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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님은 "고 김경철님은 18일 금남로에서 공수에 끌려가신게 맞고,"라고 하시길래, 제가 병원으로 끌려갔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광주에서는 병원 후송을 "끌려간다"라고 말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이데아님이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혔다며 "그는 친구들과 점심식사 뒤 집으로 돌아오던 중 공수부대의 눈에 띄어 무차별 구타당했다. 부상당한 그는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으나"를
인용하셨습니다.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라면 종종 거짓말 지어내어 허위 주장하는 단체 맞는가요? 군 과거사위의
허위주장이 여기서 또 한번 들통나는군요. 군과거사위가 새로운 사실 밝혀낸 것이 아니라,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7.html 에 있는 자료를 근거로 또 하나의
픽션소설을 쓴 것뿐입니다. 제가 아래 일부 캡쳐해 드립니다.

명확한 사건 시간 확인을 위해 제가 몇 문장 인용해 드립니다:
<그날, 그러니까 80년 5월 20일 오전 10시께 전남 청각 장애자 복지회'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광주
적십자 병원 에세 그곳으로 '김형렬'이란 농아가 입원해 있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영안실이 어딘지도 모르고 물어서 찾어 갔지요. 근디 김형렬이란 사람이 어제 저녁에 죽어서 시체로 있다가
밤9시쯤 국군 통합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그럽 디다. 근디 이름은 틀린디 거기 사람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생김생김이 우리 아들하고 비슷 하드란
말이오.">
<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국군통합병원으로 달렸다. 차츰 내 아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김형렬'의 시신을 보여 달라는 어머니를 군인들은 면회소에 앉혀 놓고 기다 려라고만 했다. 며느리는 바싹바싹 타 들어가는
속마음에도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윽! 윽!'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쿨쩍 쿨쩍 흐느끼기만 했다. 그렇게 한시간이 가고 두 시간.
세시간이 지났다. 어머니는 종이 조각 팔락거리는 소리에도 불침이라도 맞은 듯 화들짝 놀랄 만큼 숨막히는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 있었다.
흐느끼던 며느리의 눈시울은 언새 퉁퉁 부어 올랐다.
"따라 오세요."
면회소에서 3시간 여를 기다리던 끝이었다.>
자, 이 증언대로라면 김경철군 유가족이 김경철군 사망을 확인한 시각은 5월 20일 오후였습니다.
여기서 정확한 시간 판정의 잣대는 "80년 5월 20일 오전 10시께 전남 청각 장애자 복지회'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입니다.
분명하게 객관적 사실은 전남 청각 장애자 복지회가 김경철군 집으로 오전 10시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 그리고 그날 오후 김경철군 사망이
확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때렸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즉, 김경철군을 광주 조폭이 때렸느냐, 시위대가 때렸느냐,
공수부대가 때렸느냐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공수부대가 때렸다는 군 과거사위의 주장은 오로지 위 사이트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7.html 에 있는 농아 박인갑씨의 주장에
의거합니다. 님이 인용하신 "그는 친구들과 점심식사 뒤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서 친구들이란
박인걸과 황종호를 말합니다.
자, 위 증언에서는 임금단씨가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귀가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은 21일 오후 4시였습니다.
그렇다면, 공수부대가 김경철을 때렷다고 주장한 박인갑이 김경철군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점도 그날 오후 4시 이후였습니다.
이것이 팩트입니다.
자, 김경철이 공수부대원에게 맞는 것을 보았다는 유일한 목격자는 박인갑입니다.
5.18측과 군과거사위는 오로지 이 사람의 주장에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5.18민주화유공자로
포함시키며 이 즈언을 하고 있는데, 몇가지 수상한 점이 있습니다. 아래 캡쳐해 드렸듯이 박인걸은 자신을 5.18시위에 동참한 유공자임을 나타내며 증언합니다.

그런데, 과연 박인걸이 시위에 참가하였을까요? 그가 시위에 정말로 참가하였느냐의 여부가 공수부대가
그를 때렸다는 그의 주장의 신빙성 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김경철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농아들도 거리에 나섰다." 김경철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때가
언제인가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그는 경철이가 의식을 잃은 채 트럭에 실려 광주천 쪽으로 실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경철이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1988년에야 5.18측 월간지에 그렇게
증언하였습니다. 20일 오후 4시 넘어 귀가한 김경철 군 어머니 임금단도 전혀 언급 안합니다. 설사 박인걸이 5월 20일 오후 4시 이후에 김경철군 사망 사실을 김경철군 가족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해도
그가 그 소식을 듣고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시외버스 공용 정류장으로 달려갈 수 있는 시간은 오후 5 시 이후입니다. 상식적으로
유가족을 찾아가 위로하는 것이 순서였을텐데요.
그런데, 5월 20일 오후에 그가 시위에 참가했다는 주장은 사실 성립이 불가능합니다. 그때 공수부대는
도청 분수대를 최후저지선으로 밀려 있었으니까요. 시외버스 공용 정류장에는 그날 군인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이데아님은 박인걸이 5월 19일 오후에 시위에 참가했다고 주장하시려 할지 모르는데요. 그런
주장 또한 불가능합니다. 시위대와 계엄군간에 시외버스 공용 정류장에서 충돌이 있었던 유일한 날은 5월 18일이었습니다. 5월 21일 정오까지 도청을 점령한다는 일정에 따라 5월 19일의 시위대 주 공격목표는 금남로였습니다. 더욱이, "김경철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농아들도 거리에 나섰다." 이 주장은 그가 5월 18일에 시위에
참가하였다는 주장이 불가능하게 합니다. 김경철군 사망일자를 5월 19일로 본다 하더라도 "김경철씨가 5월 19일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농아들도 그 하루 전인 5월 18일 거리에 나섰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니까요.
"우리는 장갑차 속으로 끌려 들어갔어요." 이 말 또한 거짓말이지요. 7공수에 무슨 장갑차가
있습니까? 그리고 시민군 장갑차가 시민들을 장갑차 속으로 끌어당기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군인들이 그렇게 한 적은 없었어요.
"어깨에 무궁화 하나를 단 군인이 쌍안경을 들고 진두 지휘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말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쟎아요. 7공수에서
장갑차 타고 시위진압 지휘한 소령이 있었습니까?
자, 박인걸이 이런 증언으로 어떤 포상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의 증언은 허위증언입니다.
확인되었지요? 인정하십니까? 박인걸이 시위에 참가하였다는 증언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럴진대 김경철군
가해자가 군인들이었다는 그의 증언은 결국 허위주장이었던 것입니다.
김경철군 사망 후에 자기가 시위에 참가했다는 박인걸의 위의 주장은 김경철군 사망 후에는 시외버스 공용 정류장에서
계엄군과 시위대가 충돌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허위주장임이 드러났는데요. 오후 3시나 4시경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상무대로
연행되었다는 증언 또한 거짓말입니다. 김대중의 인맥이었던 광주향토사단 사단장 정웅 소장이 7공수33, 35 대대에 시위자들을 상무대로
연행해 오라고 명령을 내린 시간은 오후 4시 40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연행이 가능했던 것은 오후 6시 이후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후 3시에 김경철군이 연행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성립이 불가능하고요. 정웅 소장 명령은 과격시위자들과 주동자들을 연행해 오라는
것이었지, 의식잃은 사람들을 연행에 오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무대가 무슨 병원입니까? 그 어느 지휘관이 의식잃은
사람들을 상무대로 연행해 갑니까? 5.18측 사주를 받은 박인걸이 픽션소설을 써서 오랫동안 국민을 속여왔지만, 그의 픽션소설은
사실성립이 도저히 불가능해요.
김경철군을 공수부대원이 죽였다는 주장은 결국 아무런 목격자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런 주장이
사기꾼들의 주장이었다면 이제 남은 가능성은 김경철군에 대한 가해자는 광주조폭이나 시위대였다는 것입니다.
자, 다음 주제로, "헬기 기총소사 유언비어"에 대한 주제로 넘어갑시다. HTML clipboard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2037.html
에 있는 흑색선전 " "헬리콥터의
기총소사로 온몸이 벌집이 되어 죽은 대학생이 있는가 하면"이 흑색선전이 아니라고 우기시는 이데아님이 이렇게 인용하셨습니다.
<* "도청 쪽에서 사직공원 쪽으로 이동하는 헬기에서 지축을 울리는 기관총소리와 불빛을 내는 것을 봤다. 헬기는 지상 1백30미터 정도의
높이로 날아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동교(불로동다리) 주변을 향해 쏘았다고 들었다." (구술 : 조비오, 현사연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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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뭣하러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기관총을 광주에 쏘겠는지. 급한건 광주사태를 진정시키는 길이었을텐데.
??.................!! 카톨릭신자 입니다..신부님들 참 순수하십니다..신부님이 뭘 아시겠어요..본대로 증언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조비오신부님은 군무기 체계를 모르셨다고 이해합니다..워낙 다수 신부님들이 주변에서 사기 많이 당하는 거 봐왔거든요..
저 역시 기독교 신자로서 성당에 즐겨갑니다. 카톨릭의 조비오 신부뿐만 아니라, 광주사태 이후 도시산업선교회 인명진 목사와 운동권 출신 김진홍 목사도 이상한 유언비어들을 많이 퍼뜨렸습니다. 진리 편에 서야 할 기독교 인사들이 앞장서서 유언비어를 퍼뜨렸기 때문에 제가 발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계 자성이 필요한 문제이니까요.
역사학도님과 이데아님의 토론..다시말해 누구도 하지 못하는 토론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진리를 믿으면서..좋은 하루 마무리 하시길 빕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상대가 이데아님같은 논객이라면 토론 자체에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의견이 다르면 말이 안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논리적 토론이 가능한 상대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며, 무엇보다도 그분에게서 무엇이 객관적인 사실인지를 확인하려는 진지함이 엿보이고 돋보였습니다.
아까 조비오 신부의 위증 동영상이 안올라 갔었군요. 미처 확인을 못했다가 이제 올려 놓았습니다.
신부님 신상이 의심스렵웠읍니다, 떼중이들 빨리처리 못한게 역사의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 선지자들 떄문에 월남이 패망한것을 생각해 볼떄 이 문제는 심각하다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 이자식들 정말 할 수만 있으면 탱크로 밀어서 포를 만들어 버렸으면 좋겠군요. / 북한으로 보내서 손좀 봐달라고 해야 될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러면 땅만 버리니까
주장한다는 그거 증언록 안들어가져요
출처 다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