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1919-2004)
1919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지만 일가족과 함께 함경남도 함흥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대부분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성장하였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로서 1941년 니혼 대학교 전문부 종교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해방후 원산의 작가동맹에서 펴낸 시집 《응향》에 자신의 시를 실었으나, 1946년 응향 사건이 발생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으로부터 반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월남하였다. 이후 언론계에 투신하였고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단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제자들에게 아무리 사회에 올바름이 없더라도, 기독교인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언론 운동을 하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지만 곧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 뒤로는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언론과 문학활동에만 몰두하였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그의 반독재 경력을 높이 산 민주당 정권과, 1949년 육군정보국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친분을 쌓은 박정희가 정계입문을 권하기도 하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미국 하와이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화가 이중섭, 승려 중광, 장애인 화가 김기창, 시인 고은 등 다양한 방면의 예술가와 교류하였다.
그의 작품은 주로 가톨릭 신앙에 바탕한 것으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프랑스 문부성에서 선정한 세계 200대 시인에 들기도 하였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작품 중심에 놓여 있으며 자기고백과 성찰이 주요한 특징을 이룬다. 역사적 격변기를 살았던 구상의 문학활동은 한국전쟁의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선택문제에 노출되어 있었다. 시집 『응향』으로 필화사건을 겪고 월남을 선택했던 구상 시인은 한국전쟁기에는 종군작가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문학에서 구상의 작품은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전쟁문학이 왜 반전문학주5으로 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왜관에 구상 문학관이 있다.
구상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와는 지향점이 다르다. 개인의 감상에 빠져 감정의 표출만을 중용하게 생각하는 전통 서정시에 반발하는 형식이다. 그렇지만 모더니스트 계열의 시도 비판하였다.
그의 시는 역사 의식과, 단순한 감정의 표현만이 아닌 더 본질적인 존재를 추구함으로 미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정신이 잘 나타난 것이 시집 ‘초토의 시’(1956)이다. 이 시집에는 그가 직접 겪은 한국전쟁을 서정성과, 현실 세계를 뛰어 넘는 높은 시정신을 나타내었다.
초토의 시 1
판잣집 유리 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 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다.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 졌다.
거기 언덕에 내려달라는
소녀의 미소에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 선다.
초토의 시는 전쟁의 참상을 눈앞에 두고 그 고통을 초극하여 구원의 세계를 인식하기 까지의 과정을 잘 표현하였다.
그의 (연작)시 ‘까마귀’는 비인간화가 두드러지는 현대의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그의 정신을 잘 나타냈다. 1970년 대에 우리나라가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무너지는 우리의 모습을 ‘까마귀’라는 전통적인 상징을 통해서 비판한다. 한편으로 물질 만능과 인간의 타락을 경고한다.
까마귀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여의도 아파트 숲 어느 고목 가지에
늙은 까마귀 한 마리 앉아 울고 있다.
입에 담기도 되뇌기도 저어되는
눈 뒤집힌 이 세상살이 바랄보며
까마귀는 목이 쉬도록 울고 있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요즘 세상은 온통 소음과 소란이라
나의 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겠지만
더러 보행하던 사람들이 쳐다보고도
저런 쓸모없는 재수없은 날 짐승이
아직도 살아남았나? 하는 표정들이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하지만 까마귀는 그 心眼에 비쳐진
저들의 불의와 부패가 마침내 빚어낼
그 재앙의 참화를 미리 일깨워 주려고
오늘도 목이 잠기도록 우짖고 있다.
(까마귀 1 의 부분)
구상 시의 중심 영역은 철저한 기독교의 세계관과 닿아 있다. 현실의 삶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기도로 해소하려고 시도한다. 절대자를 향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존재를 찾으려고 한다.
원죄의 되풀이
천체의 어느 별은
그 빛이 우리 눈에 띄기까지
백억 광년이 걸린다지 않는가.
저렇듯 무한대한 공간 속의
저렇듯 무한량한 시간 속의
한 점이요, 한 찰나인 너희가
마치 신 위의 신처럼 군림하여
세상 만물과 만사를 헤아리고
너희 뜻대로 되기를 바란단 말인가.
너희는 아담과 이브가 범한
그 원죄를 되풀이하다가
이 지구마저 잃을까 두렵구나.
창세기를 되읽고 되새기라!
인류의 맹점에서 / 문학사상사
첫댓글 구상 선생님은 지금 구상문학관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1960년대를 사셨다. 그 당시 부인이...
칠곡군보건소장을 지내시며 선생님의 병간호를 하셨다...
제가 어린시절 선생님의 집 마당에서 놀았던 인연으로...
경북도의 문화예술을 담당하면서 구상문학관을 짓게 되었다...
어릴적 햇살이 바른 날은 햇살을 받으며 앉아 계시던 선생님이 생각난다...
70여년이 다 지나가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