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안산 원곡동 다문화 밤거리의 온갖 외국인들 풍경
지하술집안에서 열창하는 가수는 물론 호규였다.
-- 카자흐 에메랄드 눈빛 낭자여 아아아흐아아~~ --
외국인도 상당수 섞인 춤추는 남녀들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 그대 떠난 원곡동 거리에 자장맛 황사비만 내린다아~ --
'지역신문이나 방송에서 가십으로라도 다룰만도 한데 언급 한번도 없다니'
씁쓸하게 술집을 나오며 주변을 훑어보는 호규의 허탈한 표정
'날자누나도 그날 이후론 통 꿩구워먹은 소식이고...'
우울한 밤거리 풍경
'근데 황사는 꼭 짜장맛이 나야 되는가? 진짜 그럴까? 중국짜장은 전혀 다르다던데..그래, 양고기향이 나을지도..낙타나 말이 차라리..'
영등포시장안 술집 대기실로 50대 중년 아줌마가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저기..신청곡 가능한가요? 받아주나요?"
주임이 호규를 돌아보며 난처히...
"오후씨말인가요? 그게 참 가능은 하겠지만..무슨 노래인지요?"
"저번 이숙의 우정이란 노래말예요. 다시 또 듣고 싶은데...여고시절이 생각나 그날 울뻔 했다니까요"
"최여사님이시니 가능한 들어드려야겠지만...규정이..."
여인이 오만원짜리 지폐를 내놓으며
"저기 약소하지만 부탁드려요.."
"이거참 오후씨..."
"제 최초의 신청곡이니 감사히 불러드리지요. 하지만 돈받고는 못 부르는 노래 아시잖아요"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호규의 모습에 감동한 최여사와 관중 두어명이 보였다.
'내 노래도 아닌 옛날 여가수 노래라는 것이 아쉽지만 이만도 어디야'
수원 이판사판 스탠드바 화장실에 앉아 분장을 고치는 호규의 귀에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야..아까 말야 이태원부루스인가 뭔가 말야"
"어엉? 뭐라고?"
"첨엔 분명 아닌 것 같았는데 낮익어져서인가 젊은 놈이 제법 부르더라구"
"그래? 난 취해서인가 잘 모르겠던데..."
"가사도 글코 왠지 싸가지가..제법"
"그려? 그럼 낼은 신경써서 들어봐야겠네"
"그런데 왜 수원까지 와서 이태원노래를 불러대는지 번지수가 좀,..화성이라면 또 모르겠다"
듣고 있던 호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맞아! 화성이야말로 진작에 나왔어야 할..'
넓은 당진 벌판 전경 군데군데 새우양식인지 양어장 같은 넓은 연못이 보였다.
한갓진 야산 아래 호젖한 음식점에 호규와 석현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효실이가 갑자기 감사가 떠서 못왔는데, 너 저번에 너무 고마웠다고 나보고 꼭 맛있는 거 사주라고 강요해서 왔다만 알다시피 난 동물성은 절대 못 먹잖냐"
"여기 대통밥도 맛있다고 소문났으니 먹을만 할거다. 값도 장난 아니고, 술이나 먹는다면 또 모를까"
"그래 어떠냐 해보니 민물 양어 할만해?"
"완전 노가다는 아니라서 할만은 하지만 좀 그렇다"
"그렇다니..?"
"내가 좀 본래 잘 생겼고 안경까지 썼잖냐. 사람들이 오래 있을 놈이 아니라고 눈치채고 왕따비슷한.."
"그래, 무슨 뜻인지 눈치는 채겠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마음이잖아. 헌데 내가 봐도 넌 조만간 도망갈 놈으로 보여"
"!"
"날 만나러 나오는데 옷차림이나 신발이나 머리가 그게 뭐냐? 내가 네 애인이라면 또 모르겠다"
"아무리 노가다라고 해도 새꺄. 외출하는데 옷차림은 제대로 해야.."
"네 일처럼 달려들어봐! 네 소유 양식장처럼 바로 네가 운영하는 양어장처럼!! 내년에 고기양식 안할거냐?"
"호규야...말이 나와서 말인데 세상엔 적성이란 게 있다"
"하, 적성? 넌 내가 가수에 적성이 있어보이냐? 솔직히 말해봐라"
"적성은 모르겠고... 넌 뭘해도 잘할 놈으로 보여"
"뭘 해도가 아니라 하다보니까 잘하게 된 것 뿐이야! 다음달 효실이랑 분명 여기 다시 올거다. 그때도 이런 식이면 너완 절교다"
"이새끼가 정말 툭하면 절교절교 노래부르는데, 야 임마 그런다고 내가 겁먹을 것 같냐?!"
'듣기 싫은 말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친구란다'
멀리 신협에서 나오는 여직원이 있었다. 보통 키에 살이 통통한 편인데 다부진 인상으로 그 뒤로 스쳐가는 호규 모습
라면, 김밥집을 들어가는 것이 점심을 먹을 모양이었다. 호규가 전화를 꺼내들었다.
"우태냐? 방금 정숙씨 봤는데..아니 만나지 않고 보기만 했다. 석현이 만나러 왔다가 근방이라는 네말이 생각나서..그런데 너보다 몇배 낫더라. 흐물한 널 확실히 휘어잡을 강단도 보이고 놓치면 반드시 후회하니 꽉잡아. 언제 내가 틀린 말 하든? 저번에 영진이도 너 올해 대박난다고 하더라만 아무래도 정숙씨 얘기 같다. 얘기 끝. 가능한 빨리 국수 먹자. 고기 안넣은 걸루다"
'길동이에게 틀림없이 확인하겠지만 길동이 눈치가 도사니까 한술 더 뜨겠지'
시계를 보며
'집에 들려 엄마가 만든 칼국수 먹고 일나가도 되겠는걸'
차를 몰고 가다가 노인네가 리어카에 고물을 잔득 싣고 언덕길을 오르는 걸 보고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서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자 노인네가 돌아보고 놀라며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주변도 안돌아보고 묵묵히 밀며
'그래, 효실이 말대로 이웃엔 이 노인네처럼..옥순이 엄마처럼...날자처럼..벙선생님처럼 힘들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중편제는 그들을 위한 노래여야 돼. 조금이나마 그들을 이해하고 같이 해주는 인정..인사...사랑이나 애인...로망은 사치일 뿐이야...'
컨테이너 안에서 이생과 박상앞에서 시를 읊는 호규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속엔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어..
원망과 그리움과 희망이 뒤섞여..."
멈춘 호규가 한동안 허공을 공허하게 바라봤다. 두 노인도 말이 없었다.
"내 살다살다 가사만 듣고도...이건 대박이라는 촉이 오긴 처음이다. 박생!"
"70파센트!"
"팍상 불세출 맞우?'
"남상규의 '고향의 강'도 있었고 정미조의 '불꽃'이란 노래도 있었어. 서양에도 여러 적시는 강노래가 많았다고"
"...."
"호규야..좀더 다등으면 반드시 뜰거다. 헌데 히트도 나름이란다 잠시 한두달 한계절 일이년 십년...백년 모든 예를 들 순 없지만 가령 고흐는 살아생전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무명이었지만 일이백년 후에야 불세출로 공인되는 식이랄지..은은하게 오래가는 대박도 있단다. 울내는 그래서 70파센트인 거란다. 네 아들 손자대에 가서야 인정받을 수도 있단 말여"
"글쎄요..고흐가 대박은 관심밖이었을 것 같네요. 제가 그렇듯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생..이런 상황에서 어울릴 말이 통 생각이 안나는데 대신 해주게나"
"선생도 팽개치고 혼자만 승단하다니 네가 양심이 있는 놈이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