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 하우스메이트의 ㅅ
“왜 저렇게 빨리 헤엄치는 거야?”
리반은 TV를 볼 때면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원래 빠른 생선이야. 저게 평균 속도일 걸.”
“떼를 지어 도망가는데?”
그 수다스러움은 프로그램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그 날처럼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리반은 이미 한 마리의 이름 모를 물고기가 되어있어서, 심해의 사방을 미주알고주알 내게 설명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로 화면은 수중의 한 면만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에게 보여 지지 않는 다른 다섯 공간을 리반이 상상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원래 떼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이 그냥, 돌아다니는 거야. 심심해서. 저긴 TV도 없고 책도, 게임 같은 것도 없으니까.”
“무시무시한 상어가 올까 봐 그러는 거야.”
바로 저기 있어, 하고 리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독초야. 먹으면 안 되는데…….”
“… 그냥 미역 같은데.”
나는 리반을 흘끗하고 쳐다보며 말했지만, 사실 리반에게 있어 내 대답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때 리반은 그 재빠른 물고기 떼 틈에서, 영상 밖에선 전혀 알 수 없는 카메라 뒤편의 상어로부터 도망치고 있었고,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불쌍한 나를 위해 마치 내레이터처럼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몹시 벅차보였다. 그의 조그마한 세상도, 그의 옆에 현실로서 앉아있는 나도, 내 대답도, 이미 그 자리에는 없던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졌다.
“앗! 어떡해, 뒤쳐졌어. 것 봐, 먹지 말랬지. 쫓아오는 상어에게 잡아먹히고 말 거야!”
리반은 눈을 반짝이며 희망차게 소리쳤지만, 이번 파트의 끝에도 결국 상어는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냥 갔나 봐.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그는 굉장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리반은 장을 볼 때에도 꽤나 골칫덩어리였다. 말도 안 되는 것들로 카트를 가득 채웠다가 키득거리며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기 일쑤여서 곤란한 나는 그를 찾아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빨빨 거려야 했다. 그러나 필요악이라고 할까, 2층에서 사라진 리반을 지하 1층에서 발견했을 때 난 무엇보다 뒤에서 그의 손목을 낚아채는 행위가 무척이나 좋았다. 또 리반은 시식 코너에서 한 번 먹은 음식을, 장보기가 끝나 계산할 무렵 다시 가서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우스꽝스럽게도, 다시 먹을 때 마다 그는 처음 먹은 것처럼 오묘한 제스처를 지어내었다.
“유진, 이것 봐. 새로운 방식으로 멸균했다나 봐. 유진도 한 번 먹어 볼래?”
“이건 뭐지? 즉석, 칼라,메어스, 프리토스…? 아, 칼라마레스 프리토스(Calamares Fritos). 그냥 ‘즉석 오징어 튀김’이라고 하면 되잖아. 멍청하긴!”
“웩! 이게 뭐야! 싸구려 소고기로 만든 게 분명해. 다시 먹고 싶지도 않아!”
또는 이상한 허세를 부리기도 했는데,
“음, 유진, 이건 아마존의 마니호트고무나무 열매 맛이랑 비슷해.”
그가 열대우림의 식물들에 푹 빠져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거 먹어본 적 없잖아.”
“… 꼭 이런 맛일 거야.”
난 알아, 하고 그는 다짐하듯 속삭였다.
리반은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어떤 것을 자주 상상했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래’ 혹은 ‘네 말이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시식 코너의 점원이 물론 이를 모르지 않았는데,
“좀 아까는 웰위치아 열매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면 리반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설계하여, 그가 안식하고자 하는 그만의 세상이 허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버리는 것이다. 가여운 리반.
풀이 죽은 리반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리고 그의 꿈을 통해 자신만의 또 다른 왕국을 세워갔고 또 그 속에 살았다.
“유진, 내가 오늘은 무슨 꿈을 꿨는지 궁금하지 않아?”
언젠가 저녁을 먹은 후 소파에 심심하게 누워있던 리반이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양 동물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세 번을 보더니 꽤 지쳤던 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깜빡했네!”
과장스러운 억양으로 거실을 향해 외치자 리반이 뭐라고 뭐라고 성 내는 소리가 들렸다. 모른 척, 부엌에서 럼? 진? 하고 큰 소리로 묻자, 그냥 당근 주스로 줘! 그의 목소리가 이번엔 또 꽤나 신나게 들렸다.
난 사자 인형을 안고 있는 리반에게 당근 주스를 내밀었다.
“꿈에서 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어. 그 마을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이 꼭꼭 숨겨져 있어. 뭐, 밖에 살던 고양이나 미어캣들이 숲을 통해 가끔 놀러 오긴 해. 또 시냇물에선 아기 상어들도 헤엄쳐서 몰래 들어오지.”
고양이와 미어캣, 아기 상어.
“마을이 왜 그렇게 숨겨져 있냐면, 대대로 우리 마을은 도깨비의 이빨을 갈아주는 직업이 있기 때문이야…….”
리반은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리반이 처음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사준 커다란 인형이었다. 밤에는 그의 베드메이트가 되고, 들판을 노니는 포유류에 매혹되었던 시절엔 리반의 베스트 프렌드였던. 나는 몹시 뿌듯했다.
“… 그래서 깜짝 놀라서 눈을 떴는데, 사자 인형이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어.”
뭐, 곧바로 구해줬지만. 리반은 정말로 십년감수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알거렸다. 사랑스러운 리반, 그의 입가엔 주황색 건더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유진?”
그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아…, 응. 안 무서웠어?”
“당연히 벌벌 떨렸어.”
“날 깨우지 그랬어.”
“그렇지만 결국 살아 돌아 왔잖아.”
결국 살아 돌아 왔잖아. 손에 쥔 럼을 들이키자 얼음이 바스락거렸다. 어떻게 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일은 없었을 텐데, 하고 나는 무거운 이질감을 느꼈다.
리반이 컵을 내 쪽으로 슬며시 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은 거 유진 다 먹어.”
“잘 거야?”
인형을 훽 하니 낚아채며,
“아니. 그냥, 여기 너무 더워서.”
단호하게 말했지만, 뻑뻑한 듯 눈을 연신 비벼대는 것을 보니 역시 졸린 눈치였다. 아무렴, 110분짜리 같은 영상을 세 번이나 봤는걸. 심지어 상어가 나오는 파트는 무려 여덟 번이나 돌려보았다.
“아침엔 토마토로 부탁해.”
다음날 아침 빨간 자국을 입가에 묻히고 있을 리반을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리반의 손에는 여전히 사자 인형이, 리반의 발꿈치를 따라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참, 물어볼 게 있는데,”
하고 나는 그를 불렀다.
“그 유모 말이야.”
리반이 방문을 열려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멈칫, 한 다음에 끼익. 정말로 내게로 향하는 그의 고개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 것처럼 느껴졌다.
“있잖아, 왜, 저번에 네가 이야기해 준―.”
“그게 뭐?”
짜증스러워 죽겠다는 목소리.
“그 유모, 남편이 있을까?”
나는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졸렸던 건지, 힘이 빠졌던 건지, 화가 났던 건지 그는 나를 도통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눈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다. 이게 뭐람, 럼이 너무 과했던가. 리반의 눈, 입, 옅은 웃음기가 스몄다. 나는 부끄러워져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 농담, 농담. 잘 자. 내일은 토마토 주스.
그러나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 뭐,”
―난 가끔,
“비슷한 게 있는 모양이야.”
난 가끔, 리반의 세상에 몰래 들어가고 싶어져 어쩐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곤 한다.
-있지, 다음에 또 꿈에서 유모를 만나면, 혹시 말 좀 전해 줄래?
때로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 같아서, 나를 헷갈리게도 그리고,
“내일은 토마토 주스, 맞지?”
그리고 슬프게도 한다.
잘 자, 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당신의 남편이 위험에 처해있어요!
근데 글에 티가 안 난다는게 함정. 흑흑
드디어 댓글이..
*토다이시 님 감사합니다!! 최고의 칭찬이자 응원입니다ㅠㅠ 이번 화도 저는 몹시 부끄러워요 언제나 그렇죠. 지켜봐 주시면 완결이고 뭐고 그냥 다 드릴거에요 하악하악 감사합니다!!
첫댓글 글 분위기도 그렇고 문체도 그렇고 굉장히 독특해요.
뭐랄까 일본 소설 분위기?ㅎㅎ 일본 소설을 몇 번 읽었는데 그 때의 느낌이랑 비슷하네요
이런 분위기 되게 좋아해요! 추천도 누르고 갈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