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좌불와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고 하루 한 끼만 먹지는 않지만 잡다하게 먹지도 않는다. 특정한 삶의 방식 속에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깨달은 자는 이러해야한다는 그 어떤 틀도 없이 깨달은 자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 모든 틀 형식 격식 相 그 어디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운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수행자들은 스스로 수행자의 격식에 사로잡혀 특별한 수행자다운 모습을 조작해 만들어냄으로써 수행자다움을 보여주려고 애쓰곤 합니다.
잡념이 많으면 스스로 잡념이 없는 무심한 수행자가 되기 위해 잡념과 싸우고 화가 올라올 때는 화를 내는 것 보니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며 화를 없애려는 조작에 열을 올립니다. 화를 잘 없애야 훌륭한 수행자가 될 수 있는데 없애려고 해도 잘 없어지지 않는 화를 보면서 더욱더 화가 납니다. 완벽한 수행자가 되기 위한 모든 조작과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드시 실패합니다.
참된 수행이란 유위조작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주어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참된 수행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수행자는 화를 내면 안 돼. 참된 수행자는 아프면 안 돼. 수행자는 말투도 느릿해야 하고 걷는 것도 차분해야 하며 성격이 급해도 안 되고 예불과 사시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선 시간을 오래 버티는군 등등 우리는 저마다 무수한 수행자상에 갇혀 있습니다. 인도선의 제 10대 조사인 사야다. 존자는 과수 반두 존재가 늘 하루에 한 번만 식사하고 눕지 않았고 여섯 번 예불하고 성정하게 살면서 철저한 두 타임과 수행을 하여 많은 이의 귀를 받는다 것을 보고는 글을 제도하고자 이와 같이 설법 봤습니다. 두 타임과 훌륭한 수행으로 불도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런 수행은 도하머로 설사 보행을 수없는 동안 하더라도 모두가 허망할 뿐이다. 나는 도를 구하지 않지만 잘못된길로 가지도 않고 예보를 하지는 않으나 또한 예보를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나는 장자부라를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고 하루 한 끼만 먹지는 않지만 잡다하게 먹지도 않는다. 특정한 삶의 방식 속에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깨달은 자는 일해야 한다는 그 어떤 틀도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 모든 틀 형식 격식 상 그 어디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운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수행자들은 스스로 수행자의 격식에 사로잡혀 특별한 수행자다운 모습을 조작해 만들어 냄으로써 수행자 다음을 보여주려고 애쓰곤 합니다. 잡념이 많으면 스스로 잡념이 없는 무심한 수행자가 되기 위해 잠념과 싸우고 화가 올라올 때는 화를 내는 것 보니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며 화를 없애려는 조작에 열을 올립니다. 팔을 잘 없애야 훌륭한 수행자가 될 수 있는데 없애려고 해도 잘 없어지지 않는 화를 보면서 더욱더 화가 납니다. 완벽한 수행자가 되기 위한 모든 조작과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드시 실패합니다. 참된 수행이란 유의 조작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주어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