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대목장 결산은 어떤가.
▶이영만=도매시장으로 일부 지역 과일이 홍수 출하되면서 경락값이 크게 떨어졌다. 다행히 우리 농협은 농협 청과사업단 등에서 일정 물량을 안정적으로 처리해 줘 대목장을 큰탈없이 마무리했다. 아직 정산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지난해 추석 수준을 조금 밑도는 선에서 올 명절 대목장 결산이 이뤄질 것 같다.
▶고상혁=대목장 초기에 일부 언론과 유통업체들이 추석이 일러 값이 비싸질 거라고 속단하는 바람에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농협이 주축이 돼 국산 과일 공급량이 풍부할 것이라고 여론을 바로잡아나갔지만 한계가 있었다. 청과사업단의 경우 사과는 금액 기준으로 지난해 수준을 조금 웃돌았고 배는 역조를 기록했다. 하지만 처리 물량으로 봤을 때는 배의 경우 지난해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만큼 가격이 나빴다는 뜻이다.
- 추석 이후 과일 소비가 둔화되고 있다. 소비를 진작시킬 방안이 있다면.
▶이경범=TV 등을 통해 국산 과일은 맛이 좋고 건강에 이롭다는 점을 계속해서 알려나가야 한다. 최근 들어 체리다 블루베리다 해서 수입과일이 봇물처럼 들어오고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색이 화려하고 단맛이 나는 수입과일들로 넘쳐난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먹다가 나중엔 입맛이 길들여져 자꾸 구입하게 되는 게 소비자들의 심리다. 칠레산 포도가 대표적인 예다. 국내 포도 생산 비수기에 들여오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자신했지만 지금 어떤가. 알이 굵고 당도가 높아 선호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올여름 내내 포도값이 바닥세인 것은 이런 상황이 누적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상혁=국산 과일은 건강기능성과 안전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값이 싸니까 많이 먹으라고 하는 것은 옛날 얘기다.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과일의 어떤 성분들이 몸에 이롭고 우리 땅에서 재배한 것들이 수입과일과 견줘 안전하다는 것을 적극 홍보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유통업체들은 과대 포장을 줄이고 표준규격을 지켜 합리적인 구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농협을 제외한 대형 유통업체들은 배의 표준규격(15㎏·7.5㎏)을 무시하고 6.7㎏이나 3㎏들이 등 자신들의 입맛대로 규격을 정할 때가 적지 않다. 한상자에 들어가는 개수를 줄여 겉으론 소매가격을 낮추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포장화가 진전될수록 전체적인 포장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산지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박춘복=요즘엔 과일을 눈으로 먹는다고 할 만큼 맛뿐만 아니라 모양을 중시한다. 배만 해도 속칭 ‘맨드라미’라고 해서 겉이 고르게 둥근 것이 최고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이런 특품 이외에 상·중품들도 먹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특히 과일은 깎아먹는 게 우리네 식문화 아닌가. 껍질을 벗겨 내용물만을 놓고 보면 맛이 좋은데도 중하품이란 이유로 시장에서 헐값에 거래돼 안타깝다. 중소과나 중·하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 국내 과일 값 지지를 위해 수출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은데.
▶윤덕용=그렇다. 더욱이 배는 전통적인 수출 효자 농산물 아닌가. 우리 배 농가들은 그동안 미국과 대만 등으로 꾸준히 수출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자부심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올해도 미국뿐만 아니라 대만 등으로 수출을 확대할 요량으로 성환농협을 중심으로 농가들이 똘똘 뭉치고 있다. 과일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우리 교민만이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사먹을 수 있도록 정부가 수출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
▶이영만=지역농협들은 소규모 농가의 판로 확보를 위해 공선출하회를 결성, 시장 교섭력을 높여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농가들이 덩치를 키워 품질을 균일화하고 물량을 규모화하면 도매시장에 개별 출하하는 것보다 경쟁력이 반드시 있다. 농가들은 농협을 신뢰하고 품질 개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 요즘 분위기상 과일재배 농가들의 시름이 깊을텐데.
▶이경범=명절이 지났어도 목돈 만지기가 예년만 못하다. 판매가격은 몇년째 제자리걸음이지만 생산원가가 가파르게 올라서다. 대목기간 판매금액 중 20~30%는 자재비·포장비 등 출하비용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간다. 더욱이 최근엔 기상 이변이 심해져선지 각종 병해충에 대비한 약제를 과거보다 더 많이 처리할 수밖에 없다. 약제값 부담으로 농업인들의 허리가 휠 지경이다. 흑성병(검은별무늬병)·적성병(붉은별무늬병) 예방 약제값은 한병당 2만5000~4만원이나 하고, 과실비대제도 약제 살포차량 1대분(500~700평 처리량) 값이 7만원이나 한다. 한병당 10만~15만원하는 약제도 수두룩하다. 친환경 농법이 일반화되면서 저독성 약제가 많이 등장했지만 반대로 살포량이 더 늘어나게 되는 단점도 있다.
▶박춘복=수확과 포장 등 출하작업에 드는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인건비는 1년 혹은 2년마다 1인당 최소 5000원씩 상승하는 것 같다. 단순 수확작업인데도 성인 남자는 1인당 10만원, 여자는 5만5000~6만원은 줘야 일손을 구할 수 있는 실정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베트남이나 필리핀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쓰기도 하지만 우리 말이 통하지 않고 숙련도가 떨어진다.
▶윤덕용=농기계 값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면적에 과일농사를 지으려면 기본적으로 소독기(SS기)·제초기·트랙터 등의 농기계가 필요하다. SS기는 한대당 3500만~4000만원이고 제초기도 2000만원이나 한다. 사람이 짊어지고 사용하는 동력 예취기마저도 수십만원은 간다. 필수 농기계를 구비하는 데만 1억원 가까이가 들어가는 셈이다. 값 비싼 기계를 구입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농가 고령화로 남의 손을 빌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몸만 와서 제초기로 풀을 깎아달라고 할 때도 성인 남자 기준 하루 품삯을 12만원은 줘야 한다. 하루빨리 과일 수급을 안정시켜 농업인들이 겪고 있는 이같은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한다.
진행 및 정리=한재희·김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