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여하사서벽산 問余何事栖碧山
소이부답심자한 笑而不答心自閑
도화류수묘연거 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내게 왜 벽산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빙그레 웃을 뿐 대답 못해도 마음 더욱 넉넉하네.
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가니
인간세상 벗어난 또 다른 세계라네
【시어 풀이】
<산중문답(山中問答)> : 문답은 흔히 두 사람 사이의 문답 형식으로 생각되지만, 이 시에서는 자문자답으로 풀이하여 감상하면 시적인 정취가 더욱 깊어진다.
<여(余)> : '나'라는 말로 이 시는 흔히 문답의 형식으로 보기가 싶지만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것으로 의미를 파악하면 더욱 의미가 깊은 시가 된다.
<하사(何事)> :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왜? 등등 이유를 나타내는 의문형이다.
<서(棲)> : 栖와 같은 글자로 깃들 서. 살 서. (예) 서식(棲息)하다.
<벽산(碧山)> : 푸른 산, 곧 조용한 산
<묘연(杳然)> : 아득히.
<묘(杳)> : 아득할 묘. 묘연(杳然)은 아득하고 가물가물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서 지금도 흔히 쓰이는 단어이다. 연(然)은 이와 같이 형용사나 동사 뒤에 붙어서 그 모습을 형용하는 접미사로도 많이 쓰인다. (예) 결연(決然), 확연(確然), 은연중에(隱然中에), 공공연하게(公公然하게)
<인간(人間) : 요즘에는 주로 "사람"이란 뜻으로만 쓰이지만, 한문에서는 ‘인생세간(人生世間’의 뜻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을 뜻하기도 한다. 즉 비인간(非人間)은 지금 말로 ‘비인간적’이란 뜻이 아니고,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란 뜻이다.
<묻노니> : 정신적인 자유에서 나오는 스스로의 질문이다. 자신이 세속과 완전히 결별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 의사소통의 수단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나타낸다. 1930년대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위의 시 구절 중 '笑而不答心自閑'을 빌려 쓰고 있다. '왜 사냐건 / 웃지요.'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인데, 그 표현에는 전원에서 사는 일의 평화로움이 잘 나타나 있다.
<복사꽃> : 선계(仙界)를 장식하는 꽃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동양의 관념적 선경(仙境)인 무릉도원을 암시한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 '桃花流水(도화유수)'는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 곧 선경(仙境)을 상징한다. 작자가 일생을 통해서 그리던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세계를 나타낸다. 복숭아꽃은 동양의 전통적인 선경(仙境)인 무릉도원을 암시하는 소재이다.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 세속적 인간 세계를 초월한 이상세계((理想世界), 이백이 꿈꾸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암시한다. 즉, 이미 신선(神仙)이 된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별유천지(別有天地)> : 또 다른 천지(우주, 세상)가 있다. '별천지'는 속된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매우 좋은 세계, 別은 有를 수식하는 부사이다.
출처 : 재봉틀 국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