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축구전용경기장 -
인천의 아침 - 칼럼
프로야구에 온 국민이 열광하던 1980년대, 도원동 인천축 구전용경기장의 공식이름은 ‘인천종합운동장’이었다. 도 원동과 숭의동에 걸쳐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부르기 편한대로 ‘도원야구장’ 혹은 ‘공설운동장’으로 불렀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등 인천 연고 야구 단인 ‘삼청태’의 경기가 열릴 때면 도원동 일대가 온통 들썩들썩했다. 광성고 뒷산인 ‘모모산’까지 야외관중석으로 변했다. 야구경기를 보려는 광성고 학생들과 입장권이 없는 시민들이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모모산에 올라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유나이티드
인근 식당들도 덩달아 재미를 봤다. 승리하면 기뻐서, 패하면 아쉬워서 삼삼오오 시정순대, 이화순대, 평양옥 같은 인근 인천 맛집을 찾아 뒤풀이를 하며 야구 얘기꽃을 피웠다. 뜨끈한 순댓국, 해장국에 반주가 한두 잔 들어가면 너도나도 야구 평론가로 변신했다. 논쟁이 격해져 주먹다짐으로 번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당시 인천의 모 국회의 원이 야구장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도원역 신설을 추진했는데, 동인천역과 너무 가까운 바람에 전동차가 전속력을 내지 못하자 기관사들의 불만이 높았다는 비사도 전해져 내려온다.
이 운동장이 도원동에 처음 둥지를 튼 때는 1930년대이다. 그때까지 중요한 스포츠 경기는 인천 최초의 종합운동장인 ‘웃터골운동장’(현 제물포고 교정)에서 열렸으나 1934년 도원동에 인천공설운동장을 신설해 이전한 것이다. 1936년엔 관중석 5,000명 규모의 야구장과 400m 트 랙 1만 명 규모의 육상장을 조성한다.
1950~1960년대 인천공설운동장은 ‘그라운동장’이란 별칭을 갖고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망가진 운동장을 미군정 이 복구하며 영어의 ‘그라운드(Ground)’와 우리말 ‘운동 장’을 조합해 만든 합성어였다. 1964년 ‘제45회 전국체전’ 개최와 함께 경기장을 확장하며 ‘인천종합운동장’으로 개 명한 그라운동장은 인천 체육 메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82년 프로야구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그라운동장은 인천고와 동산고가 주도한 고교 야구 전성기를 지켜보았다. 1978년 ‘제59회 전국체전’과 1999년도 ‘제80회 전국체전’이 이곳에서 치러졌는데 제59회 대회 당시엔 대부분 단층이던 동인천 일대 건물을 일제히 2층으로 올리는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정부수립 30주년’(1978), ‘인천개항 100주년’(1983) 같 은 대규모 행사가 열리기도 한 그라운동장이 발파 해체로 사라진 때는 2008년이다. 4년 뒤인 2012년 그라운동장은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축구경기장으로 부활한다.
올해로 건립 10주년을 맞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수용 인원 2만여 명,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에 4개 동의 주상 복합건물, 다양한 편의시설, 체육공원까지 갖춘 ‘시민친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축구경기는 물론이고 ‘새얼전국학 생·학부모 백일장’ 같은 행사가 열리는가 하면 최근엔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오는 19일 인천유나이티드 홈경기 개막전을 시작으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선 월드컵 개최 전달인 올 10월까지 축구경기가 펼쳐진다. 인천공설운동장-그라운동장-인천종합운동장의 88년 계보가 흐르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유서 깊은 인천 체육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원고출처 : 굿모닝인천 웹진 https://www.incheon.go.kr/goodmorning/index글 김진국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