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장 3절 – 8절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바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자입니다.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한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무능력한 자를 동역자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보이십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그 일을 이룰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낮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의 성취를 위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어 주십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바리새인처럼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의 의에 도취되어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에 사로잡혀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명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자부하는 큰 아들입니다. 이 큰 아들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모범적인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큰 아들은 자기의 의가 충만하여 남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끝내는 자신이 탕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청교도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풍토병이 걸려 죽어가고 극한 가난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웃 인디언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옥수수와 칠면조같은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농사를 짓고서 추수를 마치는 날에 인디언들을 초대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청교도들은 자신들이 그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자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은혜이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들의 생존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더하셨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은혜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라고 하면 얼굴이 변하고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이 감사를 모르기 때문에 가나안성도들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