한바탕 풍경에 젖어든 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기거했던 한천정사 쪽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산행을 시작한다.
월류봉 주차장~한천정사~징검다리~월류1봉~월류2봉(산불초소)~월류3봉~월류봉(4봉·정상)~월류5봉~전망봉~안동 김씨 묘~추풍령사슴관광농원~너추리보~강변길~월류5봉 갈림길~월류봉 주차장까지 5.9㎞를 4시간 35분 동안 느긋하게 걸었다.
한천정사 앞 대추나무 아래에 붉은 대추가 비에 젖어 뒹굴고 있다. 한천정사는 원래 한천서원이 있던 자리다. 조선 말 서원이 철폐된 뒤 지금은 작은 집 한 칸만 남았다. 고려 시대 이 자리에는 절이 있었던지 석탑 부재가 남아 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감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초강천으로 가는데 길에 떨어진 홍시가 보인다. 흙을 대충 털어내고 한입 문다. 달짝지근한 가을이다.
내린 비로 수위가 높아 징검다리 이용이 불가할 수 있다고 한 안내문을 이미 본 뒤여서 초강천 앞에서 결정해야 했다. 신발을 신고는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는 상황. 20분 정도를 돌아가야 하기에 신발을 벗었다. 물은 아직 따뜻했다. 긴 징검다리를 건넌 뒤 붉은 여뀌 만발한 강가에서 발을 말린다.
산기슭으로 들어서자 만만찮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월류봉은 깎아지른 직벽. 그 위로 올라야 하니 아무래도 땀깨나 흘려야겠다. 다행히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성큼성큼 올라간다. 에넥스 공장 뒤 등산로에서 오르는 길과 만났다. 덱 계단에 올라서야 황간면을 뒤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곳 황간이 고향인 여영산악회 김태영 회장이 향수에 젖어 옛 고향 집을 가리킨다.
■한반도여 한반도여
냉큼 월류1봉에 올랐다. 내려다보니 영락없는 한반도 지형이다. 물굽이가 만들어낸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영월, 정선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풍경이다. 월류봉은 달이 봉우리에 걸려 서쪽으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봉우리를 따라 머물다가 넘어간다고 해서 붙은 명칭. 1봉에 올랐으니 이제 달처럼 천천히 머물다가 내려가야겠다.
초강천은 금강의 상류인데 인근 골짜기에서 물을 보태 계곡이 깊디깊다. 오랜 세월 물길이 바위를 깎아 이처럼 멋진 풍경을 완성했다. 강물 한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있다. 김 회장이 어릴 때 멱을 감다 급류에 떠내려가다가 겨우 바위에 걸린 것을 동네 형이 구해줬다고 한다. 추억이 있는 풍경이라 그에겐 더 아름다울 것이리라.
1봉에서 5봉까지는 깎은 듯 날 선 능선길. 걷는 동안은 느끼지 못했으나 되돌아보니 아찔한 길이다. 곳곳에 전망대가 있어 한반도 지형을 다양하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2봉에는 산불초소가 있다. 3봉으로 가는 길엔 작은 돌탑이 몇 기 있다. 갓 피어난 구절초가 산꾼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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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광장에서 바라본 월류정과 월류봉은 한 폭의 산수화다. |
월류4봉이 사실상 정상. 그렇다고 월류봉 산행은 여느 산처럼 정상을 오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1봉에서부터 멋진 풍경이 시작되어 5봉을 지나 전망봉에 올라설 때까지 좌우 조망이 매우 빼어나다. 삼각점이 있는 월류4봉에서 숨을 돌리며 멀리 백두대간의 힘찬 산줄기를 찾는다. 삼도봉에서 올라온 대간이 문경을 지나 상주 속리산으로 이어지는데 남쪽 삼도봉과 북쪽 속리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었다.
5봉을 지나 이제 봉우리는 끝인가 했는데 전망이 좋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 강원도에서 1박 2일 여행 겸 산행을 온 부부가 점심을 먹으라며 자리를 내어준다.
■초강천 따라 걷는 길
전망봉에서 추풍령사슴관광농원으로 하산한다. 우천리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너추리보를 건너 강변길로 원점 회귀하기 위해서는 사슴농원으로 가는 길이 낫다. 유독 노간주나무가 많은 산길을 따라 하산한다. 알밤이 등산로에 온통 깔려 발길을 잡는다.
사슴농원은 한 농민이 평생을 일군 농장. 농원에서는 꽃사슴을 구경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었다. 구절초 만발한 농원을 두루 구경하며 월류봉 관광안내판 뒤로 난 길로 내려서니 너추리보 징검다리다.
너추리보는 500년 전에 석축으로 만든 보. 만초평에 물을 대 만초평보라 불렀는데 만초평이 너추리 뜰로 불리면서 고장 사람들은 너추리보로 부른단다.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월류봉을 바라본다. 1봉에서 시작된 연봉들이 물그림자로 비쳐 더욱 아름답다.
초강천 둑길을 따라 걷는다. 가로수는 감나무. 영동군은 포도와 감 등 농산물은 물론 국악기와 와인 등 특산물이 다양한 것이 특징. 그래서 '레인보우 영동'이라고 하는가보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논엔 메뚜기가 지천이다. 말 그대로 친환경 농사를 하는 모양. 초강천에서 강태공이 세월을 낚고 있다. 드리운 낚싯줄 끝에는 월류봉이 걸려 있다.
전망봉에서 쉼터로 하산하는 등산로와 만났다. 이 등산로로 하산하면 징검다리를 건너와야 한다. 작은 정자가 있어 잠시 쉰다. 참나무가 무성한 임도를 따라 걷는다. 꼭대기에서 본, 넓은 잔디밭은 민간이 운영하는 캠핑장. 대문이 잠겨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월류봉 전망대 주차장으로 가는 절벽 길에 망부석 하나가 서 있다. 그 뒤로 처음처럼 여전히 월류정이 굽이치는 초강천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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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 월류봉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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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 월류봉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월류봉주차장에서 월류봉 산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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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암 송시열 선생이 기거한 한천정사를 지나 초강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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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류1봉으로 오르는 길은 깎아지른 듯 가파르다. 에넥스 공장 뒤편 월류봉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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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지형을 닮은 초강천 물굽이. 월류봉 산행 내내 멋진 조망이 펼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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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류 2봉은 산불초소가 있다. 월류 1봉에서 5봉까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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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 능선은 수형이 화려한 소나무가 많다. 한 봉우리를 건널 때마다 풍경은 병풍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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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점이 있는 월류 4봉이 정상이다. 멀리 속리산도 보이고, 삼도봉과 민주지산을 잇는 백두대간도 까마득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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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류5봉을 지나면 하산 갈림길로 가게 된다. 하산 직전에 전망대도 좋다. 노근리 쪽 산세가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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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망봉에서 능선을 따라 하산하면 추풍령사슴관광농원이다. 꽃사슴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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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슴농장 입구 등산로 안내판 뒤로 내려가면 너추리보를 건너는 징검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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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강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강변 트레킹은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월류봉 연봉들도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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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류봉에서 바로 하산하는 등산로의 징검다리와 만난다. 여기서 주차장까지는 600m만 가면 된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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