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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로부터 가섭으로 전해진 불교의 종맥(宗脈)은 28대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와서 중국으로 건너오게 되는데, 달마(?~ 528년)는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달마로부터 다시 종맥이 이어져 육대(六代) 조사(祖師)가 된 사람이 바로 혜능이다.
혜능은 이후 중국 선종을 크게 일으켰으며, 중국 불교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이러한 육조 혜능이 오조(五祖) 홍인으로부터 종통을 계승받을 때, 그 상황이 매우 특이하여 「육조단경(六祖壇經)」 등에 널리 전해오고 있다.
박우당 도전께서 쌍계사를 순행하기 전, 임원들에게 “쌍계사에 담긴 내력을 잘 알아두라”고 하신 뜻은 바로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 사이에 종통이 계승되는 상황을 잘 알아두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신으로부터 종통을 계승받을 사람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을 임원들에게 깨우쳐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즉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아두면 이후 종통이 어떤 사람에게 계승되었는지 쉽게 판단이 서게 될 것이고, 따라서 종맥이 이어진 곳인 연원(淵源)을 찾아 도통(道通)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육조단경」을 통하여 그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범양(范陽)인데, 좌천(左遷)되어 영남(嶺南)의 신주(新州)로 옮겨와 일반 백성으로 살았다.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와 함께 남해로 옮겨왔는데, 집안이 몹시 어려워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는데, 혜능은 그 나무를 가져다주기 위해 그 손님과 함께 관숙사(官宿舍)에 이르렀다. 거기서 손님은 나무를 받아가고, 혜능은 값을 받고서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관숙사에 유숙하던 한 손님이 「금강경(金剛經)」을 읽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서는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읽고 계십니까?”
손님이 대답했다.
“나는 기주 황매현(黃梅縣) 동쪽에 있는 빙무산(憑茂山)에서 오조 홍인(弘忍)의 설법을 들었는데, 지금 그곳에는 문도(門徒)가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나 속인(俗人)을 막론하고 다만 「금강경」을 숙지하고 지성으로 읽으면 곧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을 예배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홍인이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였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저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성불(成佛)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하였다.
홍인은 혜능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단 말이냐?” 하였다.
그러자 혜능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性品)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오랑캐의 몸인 것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홍인은 함께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앗간의 곡식을 책임지고 있는 중을 불러 혜능을 딸려보내어 그곳에서 일하게 하니,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오조 홍인이 하루는 문도(門徒)들을 다 불러오게 하였다.
문도들이 다 모이자 말하기를, “세간(世間) 사람은 생사(生死)가 가장 큰 일이나 너희 문도들은 종일토록 이 절간에 앉아 공양을 하며 다만 복(福)만을 구할 뿐, 도무지 생사의 고해(苦海)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구나. 너희들의 자성(自性)이 미혹하면 복문(福門)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般若)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偈頌) 한 수를 지어 내게 가져오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袈裟)와 법(法)을 부촉하여 육대(六代)의 조사(祖師)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하였다
문도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모름지기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神秀) 상좌가 우리의 교수사(敎授師)이므로, 신수 상좌가 법을 얻게 되면 자연히 따라서 의지하게 될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 하고서는 모든 문도들이 생각을 쉬고 감히 게송을 지어 바치지 않았다.
한편, 이때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에서 깨친 게송을 지어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偈頌)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 스님께서 내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겠는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법(法)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어렵게 게송을 지었지만 막상 신수는 홍인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신수 상좌는 밤이 삼경(三更)에 이르렀을 때,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적어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는데,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신수가 지은 게송은 다음과 같았다.
身是菩提樹 (신시보리수) 몸 이것은 보리 나무요
心如明鏡臺 (심여명경대) 마음은 밝은 거울대와 같다.
時時勤拂式(시시근불식) 때때로 부지런히 씻고 닦아서
物使惹塵埃(물사야진애) 티끌 먼지가 끼지 말게 하라.
오조 홍인은 아침에, 화공인 노진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楞伽變相)을 그리게 하려 하다가 벽에 적힌 게송을 보았다. 홍인은 그 게송을 다 읽고 나서 화공에게 말하기를 “능가변상을 그리지 않으리라.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이 법을 의지하여 행실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하였다.
이윽고 홍인은 문도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하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이에 홍인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라.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도들이 다들 외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하였다.
오조 홍인이 신수를 거처로 불러서 묻기를, “네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 하였다.
신수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스승님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서 보아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겠습니까?” 하였다.
홍인은 신수에게 말하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견해가 가까이 오기는 했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菩提)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 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서 나에게 와 보여라. 만약 문 안에 들어와서 자성(自性)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袈裟)와 법(法)을 너에게 부촉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신수는 돌아가 며칠이 지나도록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이 즈음에 한 동자가 신수의 게송을 외면서 혜능이 일하고 있는 방앗간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見性)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 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문도(門徒)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 지어와서 보이라 하셨다. 그래서 큰 뜻을 깨쳤으면 곧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祖師)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神秀)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놓았더니, 오조 스님께서 모든 문도들로 하여금 다 외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이에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남짓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어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라고 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또한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自性)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이러한 뜻을 게송으로서 말하였다.
菩提本無樹 (보리본무수)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명경은 역시 대가 아니다.
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어느 곳에 티끌 먼지가 끼겠는가?
心是菩提樹( 심시보리수) 마음 이것은 보리 나무요
身爲明鏡臺(신위명경대) 몸은 밝은 거울대라.
明鏡本淸淨(명경본청정) 밝은 거울은 본래 청정하거니
何處染塵埃(하처염진애) 어느 곳에 티끌 먼지 더럽히리오.
혜능은 자신의 게송을 남겨두고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절 안의 대중들은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겼다.
그러나 오조 홍인은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고, 곧 혜능이 큰 뜻을 깨쳤음을 알아챘으나,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 챌까 두려워하여 대중에게 말하기를, “이도 또한 깨달은 바가 아니로다!” 하고 신발을 벗어 지워버렸다. 이것을 본 문도들이 혜능을 비웃기 시작하였다. 이에 홍인은 비로소 마음을 놓고 당우(堂宇)로 돌아갔다.
그후 홍인은 조용히 방앗간을 찾았다.
“방아는 다 찧었느냐?”
“다 찧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키질만 하면 됩니다.”
‘방아를 다 찧었느냐’는 말은 마음의 번뇌의 껍질은 다 벗었느냐는 말이었으며, 키질만 하면 된다는 것은 번뇌는 다 벗었으나 본성(本性)을 밝히기 위해서는 껍질을 키질해줄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바로 옆에 행자가 있었으나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지를 못했다.
혜능의 마음을 알아차린 홍인은 주장자로 절굿대를 세 번 치고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돌아갔다. 이것은 삼경(三更)의 깊은 밤에 뒷문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 것 역시 알 수가 없었다.
혜능이 삼경 깊은 밤에 조사당의 뒷문으로 찾아갔다. 홍인은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불러들여 「금강경」을 설하였다.
혜능은 ‘머물지 않는 곳에 그 마음이 생긴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혜능이 그날 밤으로 법(法)을 전해 받았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 홍인은 ‘단박에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袈裟)’를 전하며 말하였다.
“네가 육대 조사(六代祖師)가 되었으니 가사(袈裟)와 발우(鉢釪)로써 신표(信標=증표)를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法)은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 홍인은 또 말하기를 “혜능아, 예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마치 실낱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이곳을 떠나라” 하였다.
혜능은 가사와 발우와 법을 받고 그 밤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홍인은 그날 밤, 몸소 구강역(九江驛)까지 혜능을 전송해주며 처분을 내리기를,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3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리고 가사와 발우는 더 이상 전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육조 혜능은 오조 홍인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혜능이 가사와 법을 가지고 떠났음을 알게 된 수백 명의 문도들이 뒤를 쫓아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발우를 빼앗고자 하였다. 그러나 혜능을 잡지 못하고 계속 뒤쫓고만 있었는데, 오직 한 스님이 혜능이 떠난 지 두 달 가량 되어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을 때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혜능을 덮치려 하였다.
그의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이었는데, 혜명은 그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한 스님이었다.
육조 혜능이 곧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두고 혜명에게 “가져가라”고 하였으나 바위에 붙은 가사와 발우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여기서 문득 깨달은 혜명이 말하기를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法)을 구함이요, 그 가사와 발우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였다.
육조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혜명에게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렸으므로, 육조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였다.
이후 혜능은 남방으로 내려가 15년 후, 광주 법성사(法性寺)에서 비로소 법(法)을 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선종(禪宗)을 크게 융성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가사와 발우는 전해져 내려가지 못하였다.
앞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오조 홍인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는 상좌였던 신수(神秀)를 인정해주고 혜능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이것은 자기만족에 빠진 신수 상좌와, 신수의 견해에 현혹된 문도들의 시기심으로 인해 육조 혜능이 저해를 받지 않도록 감싸고 보호키 위함이었던 것이다.
한편 방앗간으로 찾아간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의 대화는 일반인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서로 간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하는 대화였다.
방앗간으로 찾아간 홍인에게 혜능이 가르침을 구하자 홍인은 곧 그 뜻을 알아차리고, 삼경이 다 된 깊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오라고 하였다. 혜능이 삼경이 다 된 밤에 홍인의 처소를 찾아가자 「금강경」을 강설해주고 말하기를, “내가 *당번(幢幡)을 날린 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이제야 내가 전해받은 법(法)을 전수할 그릇을 만났다. 그것이 바로 혜능 너이다. 너는 이제 육조(六祖)가 되었으니 가사(袈裟)와 발우(鉢釪)로써 그 증표를 삼아라” 하고 가사와 발우를 전하고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는 심법(心法)을 전수해주었다.
한편 이후 신수가 게송을 지어 다시 홍인을 찾아가니, 홍인이 말하기를 “이미 법을 전하였다” 하였다. 그러자 신수가 “가사와 발우는 어찌하였습니까?” 하자 “능(能)한 자가 가져갔다” 하였다.
그러자 신수는 일어나 나와 “남방 오랑캐가 가사를 훔쳐갔다” 하며 사람을 보내어 찾아오게 하였던 것이다. 이에 혜명이 사람들을 이끌고 혜능을 쫓아왔으나 가사와 발우는 결코 빼앗아가지 못하였다.
힘이 장사였던 혜명이 가사와 발우를 들 수 없었던 것은 이미 혜능에게 신명(神明)이 옮겨갔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혜능이 육조(六祖)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법전수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여 법이 전해져 내려간 것이다. 반면 신수는 아무리 실력이 있고 세력이 있다고 하여도 오조 홍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오조와 통하지 못했던 것이며, 또한 욕심으로 가사와 발우를 차지하려 하여도 신명이 용납치 않았던 것이다.
- 미륵불의 출세 -
불교의 마지막 종장 혜능 이다
이렇듯 종맥이 끊어진 곳에서는 더이상 의 법이 전수 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석가의 오오백세 예언 도 기본교화 로 다 알고 있는 분들이 대체 왜 그리 어두우신지 모르겠다.

첫댓글 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셔야지...도전님에서 김으로 종통맥이 흘러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겁니까? 또 도돌이표 아닙니까? 자기주장에 불과하잔아요?
대순에서 교화 들었던거 생각 해 보시라는 겁니다.
오봉산 을 떠나서 말하는 겁니다.
분명 히 서교는 종교개혁으로 부터 맥이 끊어졌고 불교는 육조혜능에서 맥이 끊어졌다.
우리 대순은 맥이 살아 있고 여기서 운수가 있다 이런내용 같은 거요
그래서 하늘제자님들은 누가 단체를 이었는지 자꾸 물어 보는 겁니다
1 한천모님
2조선감
3 두분이 의논
4 집단지성
이정도 면 이중에 답이 있나요?
5분까지 출해야 하는것이 도라면 이미 다출했고 역사를 다 했는데 또다른 책임자는 누구냐는 것이 맥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지금은 치자곡문도수라고 봐야죠그동안 수행해온 결과와 믿음으로 말그대로 지팔 지가흔들고 가는.. 최풍헌 말을 누가 믿었어요?류훈장과 장남인가? 가족들도 다 믿지 않았잔아요
@山木本圖 맥은 후천 5만년동안 이어지는 겁니다.
500 나한 이 도통 했다고 끝난게 아니 었잖아요
종통은 증명할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중에 하나. 마지막 두분은 성씨가 같아야 한다
진손양목 계룡.박씨인데 이전분까지 하면 쓰리박이된다. 이런거처럼...^^
님아 니가 옳고 내가 옳고 가 아니라 박단장 후임이 궁금 할뿐 입니다.이것 부터 짚고 넘어 가지요
비결서 믿지 말라 했는데 자꾸 비결서 들이밀면 대화 안됩니다.
내뒤는 박씨 라고 한거 압니다.
님의 주장은 그렇다 치고
@백의 ㅎㅎㅎ 구럼 갑을청룡 내달릴때 살아날놈 없으리라 이말씀은 어때요? 살아날놈 없을때라는건 개벽상황일텐데..
@山木本圖 뒷다리 만지지 마시고 그래서 누굽니까?
@山木本圖 에이 신선봉안식 에 가봐야 하나 ㅎ
자꾸 오라는 사람도 있는데 무슨 큰 비밀 이라고
나원참
@백의 자꾸 공허한 메아리가 되네 글을 좀 똑바로 읽어요
차라리 확실하게 27년 헛도수의 의미와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봐요.아주 정밀하게...침대 들어갈때가가장 행복해욯ㅎㅎ
@山木本圖 세상 다 아는 것 처럼 웃고 있구만요 ㅎ
기본 맥주3 안주 2 개 도 모름서
그만 할라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밀이 많은 단체는 쪼그라 들어요.
제가 보는 시각은 여기 오시는 김성일 대두목 후보자 보다 그 단체는 답 없어요 ㅎ
@백의 김명선씨나 김성일씨도 가끔 맞는 얘기 하기도 합니다 ..^^
😄😃😀
a. 끼어들어 미안합네닷, 다만 천제단의 종맥에 대해 ...
같은 천제단 제자로 산목본도님과 또 다른 천제단 제자는 다른 의견임을 이제 알았습니닷
산목본도님 : 1- 증산, 2-정산, 3-박우당, 4-박도전, 5-박단장
다른 제자 : 1-증산, 2-정산, 3-박우당, 4-박도전(수교자), 5-박도전(대두목), 6-수부(한미희) ===> (박단장은 문왕을 도운 강태공같은 인물로 봄)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이 대두되는 건, 박단장에 대한 공식 의견을 천제단에서 밝히지 않았기 때문임
문왕을 도운 강태공으로 보는게 아닙니다 .
구룡의 이치 라고 본다 하잖아요 ㅎ
구룡은 구천상제님 을 의미 한다고 보이지 않나요?
포항에 구룡포가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박단장 을 구룡의 이치 라고 보는 것은 연원 으로 보는 것이지 이윤이나 강태공 으로 보는게 아니라는게 제생각 입니다.
@백의 내가 얘기했잖우. 산목본도님은 그렇게 보는데 다른 천제단 제자는 그렇게 안 본다구 ...
@백의 당근 구러쵸ㅎㅎ 잘 봤네요
😄😃😀
b. 오봉산은 5조 홍인과 6조 혜능의 "심법전수"를 종맥이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예로 사용합니다. 즉 ...
박도전과 김명선 수부는 바로 "심법전수"를 통해 종맥을 이었다는 겁니다.
김명선 수부가 처음으로 박도전으로부터 지목된 건 ...
어느날 모든 수도인들은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밭에서 일하던 김수부도 갔답니다. 그때 박도전 왈 "김명선이 누구야?" 라며 세워 놓고 훈시를 했답니다. 끝나고 어느 내수가 "김내수는 좋겠다, 도전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사람을 지명해서 세워 놓고 훈시한 예가 없었다"고 했답니다.
이때부터 김수부 마음엔 '왜 날 세워 놓고 훈시를 했지?' ... 자기를 돌아보는 싹이 텄을 터
글구 박도전이 '미륵'이란 소문이 들며 상도가 흉흉해지자 이에 관련된 자들을 공판해 내 쫓았는데, 김수부를 내 쫓으며 박도전이 왈 "이순신에겐 배 12척이 남았어" ... 라는 이상한 말을 했더랍니다.
이런 과정 자체를 심법으로 종맥을 전수한거라고 믿는 겁네닷!
제가 중요 하게 보는 것은 상도도전님 께서 45세에 존영을 올리시고 50세 에 박우당도전님 을 미륵세존님으로 봉안 했듯이 오봉산 에서도 50 세에 태을천상원군 으로 3번에 걸쳐 완성 했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이윤의 49년지비 50 년 에 해당 하는 이윤의 도수에 부합 하기 때문 입니다.
@백의 50수, 그건 오봉에도 있지만 다른 곳에선 다르게 행한 사람도 있어유. 그러니 그것 하나만 가지고 볼건 아니라는거쥬
@노매드 혜공[蕙孔] 태을천상원군 으로 모신게 더 중요 합니다.
강병란 쪽 은 50 수 가 안 맞아요
@백의 그게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군요.
@노매드 혜공[蕙孔] 상도 전경 교화집 인가 에 상도에 들어 오는 도인들을 이윤의 도수에 빗대어 설명 하는 구절 이 있습니다.
그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다음 이 있을 수 있겠구나
그때 까지만 해도 상도도전님 이후는 없다는게 당연 한 것인데 진법찾아 상도 들어 오는 도인이 49 세 에만 오는게 아니니 뭔가 설명에 오류가 보였거던요
@백의 3번에 걸쳐 완성하는게 이윤도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 말이잔아요?그게 어디에 나옵니까?
@山木本圖 오성산 배말뚝
@백의 삼신의 성씨를 빼면서부터 원위의 법은 끝났다고 봐야죠 왜 그래야 하는지를 생각하라는거죠 이미 사차원에서 도전님을 삼위일체신이라 하였고 나중에 실제로 그렇게 모셨어요 도전님께서도 유일신 절대자 말씀하셨고,.절대자 유일신은 구천상제님 한분 뿐이다 하셨고 비결과도 일치해요
@山木本圖 대순의 도는 판밖의 연속성을 가지는데 대순진리를 안믿고 계신다 봐야죠.
판밖에서 진법완성을 확인 하시고 그렇게 처결 하셨다 는 생각은 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백의 증산께서도 요순우왕일체동 일체란 모든것이 같다는 것이잔아요 또 왕겁오비삼국진.삼국이 먼지가 되었다는것은 삼신의 법도 방편이라는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흐름이 일관성이 있잔아요 이게 뭐가 어려워요?그래서 예전부터 줄곧 이얘기를 했는데...이에 반해 님들쪽에서 한일이나 주장은..역천이라할수밖에
@백의 오히려 남편까지 모시면서 6분이나...
그래서 만법귀일 얘기를 했던겁니다 그게 이치 아니냐고?
@山木本圖 우짜모 좋노
역천은 님이 하고 계시죠.
천모는 내가 정해 상도도전님 말씀
구천상제님 께도 수부가 있었어 상도도전님 말씀
상도 도전님 께서 양력 12월 4일을 광명절로 만드신 이유 생각좀 해보세요
@山木本圖 5 도 모르는데
6 은 말해 뭐 하겠습니까
일단 5부터 따져 보세요.
@백의 하느님이 만인의 하느님이지 무슨 성씨를 가지는게 말이 되느냐?또 하느니이 여러분이라는게 이치에 맞느나?...물론 삼천원위가 완성된 뒤의 일이죠.
@山木本圖 그건 님 생각 일뿐 입니다.
해원신이 도주님 보은신이 박우당도전님 이라 훈시 하셨는데 상도에서 하는 녹명지도 안 맞잖아요 그죠? 그럼 매사에 의문을 가지셔야죠 깊이 파셔야죠
@백의 오성산배말뚝을 세번박았다는 것이 이윤도수라는것도 그렇고 그래서 신위를 세번 고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잔아요? 한번 알아봫으면 그만이지 한분의 신위를 어떴게 세번씩이나 고쳐요 그렇게 하신분이 업ㅅ자아요 신위를 잘 모르니까 그런일이 일어난거잔아요
또 그것이 김 50세에 모도 일어났어요? 그것도 아니잔아
@山木本圖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반박 하지 마셈
@백의 각자가 자기 주장만 난무하고 모두가 내똥이 니똥보다 더굵어 이게 지금 세태라는거 모두 밝혀 놨으니..ㅎㅎㅎ 너무 적나라하요
@山木本圖 늦은 시간 한잔 하셨나 봅니다.
철자도 가끔 틀리고
실수로 반말도 하면서
급하게 반박 하느라 정신도 없어 보이고
처음에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박성상제 만 모셨다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박성상제와 태을천상원군 김성성천황후 두분 모셨다가
태을천상원군 박성구천상제
태을천상원군 김성성천황후
이리 된겁니다.
이렇게 삼신이 되고 사위성존 이 되고 양산도 되고 양박 도 되는 겁니다.
@백의 5에서 어그러지면 6은 볼필요도 없어요
오랜만에 6조 혜능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부처님 이후 제자중에 처음으로 책을 지은분이 육조 혜능이다.
5조 홍인을 떠나 홍인대사의 지시대로 사회현(四會縣)이라고 하는 깊은 산속, 사냥해서 먹고사는 산골에서 16년을 살았다.
짐승을 사냥하되 고기를 먹지않는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6조 홍인에 이르러 육조단경이라는 책을 통해 불교가 크게 흥하고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부처님 다음의 최고로 걸출한 분이시다.
그분의 두정(머리)이 우리나라 쌍계사에 모셔져 있다.
쌍계사 내 금당(金堂)이라는 법당안에 석탑이 모셔져 있는데 석탑안에 혜능의 두정이 모셔져 있다.
우당에서 박성구도전께서 종통이 전달되는 과정이 5조에서 6조로 종통이 계승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6조에서 종통이 더이상 전해지지 않았듯이
박성구도전님 이후로 종통이 전해지지 않는다.
5조 홍인께서 6조 혜능에게 종통을 전할때 6조가 다치지 않케하기 위하여 깨달은 경지에 이른 글임에도 억지를 부려 벽에 쓴 글을 지우라고 했듯이
개유보(皆有報) 책을 보면 종통계승 내용과 흡사하다.
6조 혜능이 사회현(四會縣)에서 16년을 보냈듯이 박성구도전께서는 네번째 종통을 이으신 분으로 1.6(水)
기운을 가지시고 금산사 연못의 이치로 오신 분이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박성구도전님 이후는 종통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주역시대를 여실때 문왕을 도와 강태공이 큰일을 했듯이(봉신방 영화 참고)
정역시대를 맞아 강태공의 역할을 박천수단장께서 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 앞으로 강태공이 도수가 있으리라.고 공사를 보셨다.
강태공 이후의 도수를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대시태조(大時太祖) 출세(出世) 제왕(帝王) 장상(將相) 방백(方伯) 수령(守令) 창생점고(蒼生點考) 후비소(后妃所)라고 공사를 보셨다.
大時란 우리가 아는 후천5만년 정역시대를 말한다.
太祖는 고려 왕건이나 조선의 이성계를 말하듯
大時의 태조는 박성구도전님을 칭한다.
박성구도전님께서는 마음대로 왕래하고 유력하신 분이시기에 머지 않아 안계시는 동안
后妃(왕비 : 태조의 부인)이신 사모님께서 일일이 관리감독 하신다는 공사이시다.
언제까지?
마음대로 왕래하시니 조만간 돌아 오실때까지~~
산목본도님의 글을 읽어 보셨나요?
님의 글과 배치가 됩니다.
박단장을 5 번째라고 했고 구룡의 이치 라고 도 했습니다.
아직 그단체는 진리가 정립 안되었나 봅니다.
기스니오디님은 개벽경5권 읽어보지 않았나요?
업은아이 3년 찾는다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