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촛대 (외 1편)
박미라
불에서 태어난 나비가 촛불에 앉았다
이미 나비가 되었으므로, 더 무엇을 빌어야 하나, 궁리 깊은 듯한데
우선은 제 몫의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이번 생에서는 접지 않을 날개를 탁본 중이다
달아오른다고 모두 타오르는 것은 아닐 테지만
사실은 세상이 눈치 채지 못할 날갯짓으로 촛불은 일렁이고 어쩌면 좋겠느냐고, 함께 흔들리는 창밖 오동나무 그림자에게 언제고 한 번은 네게 날아가 앉아보겠다고 없는 입술을 깨무는 나비를
굳이 믿고 싶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옮겨 적은 죄를 묻겠다는 것인가 흔들리는 촛불이 뜨거운 나비를 운다
동굴
아주 어릴 적에 빈 항아리 속에 내 목소리를 가두며 놀았는데 그때 몇 마리 풀거미가 항아리를 빠져나갔는데
내가 빈 항아리처럼 텅텅 비었을 때 하늘 쪽으로 우우우우 빈 울음을 내보내다가 빈 항아리네, 툭툭 치면서 지나가거나 까닭 없이 휙 돌려보는 손이 있을 때면 풀거미 생각이 나곤 했는데
그렇게 떠난 풀거미를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눌러 살 것도 아니면서 항아리 가득 목소리를 가두던 그 일은 미안하게 되었다고 혼자서 중얼거려 보기도 하는데
바늘 끝만큼도 빈틈없이 쟁여둔 목소리가 자꾸 가랑비 소리를 흉내 내는데
내 저장 강박의 품목은 하나뿐이지만 그만하면 비루하게 산 것은 아니어서
이미 있는 것들을 없다고 여기거나 내 것이라고 우기면서
동굴 속에서도 고슬고슬 마르는 적막에 손을 적신다
제18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작 중에서 ―계간 《시산맥》 2023년 가을호 ------------------------ 박미라 /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서 있는 바람을 만나고 싶다』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안개 부족』 『우리 집에 왜 왔니』 『이것은 어떤 감옥의 평면도이다』 『울음을 불러내어 밤새 놀았다』 『비긋는 저녁에 도착할 수 있을까』, 수필집『그리운 것은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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