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량의 성은 강(姜)씨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현량(顯亮)이다. 동아(東阿)의 도정(道靖)의 제자이다. 어려서부터 맑은 명성이 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불렀다.
“도정은 큰 스승이고, 혜량은 작은 스승이다.”
비록 나이와 명망에서는 도정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도풍과 규범은 그를 이어받았다.
그 후 임치(臨淄)에 절을 세우고 『법화경』과 『대품경』ㆍ『소품경』ㆍ『십지론』 등을 강의하였다. 그러니 학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천 리 밖에서도 가마를 준비했다.
그 후 양자강을 건너 하원사(何園寺)에 머물렀다. 안연지(顔延之)와 장서(張緖)가 그의 덕을 그리워하여 계속 그곳에 머물도록 하였다. 그들은 늘 찬탄하였다.
도안(道安)과 법태(法汰)는
전 시대에 주옥같은 말씀을 토해내고
담빈과 혜량은
후세에 금 같은 소리를 떨치니
맑은 말과 오묘한 실마리
끊어지려 하다가 다시 일어났어라.
태시(太始) 연간(465~471)의 초기에 장엄사(莊嚴寺)에서 큰 모임을 열었다. 교학에 정통한 뛰어난 승려 천 명을 가려내어 교열하였다. 황제의 칙명으로 혜량과 담빈을 바꾸어가며 우두머리로 삼았다. 당시의 종사로서 이들과 더불어 경합할 사람은 없었다.
전송의 원휘(元徽) 연간(473~477)에 세상을 마쳤다. 그때 나이는 63세이다. 『현통론(玄通論)』을 지었다. 지금도 세상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