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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게시판 스크랩 산삼회 대마도 여행(2010.10.6-7)
지호지조 추천 0 조회 237 10.10.09 09:39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산삼회 제286차 산행기(대마도 여행-2010.10.6-7)

2010.10.6.08:00부산 국제여객 터미널에 산삼회원 20명이 모였다.

김갑석부부, 백의인부부, 박세주부부, 조정무부부. 차무언부부

김영복, 최차랑, 김호홍, 안영원, 이규상, 이유성, 정상조, 조우제, 김상웅,유송자, 하진숙. 이상 21명.

출국수속후 09:30에 seaflower호를 1등석에 타고 출발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 현[長崎縣]에 속한 열도로 한반도에서 59.5km거리, 총면적 705㎢,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한 섬으로 제주도의 약 2/5의 크기, 인구는 수년 전까지는 약 4만이라 했으나 근래는 점점 줄어 지금은 약 3만5천이라 한다.

일본과 한국을 가르는 대한해협에 있다. 5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졌으며, 가미아가타[上縣]와 시모아가타[下縣]가 가장 큰 섬이다.

주요도시는 행정 중심지인 이즈하라[嚴原]와 게치[鷄知]이며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지금도 곳곳에 진주 양식장이 보였으며 진주양식이 왕성할 때는 인구가 7-8만명에 달했으나 젊은이들이 힘드는 양식업에 종사하지 않으려 해서 현재는 사양산업이라고 한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창조신들이 쓰시마를 일본 최초의 섬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열도는 역사상 한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세기에서 1868년까지 이 열도는 다이묘[大名] 소씨[宗氏]의 봉토였다. 1274, 1281년에 몽골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주민들이 대량 학살당했다. 러시아는 1861년에 이 지역의 토지사용권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으며, 1905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쓰시마 해전에서 패했다.  

부산항에서는 하늘에 약간의 구름이 끼었으나 바람을 거의 없고 파도도 없어 보여 편안한 항해가 예상되었다.

오륙도를 지나고 태종대를 지나니 파도가 점점 심해진다. 선내방송도 파도로 인해 배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이를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파도는 강해지고 배의 몸부림은 심해져 몇몇 사람은 심한 멀미를 겪기도 한다.

배는 출항 약 2시간 50분 후인 12시 20분에 이즈하라(엄原)항에 도착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정시간이 되어도 배는 섬을 오른쪽에 멀리 두고 남행만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오면서 요기를 제대로 못한 분들이 대부분인 우리 회원님들의 배는 시장기를 심히 느끼고 있었다.

12시를 월씬 넘어서자 13시에 도착할 것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우리 가이드는 도착시간이 늦어 예정된 현지식 대신이라며 김밥도시락 1개씩 나누어준다.

오후 1시 우리는 이즈하라항에 도착하였다.

이즈하라항은 작은 시골 항구 같았다. 그러나 대마도 전체인구 3만5천 중 그 1/3이 넘는 1만2천 명이 산다고 하니 상당이 중요한 항구임을 알 수 있었다. 시가는 잘 정비되어 있었으나 도로가 협소하여 버스를 이용할 수 없어 우리는 도보로 시내 곳곳을 관광하였다. 최익현 선생 기념비가 있는 수선사, 옛 일본 무사의 집, 등등을 둘러보고 죽부(竹敷)라는 곳에 있는 숙소 대마리조트(☎0920-54-2552)로 향했다.

엉크러진 실타래보다 더 꼬불꼬불한 해안을 호수보다 자그마하고 더 아름답고 더 잔잔하고 더 깨끗한 해안을 보며, 아름다운 자연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천천히 달려 대마리조트에 도착하니 조금 남아있는 햇살에 바닷물은 더 푸르고 잔잔하였다.

배정 받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창밖으로 나와 사진을 한 컷씩 찍어댄다.

저녁은 모두가 야외의 한 자리에 모여 가리비조개와 새우 오징어 등의 해산물과 돼지고기 등을 4인 1조로 한 접시씩 숯불구이를 해 먹었다.

각자가 휴대한 소주를 몇 잔 씩 나누어 마시고 주기가 얼큰해 질 무렵 나온 술이 다 떨어자니 방구는 질나고 보리 양식은 떨어지는 꼴이 되었다. 애주가들의 아쉬움이 빈 잔에 차오를 때마다 조정무회원이 “술 여기 있다”하면서 마술가들이 물건 끄집어 내듯 소주를 한병씩 뒤쪽에서 차례로 꺼낸다. 그러는 사이 숯불도 사그러지고 고요 속에 밤도 깊어졌다.

“내일은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에 밥먹고 8시에 출발합니다.”이건 가이드 말.

아침 식전에 둘러본 숙소 근처의 바다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줄지어 헤엄쳐 다니고 해안 축대에는 굴이 무수히 자라고 있었다.

주위의 산에는 숲이 울창하여 원시림이라 할 만 하였고 등산 흉내라도 내어볼려고 했으나 올라가는 길이 전혀 없었다. 대마도의 산 전체가 이런 모습이었다. 큰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이 파도에 시달려 사방이 깎여 절벽이 되었고 그 절벽의 틈에 생긴 조그만 평지에 사람이 모여 작은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으니 절벽처럼 생긴 산에 들어갈 수도 들어갈 일도 없었을 것이니 숲이 울창한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아침은 된장국에 고등어 한 도막으로 된 정식, 당뇨환자에겐 딱 맞는 식사라 생각되었다.

식사후 이즈하라로 되돌아 가 어제 다못한 관광을 하였다.

대마역사자료관에선 조선통신사 기념비와 고려문 등을, 십팔만궁신사를 보고, 덕혜옹주결혼기념비도 보았다. 100엔?이라 쓰인 대형 할인마트에 들어가 여성들이 쇼핑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하천가의 난간에 걸터 않자 쉬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대마도의 도로는 절벽에 가까운 산비탈에 만든 길이므로 평지에서도 좁아 차량 두 대가 교행하기 힘들어 속도는 최고 50km정도라고 한다. 그 길을 우리는 조금도 훼손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 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해안의 섬과 만의 기막힌 조화에 감탄하며 서행하였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대마도는 남북으로 82km, 도로의 길이는 약90km라고 한다.

대마도란 이름은 남북으로 2마리의 말이 對하고 있는 듯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는 일본보다 더 깊은 관계를 가졌던 우리 조상이 지은 이름이다. 이 두 마리 말의 사이 부분이 아주 좁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서 배의 통행에 지장이 막심하였다. 그래서 둥근 통나무를 굴림대로 이용하여 배를 육지로 운반하여 저쪽 바다로 이동하곤 하였으나 지금은 파나마운하처럼 섬 중간을 파내어 운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끊어진 상-하 두 섬을 이은 다리를 만관교(萬關橋)라고 한다. 우리의 좌파들이나 환경운동가라는 탈을 쓴 빨갱이들이 이 시대에 있었더라면 아마 섬 양쪽의 어류는 서로 싸워 멸종하고 해조류는 유전자가 뒤섞여 괴물이 탄생한다는 등의 논리로 반대했을지도....

또 이 만관교 옆에는 석옥근(石屋根)이란 집이 있어 지붕을 덮은 널빤지 같은 것이 나무판자 인줄 알았으나 설명을 들으니 돌이라 한다. 우리 한옥의 구들장으로 쓰던 석판을 지붕으로 쓴 것이다.

오모자악(烏帽子岳) 전망대는 도로에서 60여 m의 좁은 계단 길 위에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 본 바다와 섬들의 모습은 물에 깊이 잠긴 하롱베이나 계림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곳들은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크기과 넓이를 가지고 있지만 이곳의 섬들은 그렇지 않으니 더 아름다워 보인다. 노일전쟁 때 이 灣속에 숨어 편히 쉬며 만전을 기하던 일본군이 케이프타운을 돌아 멀고 긴 항해에 지친 소련군을 기습하였으니....

가이드(이정원)는 일어를 전공하기 위하여 2년 반 동안 도쿄에서 유학을 하면서 일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서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유창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도 지칠 줄 아른 여인었다.

그녀가 잠시 쉬는 사이에 마이크를 확보한 우리의 호프 적송여사는 쉼없이 우리들의 웃음을 짜내어 가이드까지도 배꼽을 잡게 만들었고 춘성도 거들었다.

 

그 중 한가지

어느 곳의 한라아파트 어느 집에 수도가 고장났다.

며느리가 출근하면서 수도사업소에 고장신고를 했다.

70대 할머니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한 참 있으니 전화가 왔다. 굵직한 남자 목소리로

 

전   화 : 여기 수도사업손데요.

            할랑기요?

할머니 : 내캉?

전   화 : 물이 안 나온다면서요?

할머니 : 니가 그걸 어찌 아노?

전   화 : 며느리가 가르쳐주데요.

할머니 : 그것꺼정 알려주더나?        

 

인근의 어느 식당에서 일본식 우동과 깁밥 3쪽으로 점심을 때웠다. 부족감을 느낀 회원들이 우동 몇가락 더 달라하니 국물만을 작은 커피포트에 담아와 찔끔씩 딸아줘도 몇 사람만 받고 끝, 

화다도미신사(和多都美神社)를 둘러보았다. 일본 전설에 따른 것이지만 5개의 도리이가 일직선으로 바다에까지 서 잇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대마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한국전망대에 올랐다. 날씨도 맑고 공기도 맑아서 인지 부산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해운대 장산 달맞이 고개, 해운대 불난 아파트, 백운포 SK아파트, 조도 등을 분명히 보였다. 이 곳 사람들은 광안리 불꽃축제는 이 전망대에 모여서 본다고 하며 그 날짜까지 묻더라고 한다.

이어서 남성들은 대부분 온천욕을 즐기고 여성들은 버스기사의 도움으로 쇼핑을 하러 갔다. 그 사이에 자그만하고 조용한 해수욕장(三宇田海水浴場?)가에서 잠시 쉬었다.

예정된 관광을 모두 마친 일행은 대마도 북단의 히타카츠 터미널로 이동하여 16:00에 고향을 향해 출발하였고 갈 때완 달리 조용한 바다를 달린 드림플라워호는 예정된 정시인 17:30분경에 부산항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의 3층 식당에서 정식에 곁들어 술잔을 부딪히며 그 동안 쌓인 정을 더욱 다졌다.

좋은 여행을 기획한 김길부 전임회장, 김영복-김민남 현 회장단, 항상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적 류송자씨와 춘성 이유성씨, 옛친구들의 얼굴이 보고싶어 천리길을 달려온 하진숙여사와 안영원씨, 그리고 모두의 좋은 분위기 조성과 즐거운 여행을 위해 숨을 노력을 아끼지 않은 모든 회원님들에 감사드리며, 갑작스런 날짜 변경으로 부득이 불참한 회원님들계도 서운한 마음과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끝

<여행기를 쓸 계획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회장님의 요청으로 갑자기 쓰게 되어 부정확하고 부실한 점이 많을 것이나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호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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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10 10:21

    첫댓글 1박2일 대마도 여행 축하합니다. 여독이 체 풀리기도 전에 대마도의 자연경관, 역사적 이야기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관찰 조사 기록한 정성에 찬사를 보냅니다. 특히 배경음악이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물이 말라 불편한 시어머니의 고충을 수도과에 신고한 적송 류송자의 이야기도 흥미를 배가했습니다.

  • 10.10.10 11:34

    난곡선생의 대마도 기행을 아내와 외손녀와 함께 다시 한번 여행하듯 잘 보았습니다. 멋진 사진과 자세한 설명은 여행의 즐거움을 한결 더 높였습니다. 수고 너무 하셨고...감사,....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친구들의 돈독한 정도 다시 한 번 느낌니다. 친구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제이.........

  • 10.10.10 13:07

    갑자기 쓴 여행기 너무 우수합니다. 몇년전 여동기들이 대마도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기억을 살려 여행기를 읽었습니다.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의 주인공 최익현의 기념비는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역사 현장이지요. 오랫만에 동기여행에 참가한 하진숙 친구 반갑습니다. 류송자 친구의 입담도 재미있었겠네요. 그리고 사모님들 전에 일본 갔을 때 보다 더 젊어진 듯 하네요. 활짝 웃는 동기들의 모습이 건강한 미래를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지호지조님 여행기 사진 올리느라 수고 많았어요.

  • 작성자 10.10.10 20:35

    여러 동기님들의 칭찬 고맙습니다. 좀 부정확하고 부실하더라도 여행기를 작성하여 남겨두는 것은 여러가지로 좋은 점이 많더군요. 개인적으로도 점점 쇠퇴해 가는 두뇌 능력을 유지하는 데도 큰 의의가 있구요. 그런 의미에다 회장님의 요청도 있고 해서 시작했는데....70견으로 팔도 아프고 해서... 여하튼 친구들의 칭찬이 고맙습니다.

  • 10.10.11 11:09

    컴이 고장 나서 늦게서야 여행기를 읽었어요. 재미있고 배울게 많군요. 수고 많이 하셨소이다.

  • 작성자 10.10.17 17:40

    저의 부족한 여행기를 읽어 주신 여러 동기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신데 대해 의아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지금 이 시각 조회수가 133이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러가지로 부실한 여행기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는지 ....? 아마 적송선생의 유모어를 재탕 삼탕으로 읽고 외우고 하신다고 .... 여하튼 감사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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