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3.8.12.연중 제18주간 토요일 신명6,4-13 마태17,14ㄴ-20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삶
-믿음의 답이다-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시옵니다.”(시편18,2-3ㄱ)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새벽 성무일도 시편 136장 26절까지 매 구절마다 계속된 후렴이
마음을 환히 밝힙니다.
이런 자바하신 주님을 선택함이 행복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부정적 비관적 삶이 아닌 긍정적 낙관적 믿음의 삶을 선택하여 훈련하고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한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보다 더 좋은 수행은, 처방은 없습니다.
밤에 일어나 휴게실에 들렸다 다음 주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 1면 기사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신문 다 태극기 휘날리는 바탕에 “2027년 세계청년대회 한국 서울 개최”글자가 선명했고
기쁨에 환호하는 한국 가톨릭 젊은이들의 모습도 신선했습니다.
“아, 전쟁은 없겠구나!”
언뜻 스치는 안도감과 더불어 하느님이 보우하사 한반도의 평화도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도 들었습니다.
요즘 제 기도 1순위는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반갑고 기쁜 소식은 엊그제부터 사드 배치이후 끊겼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또한 한반도 평화에 희망의 징표가 됩니다. 압니까?
언제 교황님이 북한을 방문할지, 하느님 하시는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문득 떠오른 성가처럼 느껴지는 애국가 1절 첫연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가사 그대로 될 것입니다.
저의 믿음이자 우리 신자들의 믿음입니다.
믿어야 삽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살기위하여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야말로 인간 품위의 기초입니다.
믿음이 빠지면 남는 것은 천박한 삶에 무지와 허무뿐일 것입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믿음의 빛입니다.
도대체 믿음이 없다면 이 삭막한 광야 여정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살아갈수록 우리 삶의 여정에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과연 믿음의 여정과 더불어 날로 성장 성숙되어가는 믿음인지요?
기도와 회개와 더불어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은총이자 믿음의 선택이요, 믿음의 훈련이자 믿음의 습관화입니다.
절대로 값싼 믿음은 없습니다.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가 되어 평생 믿음의 훈련에 항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 긍정적이고 낙관적 삶입니다.
병의 치유에 약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긍정적 낙관적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기쁨,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어제 신문에서 읽은 3년간의 투병을 마치고 드디어 암세포 완치 판정을 받은 51세 장로교회 신자인
가수 윤도현의 고백입니다.
“지난 2021년 건강검진후 암이란 말을 듣게 되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시간이었다.
이제와서 굳이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겪어보니 암세포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더 위험한 것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긍정의 마음으로 부정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긍정의 힘은 바로 믿음의 힘이자 하느님의 힘입니다.
긍정의 마음보다, 희망과 기쁨, 찬미와 감사, 평화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백 낫습니다.
건강할 때부터 이런 긍정적 낙관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와 회개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믿음의 훈련, 믿음의 고백과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오늘 신명기의 “셔마(들어라)” 믿음의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도 그대로 바치는 믿음의 고백이요
기도문입니다.
우리는 토요일 끝기도시 독서때 읽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날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 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6,4-9)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모세를 통한 주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 입니다.
“들어라!” 경청과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잘 듣기 위한 침묵이요 잘 들어야 겸손에 순종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갈림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듯 매 수행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일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수행,
진인사대천명의 삶입니다.
평생 사랑의 훈련이요 사랑의 습관화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참삶입니다.
이런 사랑과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더불어 믿음도 깊어집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도 믿음입니다.
주님의 탄식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 세대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대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호통치시자 마귀가 나갔고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낫습니다.
제자들과 주님의 대화가 오늘 우리에게는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그대로 우리와 주님이 주고 받는 대화처럼 느껴집니다.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리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환상이나 거품이 걷힐 때 알짜 믿음은 얼마나 될까요?
탓할 것은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약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도약이나 비약, 첩경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결코 값싼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여정, 믿음의 훈련, 믿음의 전사라 했습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입니다.
그러니 우보천리(牛步千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우직하게, 한결같이 믿음으로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죽을 때까지 온 마음, 온 목숨,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듯 매 수행을 사랑하는 것이요
믿음의 훈련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영원히 믿음의 초보자일뿐입니다.
그러니 죽는 그날까지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로 초발심(初發心)의 자세로 늘 새롭게 시작할 뿐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다!
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
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시편18,47).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