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세 생일 연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말 194필, 사람 27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절단이 꾸려졌다. 이때 박지원과 함께 북경에 다녀온 노이점(盧以漸)의 기행문이 번역되어 『열하일기와의 만남 그리고 엇갈림-수사록』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건륭은 청나라 최대의 판도를 이룩한 황제로, 일생 동안 10번이나 전쟁에 승리하여 십전 노인(十全老人)이라고 한다. 재위 기간도 중국 역사상 가장 긴 황제가 될 수 있었지만 할아버지 강희 황제의 재위 61년을 넘지 않기 위하여 통치 60년이 되어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태상황이 되었다.
2. 지금 우리가 『열하일기』와 『수사록』에 주목하는 것은 지금의 중국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고전 자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분과 학문으로는 중국을 통째로 놓고 이해하기 힘들다. 몇 년간 중국어를 공부하여도 거대한 땅덩어리와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중국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이런 중에 『열하일기』와 『수사록』에는 중국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 특히 박지원과 노이점과 같은 지식인들은 평생 중국학을 업으로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식견은 지금의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고전을 꺼내어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고전은 통독해 내려가기가 간단하지 않다. 고전이 창작되었던 시기부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리다 보니 모든 것이 바뀌어서 좀처럼 작품의 분위기에 공감하기 어렵다. 고전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 풍속, 생존방식 같은 다양한 것들을 이해해야 비로소 그 작품의 진면목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18세기 고전 중국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선택하라면 『열하일기』를 추천할 수 있겠고, 그 보완물로 이번에 번역된 노이점의 『수사록』을 말할 수 있겠다.
3. 『열하일기』 7월 15일자 내용을 보면, 박지원은 당시 함께 갔던 사행단의 분위기를 상사(上士)와 중사(中士), 하사(下士)의 주장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변발을 배척하는 상사는 노이점, 북벌을 주장하는 중사는 주명신이다. 이들은 바로 정사 박명원의 비장들로 박지원이 당시 시사와 관련된 민감한 사건이라 인명을 밝히지 못하고 상사와 중사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박명원과 노이점, 주명신의 기세에 눌려 반박하지 못하고 깨진 기왓장이나 똥거름 같은 하찮은 것에도 볼 것이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던 박지원은 스스로를 하사로 자청하고 있다. 배청숭명(背淸崇明)을 주장했던 노이점과 북학을 주장했던 박지원은 청나라가 가장 정점에 있던 시기에 북경에 가서 각각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청나라를 보았다. 박지원은 노이점을 통하여 자신의 북학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노이점을 통해서 당시 사행단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다. 노이점이 직급은 높지 않았지만, 명분을 앞세워 분위기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4. 여행 도중 박지원은 노이점의 모습을 묘사했고, 반면 노이점은 박지원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노이점은 61세로 정사 박명원의 비장이었고, 박지원은 정사의 삼종동생으로 공식 직함은 자제군관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 같이 정사 주변에 있었다. 노이점은 기실(記室)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아 청나라 관원에게 보내는 공식문서를 작성할 때 참석하여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 노이점은 박지원의 모습을 관중(管仲)에 비유하였고, 박지원이 서양금을 연주하면서 사람들에게 노래하게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박지원이 지구가 둥글고 돈다고 말하니, 노이점은 주자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고 한 말로 극구 반대하며 논쟁을 벌였지만 박지원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박지원이 과거를 포기했을 당시의 심정과 중국에 온 소회를 듣고, 박지원에게 「서관문답서」라는 글을 써 준다. 박지원도 노이점의 이모저모를 『열하일기』에 자주 언급하고 있다. 6월 24일 환갑도 넘어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멋쩍어 하는 노이점, 심양의 숙소에서 정사와 이야기 하러 가는 노이점, 야계둔에서 우박을 맞고 공포에 떨던 노이점, 북경에서 함께 황금대에 갔다가 실망한 노이점을 『열하일기』 곳곳에 펼쳐 보이고 있다.
5. 번역물 『열하일기와의 만남 그리고 엇갈림-수사록』에는 6월 24일부터 9월 16일까지 날마다 ‘열하일기 해설’을 첨가하여 『수사록』과 『열하일기』의 내용을 함께 비교했다. 단순한 비교라기보다는 『열하일기』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 내용을 풀이하여 제공하고 있다. 방대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일기체 부분의 『열하일기』는 단번에 읽기 힘들지만 이 해설을 보면 『열하일기』의 대략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북경으로 가는 길에 박지원이 사신의 행차보다 앞서서 아침 일찍 출발하였는데, 노이점은 사신의 행차와 함께 박지원의 뒤에서 따라갔다. 이 때문에 박지원이 사신의 행차보다 앞에서 본 것과 들은 것을 기록하였다면 노이점은 사신의 일행과 함께 뒤에 따라가면서 기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함께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북경에서다. 이상 이야기를 종합하여 본다면, 『열하일기』를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사록』을 보아야 하고, 반대로 『수사록』을 흥미롭게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열하일기』를 읽어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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