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1. 10 주일예배설교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시편 146:1-5)
“인간은 소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소망이 사라지면 별거 아닌 거로 너무나 허무하게 죽게 됩니다. 반면에 소망이 있으면 죽음도 이겨냅니다.
예화)
(1) 어느 무더운 여름날 공장에서 일하던 한 청년이 하도 더워서 어쩔 줄을 모르다 지하실에 큰 냉동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잘 됐다 싶어 땀이나 식히려는 마음으로 냉동창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철커덕 소리가 나면서 문이 닫혀버렸습니다. 그 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당황한 나머지 문을 두드리고 악을 써봤지만 구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청년은 상상을 합니다. “내 몸이 점점 얼어간다. 몇 시간 후면 죽겠구나.” 이틀 후 사람들이 냉동 창고의 문을 열어 보았을 때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냉동 창고는 가동되지 않았고 기온이 섭씨 15도에 불과했습니다. 산소도 충분했습니다. 그 청년을 죽인 것은 살인적인 냉기가 아니라 절망이었습니다.
(2) 소망으로 암을 이겨내고 세계 최대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를 7연패한 랜스 암스트롱의 이야기
그는 22세인 1993년 세계 사이클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줄곧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6년 생존율이 50%에 불과한 고환암 판정을 받게 됩니다. 발병 3년째인 암세포는 이미 온몸으로 퍼져 폐와 뇌 조직까지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암으로부터 자기의 생명과 꿈(사이클)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지만, 반드시 완쾌되어 사이클 트랙으로 돌아오겠다고 소망에 찬 약속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암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경과가 좋아지자 1999년 드디어 그는 사이클 선수로 돌아왔습니다. 세계 최대 사이클 대회인 제86회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했던 것입니다. 험준한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나들면서 프랑스 전국 도로를 일주하며 3427.5km를 23일만에 달려야 하는 대회입니다. 따라서 이 대회는 강인한 체력 없이는 완주 자체가 불가능한 대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대회에서 암스트롱이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전세계 언론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인간 승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은 우승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 승리를 암과 싸우는 모든 이에게 바칩니다. 저를 보십시오. 암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의 우승 소감은 세계 암환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암스트롱은 이 대회에서 첫 우승 이래 2005년 고별 경기까지 7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가 이러한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소망입니다. 소망은 산소와 같은 것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질식하는 것처럼 인생에 소망이 없으면 인간은 질식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소망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험악한 세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꿋꿋하게 살면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붙드는 소망 중에는 헛된 소망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소망은 당장은 살아갈 용기를 주고, 삶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헛된 것으로 밝혀지면 더 큰 절망의 수렁에 빠집니다. 그때는 모든 게 다 무너지게 됩니다.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갖되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참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헛된 소망과 참된 소망을대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하여 참된 소망을 붙들므로 결코 후회 없는 인생, 영원히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헛된 소망 :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
헛된 소망도 소망이기에 어느 정도는 삶에 의욕을 줍니다. 그러나 언젠가 실망할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헛된 소망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당장은 행복해 보여도 ‘잠재적으로 불행한 인생’입니다. 마치 시한폭탄과 같은 겁니다.
그러면 헛된 소망이란 어떤 것일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막연한 소망’이요, 또 하나는 ‘세속적인 소망’입니다.
① 막연한 소망: 근거도 없고, 불확실한데 그냥 기대를 걸어보는 것입니다.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후일 기대에 어긋나면 크게 실망하고 비관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심한 경우는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대박을 꿈꾸며 금광(노다지)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노다지를 발견한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낭패를 봤습니다. 요즘도 대박이 터질 것 같은 막연한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복권과 도박에 목숨을 겁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그러다가 오히려 그 소망이 좌절되고 쪽박을 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막연한 소망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② 세속적인 소망 : 세상의 재물, 권세, 향락 등에 기대를 거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소망과 기대가 있기에 사람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게 사실입니다. 만일 이런 것조차 없다면 사람들이 노력도 안하고, 세상은 정지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종류의 소망은 이루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실망하고, 이룬다 해도 언젠가 실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끝내는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게 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전도서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그러므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성경은 곳곳에서 이것을 경계합니다.
시편 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잠언 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잠언 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디모데전서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세상 권세에도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권세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풀의 꽃과 같은 겁니다. 베드로전서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 말의 새로운 버전이 나왔습니다. ‘권불오년’(權不五年)이랍니다. 정권만 바뀌면 권력의 실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인생이 바로 저런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야보고서)은 '우리 인생'을 가리켜 '안개'라고 표현합니다.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합시다. 재물이든 권세든 영원한 가치, 즉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얻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고, 후회가 없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도구일 뿐 우리 인생의 목적도 아니고, 소망도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시편 기자가 뭐라고 권면합니까?
3-4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2. 참된 소망 :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
시편 기자는 이제 헛된 소망을 버리고 참된 소망을 붙들 것을 강조합니다. 5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그 어느 것도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것도 언젠가 나를 실망시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허다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요,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실망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 동안에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러실만한 분입니다. 시편 146:6 말씀대로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이요 전능자이십니다. 불가능한 게 없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신실한 분입니다. 약속을 꼭 지키십니다. 그리고 시편 146:7-9 말씀대로 사랑과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불쌍히 여기시기에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중요한 말입니다. ‘야곱과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분은 역사 속에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간사한 야곱처럼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배신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망쳐놓은 언약을 수습하시고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좋은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 인생을 수습해주시고 책임져주십니다. 그것도 잠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그러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생토록 은혜 베푸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고난이 닥쳐와도 피할 길을 열어 보이시고, 이길 힘을 주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심지어 죽음이 닥쳐와도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잠언 14:32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의 주님이 되시기에 죽음이 닥쳐와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천국과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한 절망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전에는 절망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한 어떤 상황에서든지 소망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예화) 사도행전 27장 유라굴로 광풍 사건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압송됩니다. 그런데 바울을 압송하던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의 절망 상태를 사도행전 27:20-21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
배에 탄 모든 사람에게 살 소망조차 사라졌습니다. 완전한 절망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승객들의 한 가운데 당당하게 외치며 소망을 줍니다. 사도행전 27:22-25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여러분! 선주도, 선원들도, 로마 군인들도 벌벌 떨고 있을 때 당당하게 외치는 바울의 모습이 얼마나 통쾌합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그 소망을 나눠주었습니다. 그 결과 배에 탄 276명 모두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둘러보십시오.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참된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실망을 주는 것들뿐입니다. 오직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심지어 믿는 성도님들조차 엉뚱한 데 가서 기웃거리고 엉뚱한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직 참된 소망이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언젠가 세상 모든 줄이 끊어질 날이 옵니다. 재물의 줄, 명예의 줄, 권세의 줄, 인맥의 줄도 다 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소망의 줄이 있습니다. 그 줄은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줄입니다. 소망의 줄입니다. 이 소망의 줄을 꼭 붙들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참된 소망이신 하나님이 없어서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소망의 증인들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소개해 주십시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전해 주십시오. 이것이 그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아무쪼록 참된 소망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고, 이웃에게 참된 소망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