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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 풍경風磬
컵라면 끓는 동안 뱃속은 요동친다
초점 잃은 눈빛들 적막 속에 고이고
또 다른 허기가 운다 편의점 문에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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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고수鼓手
흰 지팡이 두드리며 소리를 끌고 간다
한 칸 한 칸 건널 때마다 덜컹대는 추임새
신명난 동전 바구니 득음으로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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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메꽃
가던 길을 놓쳤나 계단마다 뿌리내린
끊어질 듯 무릎 끓는 허기진 여름 한나절
넌출에 엮이어 간다 무료급식소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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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고시원 1
부패한 방이 남긴 여름을 드러낸다
제 홀로 몸 뒤척이다 누름 꽃 피운 자리
싸구려 쓴 알약들이 난민처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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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유품遺品
고장 난 그의 문은 언제나 잠겨있다
스패너로 풀수록 가난은 조여오고
철길 끝 한 줌의 볕은 허기에 내몰렸다
스크린도어에 갇힌 채 시詩 한 번 읽은 적 없는
열아홉 삶의 궤적 따라 전동차는 달려오고
지상에 운반해야 할 컵라면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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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를 위하여
후진하는 트럭마다 경보음이 울린다
벽면과 부딪힐 듯 다가서는 하루하루
숨 가쁜 선율에 맞춰 정지선에 멈춘다
직진만 고집하던 한때의 조바심을
낡은 악보 속 책갈피에 접어두고
미완의 도돌이표처럼 늦은 택배를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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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공작소
입구에서 철문까지 계단 네 개 내려서면 오백에 삼십 하는 센스 등 꺼진 원룸 아들은 첫 집 계약하고 짜장면을 먹는다
설레는 젓가락질로 입가에 묻은 양념 눌러 찍다 삐져나온 계약서의 도장밥처럼 곰팡내 짙은 벽지에는 어둠이 숨어있다
굳게 닫힌 쪽창에 붙여둔 야광별들 지상과 교신하는 첫 임무를 부여받고 푹 퍼진 면발을 건지며 먼 우주를 설계한다 ---------------------------
지진 그 이후
땅이 울어요 어머니 가방을 내려놓으세요
지퍼가 고장 났나요 눈물이 나네요, 왈칵
말아 쥔 손수건으로 어둠을 닦아야죠
두통만큼 두툼한 울음은 버리세요
흔들리는 심장은 그냥 두세요 가방에
지나온 봄의 시작은 다 쏟아 놓고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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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아내
꽃 다 진 후 채운 후크 한 번도 푼 적 없는
아내의 뽕브라자 마른 나무에 걸려있다
팽팽한 자주 레이스 겹겹이 포개놓고
봄 오면 젖몸살 한다. 색이 짙어갈수록
등 돌려 품은 향기 햇살 향해 보란 듯
가슴에 시린 응어리 풀어준다 투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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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귀한 시집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