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사마리아를 비롯한 이방 민족에게 전파되는 동안 예루살렘에서는 여전히 사울이 살기가 등등하여 제자들을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더 열심을 내어서 다메섹이라는 먼 도시에 있는 신자들도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서 종교 재판을 받게 하려고 공문을 들고 다메섹으로 향했습니다(1-3). 다메섹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예수님은 찬란한 영광의 빛 가운데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왜 자기를 핍박하는 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핍박 받는 교회와 자신을 동일시 하십니다. 그리고 시내로 들어가면 사울이 해야 할 일을 알려줄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4-6). 예수님께서 이렇게 찬란한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 말씀하시는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나 어떤 일을 맡길 자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당신의 일을 맡길 사울에게 구약의 성부 하나님과 같이 나타나십니다. 이로써 당신께서 참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영광의 주님을 만난 사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시내 안으로 들어갑니다. 사울의 살기 등등했던 모습이 예수님 앞에서 순한 양과 같이 온순해 졌습니다. 이렇게 영광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의 죄를 보게 되고 그분 안에서 온순한 양이 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에게 사울에게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해주라고 합니다. 처음에 아나니아는 악명높은 사울을 알고 있었기에 거부하지만, 예수님은 사울이 특별히 부름 받은 자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십니다(10-17). 아나니아가 안수를 하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또 음식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다메섹에 있던 제자들과 교제를 합니다(19). 그후 즉시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이에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이 당황합니다(20-22).
다메섹에서 사울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고 전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날(약 3년)동안 다메섹과 주변 지역에서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이렇게 변한 사울을 유대인들이 잡아 죽이려고 하지만 그곳에 있던 제자들의 도움으로 다메섹에서 빠져나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여전히 악명 높았던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합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어떻게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했는지 설명합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교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고 변론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서도 사울의 목숨에 위협을 하는 자들이 생깁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 고향 다소가 가게 됩니다. 사울은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인 공동체와 있었습니다. 악명 높았던 사울의 변화와 예수님을 증거하는 변론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세워져 갔습니다(31).
누가는 이제 베드로의 사역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베드로도 복음을 전파하러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갔습니다. 그곳에서 중풍병으로 누워있는 애니아라는 자를 고쳐 줍니다. 이 일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많은 사람이 그녀의 병 나은 것을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32-35). 또 룻다 근처에 욥바라는 곳에 다비다(아람어)라는 여제자가 있었는데 헬라어로는 도르가(영양,Gazelle)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독자인 데오빌로가 아람어를 모르기에 헬라어로 번역해 줍니다.) 이 여제자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병이 들어 죽고 맙니다. 이에 욥바에 있던 다른 제자들이 베드로가 근처 룻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달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베드로가 그녀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를 무덤에 넣어 놓지 않고 다락 방에 뉘여 놓았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생전에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섬겼는지 과부들을 위해서 지은 일상복(속옷)과 외투(겉옷)을 보여줍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 하도록 도운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기도한 후에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앉았습니다. 이 모습은 마가복음 5장 41절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을 살리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는 오늘 “다비다굼”이라고 말합니다. 행동 뿐만 아니라 유사한 말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베드로에게도 전해진 것을 보여줍니다. 부활의 생명이 교회 공동체 안에 가시적으로 나타납니다. 온 욥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36-43).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사울의 회심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고, 부활의 주님과 만남이 사울을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기세 등등한 사울을 꺾으셨습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사울의 힘을 빼게 만드셨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도록 힘을 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의 힘을 빼고 그분께 순종하며 새로운 삶을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새롭게 태어난 예수님의 몸의 지체로서 홀로 있지 않고 다른 형제들과 교제 합니다. 그 교제 가운데서 어려움과 위기를 함께 이겨냅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또한 부활의 예수님은 헬라 문화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던 항구도시 룻다와 욥바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다비다도 살리십니다. 이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믿게 됩니다. 부활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또 참된 생명을 얻게 하고 공동체를 형성하게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의 주도권을 부활의 주님께 드립시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예수님께 맞춥시다. 성도들 서로를 세워가며 함께 공동체로 지어져 갑시다. 나아가 부활의 능력으로 주어진 새로운 생명을 이웃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