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학교를 다니던 안동군 북후면 물한동(그래서 양평 수석 고문관은 내이름이 "물한동 촌놈"이란다)에서 약 10리를 무명 바지저고리에 책보자기를 에깨에 메고 신작로를 따라 6년을 걸었다니 !
6.25사변이 나고 길가에 죽은사람의 임시묘가 으시시한 고갯길을 혼자 넘어야할때는 간댕이가 덜덜덜.
그날따라 전쟁터로 가는 미군차량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는데 인도진(그땐 흑인을 그렇게 호칭)이 탄 짚차가
개천가에 널부러져, 함께가던 동무 셋이 밀고 어쩌고해서 빠져나오니 고맙다고 박스한개(씨 레이션)를 주기에
적당히 나누었는데 내겐 그 썬드리팩이 돌아와 열어보니 하얀 숱갈도 설탕도 알겠는데 그 요상하게 생긴 커피 패킷은 아무리 연구를 해도 무언지 몰라. 뜯어서 맛을 보면 쓰고 냄새는 아주 괞찮고--- 결국 버리고 말았지.그리고는 조상들이 하던데로 밥먹고 숭늉 마시고 무탈하게 잘 살아가는동안 커피란걸 마셔본 일이 없이 전차불이 번쩍 번쩍하는
서울에 (1960년 봄) 대학생이 되어 올라오니 그야말로 "아이고 할배요 안동 서문시장보다 큰 남대문 시장이 있데예"숙식도 해결하고 푼돈도 벌려고 중구 필동의 부잣집에 가정교사란걸 했는데,아침마다 일어나면 모닝커피라는걸
부엌 아줌마가 대령했는데 그때만 해도 난 달걀 노른자만 건져먹고 커피는 슬그머니 버리는 순 토종 촌놈이였지.
해병대 사관 후보생이 되어 진해 시내의 다방에서 다방아가씨와 수작을 할려면 우선 그 커피란걸 사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거의 모두 가짜 엉터리 커피였는데-----
포항에서 소대장 1년 남짓하곤 월남 캄란만에 도착.우리중대 선임하사 백상사는 배부된 식재료 비 레이숀을 포항에서 가져온 무쇠솥에 그 큰 깡통모두를 열어 솥에 쏟아붓고 끓이니 그속에 물론 커피도 몇통이 들어 갔지.
당장 정찰을 나가면 씨레이션을 분배 받았는데 이젠 커피의 개념이 선지라 켄틴컵에 물을 붓고 커피를 넣어 벌컥
벌컥 마셔대니,이것이 물한동 촌놈이 미 제국주의에 물들어가는 단초가 될줄이야 !
1년반을 그곳에서 지내고 다시 포항엘 오니 천지사방에 다방이 널려 있어,그곳을 경유하지 않고는 인간관계 자체가
이루어 지지 않을 정도 이며 공짜 통일호를 타고 서울의 아가씨를 만나면 우선 그 다방이란곳에서 은밀한 역사가
시작 되었나 본다.
이제 난 커피에게 항복한 老仙이랄지: 15마일의 하이웨이 출근길 아침에 그 지긋지긋(?)한 던킨 미디엄 싸이즈를
홀짝이며 운전대에 앉은 꼬락서니가 더러 애처롭지만 행복하다.즉 싫든 좋든 어설픈 미국놈으로 아니면 Marginal
People로 커피에 쩔어 살고 있나보다. 5천원짜리 우동을 먹고 2만원짜리 스타 벅 커피를 들고 다니는 골빈 인간을
더 이상 비웃지 못하겠다.커피 이름도 요상해서 뭐가 뭔지 난 도저히 햇갈려. 지난번 서울에 갔더니 내가 마시는
커피는 이름이 "아메리카노"란다. 아 ! 커피는 나의 목자.나의 영혼 아쉬울것 없도다 파아란 풀밭에 이몸 뉘어 주시고---
그런데 드디어 그 치명타가 나타나니, 동기생 여러분 ! 커피를 나처럼 무턱데고 마시면 골다공증 관절염이 금새
방문한다니 부디 주의 하시라고 여지껏 넉두리를 나열했소. 카페인이 뼈를 푸석푸석하게 하며 우리 나이에 뼈가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큰 문제에 봉착합니다.튼튼한 팔 다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커피를 자제해야할듯.
강 거 사
첫댓글 나도 1980년대 초까지만해도 커피를 머그잔으로 마셔야 '커피마신것같다'할정도의 커피광?이였는데 요즘엔 자판기커피 두잔만 먹으면 밤잠을 못잘정도로 ㅋㅋㅋ
커피도 건강한 사람이 마시는 거 아닝가요?
니도 그런경험 있지요. 6.25때 부산에서 작은아버지가 영도다리에서 잡혀 갔는데, 일년후 칼빈총과 씨레이선 가지고 유엔군이 되어 휴가차 집에 왔지요. 그때 봉지에 들은 새까만 가루를 입에 털어넣고 쓴맛 단단히 보았습니다. 그때 내생각은 코쟁이는 쓴맛도 단맛으로 아는가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