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6:19-20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
마10:16에 보면 예수님이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 '비둘기'로 사용된 단어는 '페리스테라'인데 '집비둘기'를 가리킨다. 집비둘기는 주인에게 아주 충성스럽다. 그래서 편지나 전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 이 집비둘기를 훈련 시켜서 주인의 편지를 전달하게 했는데 그러한 비둘기를 '전서구'라고 불렀다. 수많은 비둘기가 무리를 지어 먼 거리를 날아도 주인이 있는 비둘기는 자기 주인을 정확히 찾아 편지를 전해 주었다.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은 '온순해라', '순진해라' '평화롭게 살아라' 하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인을 잃어버리지 말고, 오직 비둘기처럼 주님 한 분에게만 충성하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순결은 성도로서 ‘도덕적으로 순결’은 물론이고 ‘영적으로 더욱 순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세상 그 어느 것과도 타협하거나 짝하지 않는 믿음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믿음을 기뻐하신다. 옛날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길을 걸어 다니다가 벽이나 나무에 이마를 부딪혀 피를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말을 듣고 싶어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한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토마스 왓슨’이 말한 대로 ‘거짓 경건’은 이중 죄악이다. 약1:27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하셨다. 경건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의미한다. ‘참된 경건’을 행하는 자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든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지 않는다. 삶의 예배자로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사는 것은 올바른 삶의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세상에서 살아갈 때, 세상이 칭송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날마다 구원받는 자가 더해지는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알아야 삶의 의미를 알고 방향을 정하고 삶의 목적을 위해 목표를 정하고 열정을 다해 달려갈 수 있다. 정체성을 모르면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이 우리들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와 방향 목적을 깨닫게 해 주신다.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셨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경은 그 성전을 세우는 ‘생명의 사용설명서’이다. 우리 모두의 몸은 단순히 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인 것이다. 성경 역시 단순한 종교 서적이나 지식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을 어떻게 거룩하게 하고, 올바르게 세우며 생명으로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생명의 사용설명서이다. (영육의 메뉴얼)
딤후3:16-17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그렇다. 성경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준다. 성경에는 시대와 문화와 환경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모든 말씀이 ‘오직 예수님’을 증거한다. 하나님이 지금도 하나님 말씀을 통해 사람을 살리시고 무너진 생명을 회복시키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이루어 가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모두 다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먼저 들어와 자리 잡은 것들이 많아 말씀이 들어갈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과 욕심과 교만과 상처와 미움과 자기 의와 세상의 가치와 자기 생각이 마음의 주인이 되면 예수님의 말씀이 주인으로 다스릴 자리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다.’ 요6:51,63에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다. 말씀이 내 마음에 심기어져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자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생명의 말씀으로 인해 죽은 믿음이 살아나고 병든 심령이 회복되고 무너진 삶이 다시 세워지며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변화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아는 것 보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하도록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말씀에 온전히 지배를 받아 말씀의 종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말씀의 종으로 살게 되면 먼저 내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던 세속의 것들이 내 안에서 떠나가게 된다. 매일 생명의 말씀으로 나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원하시는 ‘거룩한 성전의 사명’을 다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반응을 해야 ‘마귀의 세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성전의 사명’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몸은 다시 마귀에게 더욱 지배를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눅11:24-26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그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살피고, 회개로 성전을 깨끗하게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욱 귀하게 쓰임을 받는 거룩한 성전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거룩한 성전’에 거하시고 ‘거룩한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신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잊지 말자. 예수님이 피 값 주고 우리를 사셔서 우리들의 주인이 되셨다. 그러므로 나의주인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범사에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