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 6,10-20; 루카 13,31-35
+ 오소서 성령님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데요, 오늘 1독서에서 에페소서는 ‘좁은 문에 들어가는 것’을 영적인 전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군사 독재를 오래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런 전투 용어들이 썩 기분 좋지는 않는데요, 당시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사고 안에서는 이렇게 전투 용어로 비유하는 것이 꽤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오늘 독서 말씀을 ‘반지의 제왕’ 영화 음악을 배경으로 틀어놓고 들으면 참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에페소서는 우리가 치러야 할 영적 전투를, 마치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을 독려하는 장군과 같은 태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에페소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인데요, 첫째,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둘러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신원의 표시를 입으라는 것인데요, 진리는 특히 그리스도 신자라는 신원의 중요한 표시입니다. 이는 이사야서 11장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이사 11,5)
둘째,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야 합니다. 우리의 가슴을 보호하는 것은 의로움이라는 갑옷입니다. 이는 이사야서 59장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분께서는 정의를 갑옷처럼 입으시고 구원의 투구를 머리에 쓰셨다.”(이사 59,17)
셋째,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역시 이사야서 52장과 연관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
넷째,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방어 무기 중 가장 중요합니다. 악마가 불신과 의심이라는 유혹의 불화살을 쏠 때,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야 합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를 받아 써야 합니다. ‘의로움의 갑옷’과 마찬가지로, “그분께서는 정의를 갑옷처럼 입으시고 구원의 투구를 머리에 쓰셨다.”(이사 59,17)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연관됩니다.
여섯째, ‘성령의 칼’ 곧 ‘하느님 말씀’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는 모두 방어용 무기인데 유일하게 공격용 무기입니다. 성령의 칼인데, 이는 하느님 말씀입니다. 악마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유혹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으로 악마를 물리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유혹을 심하게 받을 때, 하느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우리 자신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섯 가지 영적 무기를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 기억이 잘 안나시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셔도 되는데요, ‘최선의 방어는 공격’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칼, 즉 하느님 말씀”이 가장 중요한 무기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읽고 되뇌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계속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데,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헤로데는 이미 세례자 요한을 처형했고, 이제 예수님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우는 교묘함과 교활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통치자는 사자에 비유되고는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라고 부르심으로써, 그가 참된 지도자가 아니라고 하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여우가 히브리어로 ‘슈알’인, 이는 ‘샤울’, 즉 사울과 비슷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었는데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헤로데는, 사울이 했던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며 당신의 길을 계속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 기원후 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함락을 예고하십니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을 미사 때 반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삶에 들어오시는, 우리 삶에 간섭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환영하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내 삶의 어려움, 내 삶의 십자가를 거부하는가,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려 노력하는가 성찰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려는 유혹을 1독서의 영적 무기로 물리치며 내 안에, 내 삶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해야겠습니다.
https://youtu.be/I-0BuMMA2g8?si=PQWL9XDmftMPXVV-
* 영화 '로빈 훗' 주제곡
(강론 때는 '반지의 제왕'이라 말씀드렸는데, '로빈 훗'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