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모신파(鮮侔晨葩)
곱기가 새벽 꽃과 똑같다는 뜻으로 고결함을 나타내는 최고 찬사의 의미를 이르는 말이다.
鮮 : 고울 선(魚/6)
侔 : 가지런할 모(亻/6)
晨 : 새벽 신(日/7)
葩 : 꽃 파(艹/9)
글씨도 글씨지만 적힌 내용에서 쓴 사람의 학문과 품격을 만날 때 더 반갑다. 어떤 작품은 필획에 앞서 글귀로 먼저 진안(眞贋)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추사의 '선모신파(鮮侔晨葩)' 현판을 보았을 때 그랬다.
이 구절은 진(晉)나라 속석(束皙)의 '보망시(補亡詩)' 연작 중 '백화(白華)' 시의 제3연에 들어있다. "백화의 검은 뿌리, 언덕 굽이 곁에 있네. 당당한 아가씨는 꾀함 없고 욕심 없어. 새벽 꽃처럼 고와, 더럽힘 입지 않네."
白華玄足, 在丘之曲.
堂堂處子, 無營無欲.
鮮侔晨葩, 莫之點辱.
신파(晨葩)는 이른 새벽에 이슬 맞고 피어난 꽃이다. 모(侔)는 본받다, 가지런하다의 뜻이다. 글자로 풀면 곱기가 새벽 꽃과 똑같다는 의미다.
이슬에 젖어 갓 피어난 언덕 모롱이의 꽃을 보고, 욕심도 없고 속셈을 모르는 천진한 처녀의 순결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에게는 조금의 더러움도 범접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앞쪽 제2연은 멋진 선비에 관한 노래다. "백화 붉은 꽃받침은, 언덕의 모퉁이에. 어여쁜 선비님은 흙탕에도 물들잖네. 정성과 공경 다해, 힘써 노고(勞苦) 잊는구나."
白華絳趺, 在陵之陬.
倩倩士子, 涅而不渝.
竭誠盡敬, 亹亹忘劬.
붉은 꽃받침을 단 흰 꽃이 언덕 모퉁이에 피었다. 멋진 선비가 진흙탕 속에서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진심의 사람이어서 부지런히 힘을 쏟아 공부하고 일하면서도 힘든 줄을 모른다.
한종규(韓宗揆)는 권두경(權斗經)을 애도한 만사에서 이렇게 썼다. "유곡(酉谷)의 새벽 꽃 깨끗도 하니, 이 노인의 맑은 기운 모인 것일세. 회포는 환하기가 옥과 같았고, 문채는 빛남이 용과 같았네."
酉谷晨葩潔, 斯翁淑氣鍾.
襟期瑩似玉, 文采燁如龍.
이렇듯 새벽 꽃 같다는 말은 고결함을 나타내는 최고 찬사다.
긴 밤을 지새우고 이슬에 함초롬 젖어 꽃망울이 부픈다. 티끌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질 것만 같다. 발 아래 세상이 아무리 진창이어도 그를 더럽히지는 못할 것이다. 추사는 이 글씨를 써주면서 글씨를 받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 鮮(고울 선/생선 선)은 ❶회의문자로 鲜(선), 鱻(선)은 동자(同字)이다. 부드러운 양고기(羊)처럼 맛있는 물고기(魚)는 싱싱하다는 뜻을 합(合)하여 '곱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鮮자는 '곱다'나 '선명하다', '싱싱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鮮자는 魚(물고기 어)자와 羊(양 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鮮자는 羊자가 아닌 羴(누린내 전)자가 쓰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鮮자에 대해 "선(鮮)이란 물고기 이름인데 맥(貉)국에서 나온다. 어(魚)와 전(羴)은 모두 의미 부분이며 발음 부분은 생략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羴자가 '냄새'를 뜻하고 魚자가 '생선'과 관련된 글자임을 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鮮자는 본래 '물고기'의 한 종류를 뜻하다가 후에 '신선한 생선' 즉 '살아있는 생선'을 뜻하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확대되어 '깨끗하다', '선명하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鮮(선)은 성(姓)의 하나로 ①곱다 ②빛나다 ③선명(鮮明)하다 ④깨끗하다 ⑤새롭다 ⑥싱싱하다 ⑦좋다 ⑧적다 ⑨드물다 ⑩생선(生鮮: 가공하지 않은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 ⑪날것(익히지 않은 것) ⑫물고기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울 연(姸), 고울 선(嬋), 고울 진(縝), 고울 염(艶), 고울 려(麗)이다. 용례로는 산뜻하고 뚜렷함이나 깨끗하고 밝음을 선명(鮮明), 생생하고 새빨간 피를 선혈(鮮血), 채소나 생선 따위의 신선한 정도를 선도(鮮度), 산뜻하고 깨끗함을 선결(鮮潔), 선명하고 아름다움을 선미(鮮美), 품질이 좋은 쌀을 선미(鮮米), 날고기 조각을 선자(鮮胾), 곱게 단장함을 선장(鮮粧), 새로 모임을 선집(鮮集), 산뜻하고 묘함을 선묘(鮮妙), 신선한 맛을 선미(鮮味),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선민(鮮民), 산뜻한 빛을 선색(鮮色), 생선 반찬이 곁들인 밥을 선식(鮮食), 신선한 물고기를 선어(鮮魚), 아름다운 구름을 선운(鮮雲), 신선한 고기를 선육(鮮肉), 선명하고 아름다운 옷을 선의(鮮衣), 싱싱한 야채나 신선한 채소를 선채(鮮菜), 갓 잡은 신선한 명태를 선태(鮮太), 신선하여 좋음 또는 선명하여 아름다움을 선호(鮮好), 산뜻하고 고운 빛깔의 꽃을 선화(鮮花), 선명하고 화려함을 선화(鮮華), 채소나 생선 따위가 싱싱함을 신선(新鮮), 말리거나 절이지 않은 물에서 잡아 낸 그대로의 물고기를 생선(生鮮), 살지고 싱싱한 고기나 생선을 비선(肥鮮), 한 자 가량 크기의 생선을 척선(尺鮮), 물좋은 생선을 미선(美鮮), 꿩과 생선을 치선(雉鮮), 말리거나 절이지 아니한 물고기를 어선(魚鮮),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라는 말을 약팽소선(若烹小鮮), 자주 대하니 신선함이 없다는 뜻으로 너무 자주 보아 전혀 새롭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누견불선(屢見不鮮) 등에 쓰인다.
▶️ 侔(가지런할 모)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牟(모)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侔(가지런할 모)는 ①가지런하다 ②힘쓰다 ③취하다(取--) ④따르다 ⑤같다 ⑥꾀하다 ⑦벌레의 이름 ⑧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수준이나 정도가 서로 어지간하게 같음을 상모(相侔), 곱기가 새벽 꽃과 똑같다는 뜻으로 고결함을 나타내는 최고 찬사의 의미를 이르는 말을 선모신파(鮮侔晨葩) 등에 쓰인다.
▶️ 晨(새벽 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일(日; 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辰(신, 진)으로 이루어졌다. 별의 이름으로, 이 별은 농사를 알리는 별이라고 한다. ❷회의문자로 晨자는 ‘새벽’이나 ‘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晨자는 日(해 일)자와 辰(때 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辰자는 풀을 베는 도구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晨자를 보면 艸(풀 초)자에 辰자가 결합해 있거나 또는 양손에 辰자를 쥐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이른 새벽에 낫으로 풀이나 벼를 베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소전에서는 양손에 낫을 들고 있던 모습이 日자로 바뀌어 이것이 시간과 관련된 글자임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晨(신)은 ①새벽 ②때, 시일(時日) ③진시(辰時) ④별의 이름 ⑤새벽을 알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새벽 흔(昕), 새벽 효(曉), 새벽 서(曙)이다. 용례로는 샛별로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금성을 이르는 말을 신성(晨星), 아침의 햇빛을 신광(晨光), 새벽녘으로 날이 샐 무렵을 신명(晨明), 이른 아침에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를 살핌을 신성(晨省), 아침 해가 솟는 쪽의 산 곧 동쪽의 산을 신악(晨岳), 새벽을 알리는 닭을 신계(晨鷄), 새벽에 일어남을 신기(晨起), 새벽에 성문 여는 일을 맡은 문지기를 신문(晨門), 아침과 저녁을 신석(晨夕), 새벽과 밤을 신야(晨夜), 이른 아침을 신조(晨朝), 새벽에 치는 종을 신종(晨鐘), 아침으로 날이 새면서 오전 반나절쯤까지의 동안을 신단(晨旦), 이른 아침에 사당에 뵙는 일을 신알(晨謁), 식전에 하는 화장을 신장(晨粧), 새벽과 황혼을 신혼(晨昏), 날마다 새벽녘이면 설사가 나는 병을 신설(晨泄), 맑은 첫새벽을 청신(淸晨), 먼동이 트려 할 무렵을 효신(曉晨), 닭이 새벽을 알림을 계신(鷄晨), 서리가 내린 추운 아침을 상신(霜晨), 꽃이 핀 아침을 화신(花晨), 먼동이 트는 이른 새벽을 등신(登晨), 날이 밝아올 때를 영신(迎晨), 이른 아침을 조신(早晨), 이른 아침에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 동안의 안후를 살피는 예절을 신성지례(晨省之禮), 아침 일찍이 관청에 들어가고 밤늦게 퇴근함을 신입야출(晨入夜出), 아침 일찍 출사하고 밤늦게 귀가함을 신입야귀(晨入夜歸), 굶주린 새벽 호랑이와 같은 맹렬한 기세를 신호지세(晨虎之勢), 암탉이 새벽에 우는 일을 맡았다는 뜻으로 아내가 남편의 할 일을 가로 막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함을 비꼬아 이르는 말을 빈계사신(牝鷄司晨),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자식이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을 이르는 말을 혼정신성(昏定晨省) 등에 쓰인다.
▶️ 葩(꽃 파)는 苩(파)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皅(파)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葩(꽃 파)는 ①꽃 ②화려하다(華麗--)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서리가 내릴 때에 핀 꽃이라는 뜻으로 국화를 이르는 말을 상파(霜葩), 곱기가 새벽 꽃과 똑같다는 뜻으로 고결함을 나타내는 최고 찬사의 의미를 이르는 말을 선모신파(鮮侔晨葩)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