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 날다
하미정
당신은 오리의 감정을 입습니다
날기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옷장에 걸어 놓습니다
거울을 보고 서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얇아졌군요
당신의 등에서 삐져나온 깃털을 뽑아줍니다
소매가 더러워지기 전에 오염된 기분을 세탁기에 넣습니다
당신은 목도리의 표정을 걸어놓고 운 적도 있습니다
겨울은 불친절하고 불길합니다
방에서 나는 보온 되었습니다. 라는 문장을 하나 더 껴입습니다
겨울은 추운 당신의 주머니를 열고 자랍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차가운 말들이 뭉쳐집니다
구멍 난 대화에서 자꾸 빠져나가는 그는
날기 위해 날개를 움츠립니다
언니들이 엄마를 입는 동안 아버지는 얇아집니다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그때 당신은 왜 그리 가벼웠는지
터진 생활을 누비면 아버지는 두꺼워 질까요?
오늘, 채워진 지퍼를 내리는 순간
우리의 몸을 벗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패딩 하나를 보았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8월호 발표
하미정 시인
2020년 《무등일보》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제31회 전국한밭시조백일장 수상.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현재 대전시조시인협회 이사, 대전문인협회 회원.
[출처] 패딩 날다 - 하미정 ■ 웹진 시인광장 2 023년 8월호 신작시 □ 2023년 8월호 ㅣ 2023, August ㅡ 통호 172호 ㅣ Vol 172|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