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위로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앞두고 약 40일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경건하게 지내는 절기를 말합니다. 즉 부활절을 경건히 준비하는 절기로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며 매일 성경을 읽고 참회, 금식, 단식 등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이 시작하는 한 주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에는 성전 청결,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십자가에 못 박히심, 무덤에 장사 됨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 고통,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삼엄한 경계와 반역과 피비린내 나는 살륙이 자행되는 이런 마당에도 주님을 위로하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주님께 최초로 은혜 받은 마리아는 값비싼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눈물로 발을 씻으며 사람을 표했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는 최후의 성만찬이 차려졌으며, 갈릴리로부터 따라다니던 여인들은 주님이 지시던 십자가 앞까지 따라왔습니다. 또한 밤중에 찾아와 진지하게 질문하던 음성적인 교인 니고데모는 침향 섞은 몰약 100근쯤을 들고 와서 주님의 몸에 발랐고,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무덤을 서슴없이 제공했고, 부활의 새벽에는 향유를 예비한 여인들이 새벽 일찍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신앙은 예수 사랑에서 시작하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예수와의 인격적인 애정 없이도 성경은 가르칠 수 있고, 봉사도 할 수 있고, 희생도 할 수 있고, 직분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신자는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자는 사랑의 입김으로 타인을 사랑하고 자기희생을 천직으로 삼는 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한 비극도 절망도 비애도 없습니다. 그러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의 위로는 무엇이겠습니까? 침향도, 무덤도, 세마포도, 돈도, 밥도 아니라 오직 어린 소자 하나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태도입니다. 5천만을 위한다 하고 말로는 애국 애족해도 내 이웃 한 분을 미워하는 자는 결국 살인하는 죄를 범하는 자요, 주님을 섭섭하게 하는 자입니다.
지난달 22일 발생한 경북지역 산불 피해 신고액은 1조 4000억 원을 넘겼고 이에 따른 복구비는 2조 8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산불로 주택 4203채가 불에 탔고, 30명이 숨졌으며 9명이 중상, 36명이 경상을 입는 등 총 75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28일에는 미안마 중부 만달레이 인근에서 7.7의 강진이 발생, 지진의 영향으로 태국 방콕까지 영향을 미치며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도움의 요청이 오고 있습니다. 이때를 위한 작은 사랑의 실천 또한 필요한 절기입니다.
‘주여! 이 강한 마음을 녹여 사랑에 불붙게 하시고, 입술에 화인 맞고 입에 독사의 독이 가득한 이 죄인을 이번 수난(고난)의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