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립공원은 최소한 가 봐야지 않겠느냐,
암만 산에 안 다니는 사람이라 해도... 하면서 입이 쭈욱 나오는 아내에게
그람! 갑세다.
이렇게 해서 국립공원을 거의 다 돌아댕기게 되었다. 꼭짓점만 찍기보다는 종주 개념으로.
그러다가 하나 남은 것이 한라산이었는데 다음달 첫주로 일정이 잡혔다.
(그 사이에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등록되었으니 거긴 또 원제 가나? ^^)
하여튼 한라산 산행을 앞두고 연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합천 가야산 만물상 구간에 다시 올라 보고,
지난 주에는 영알 신불산에도 홍류폭포를 경유하여 빡쎄게 올라 배내고개까지 걸어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산행 선상에서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인 구미 금오산을 선택하게 되었다.
구미 성리학역사관에는 이런 말이 써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선비 가운데 절반이 영남 출신이고, 영남 선비의 절반은 구미 출신이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고려말 유학자 야은 길재 선생이 금오산에 은거하여 후생을 기르신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영남의 선비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으신 바 있는 퇴계 학맥의 여헌 장현광 선생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잠시 금오산에 은거한 일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닌가 한다.
금오산이 큰 산이 아니어서 어디 은거하여 터를 잡을 만한 데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임진과 병자 양난을 겪는 동안 은둔할 수 있었다는 옛글을 읽을라치면 그저 놀랍다.
금오산을 올라보면서 과연 이 산이 영남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만한지 살펴보고 싶었다.
물론, 두건님의 발길도 맘속으로 그려보고 싶고.
언제: 2025년 11월 8일(토) 09:00 ~ 15:30
코스: 금오산관리소 - 금오산성 - 영흥정 - 해운사 - 도선굴 - 대혜폭포 - 할딱고개 - 정상갈림길 - 오형돌탑 - 마애여래입상 - 갈림길로 빽 - 현월봉 - 약사암 - 백운봉 뒤편으로 돌아서 다시 오형돌탑 - 갈림길로 가는 도중에 백운봉 다녀오기(혼자, 암벽타기) - 갈림길로 세번째 - 올라온 길 그대로 하산. 대략 10KM남짓.
날씨: 등산하기 최적.
기타: 구미고등학교와 성주고등학교 1,2학년생들과 다수의 교사들이 수능 대박 기원 산행을 하고 있었다.
등산하는 형태: 오르막에서 빠르게 내 걸음으로 일정 구간을 오른 후, 아내를 마중하러 내려와서 같이 오르기. 그 결과, 1.4배 오르기.
금오산이 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정상을 처음부터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헌 장현광 선생이 야은 선생의 시에 쓰인 운자(韻字)를 빌어쓰면서(한시 작법에서는 '차운'이라 한다.) 남긴 시는 이러하다.
대나무는 예전처럼 푸르르고
산은 지난날처럼 높아라.
맑은 바람은 여전히 머리카락을 서게 하는데
누가 고인을 멀다고 하는가.
야은 선생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시다. 내 머리카락이 설 정도는 아니어서 다만 가볍게 웃고 지난다.
능선을 타려면 칼다봉으로 올라서 법성사 쪽으로 하산하면 되는데 오늘은 무리하지 않으려고 맘을 먹는다.
이유는 알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장도 보아야 하고 큰애도 만나야 해서 일정이 바쁘다.
게다가 칼다봉 능선은 수년 전에 걸어내려온 일도 있다는 핑계로 ~~
단풍을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법 괜찮다.
엄청난 규모의 돌탑.
예전에 산에서 만난 어느 분이 산에서 돌을 주워다 쌓으면 비가 많이 내릴 때 흙이 깎인다고 걱정하시드만.
여기 금오산은 전체가 돌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만치 돌이 많으니 걱정을 덜 해도 되겠다.
나는 산, 이라고 하면 본능에 가깝게 우선 부담스럽다. 산을 잘못 배운 탓이다.
반면에 아내는 산, 이라는 말만 들으면 신나서 방방거린다. 그리고 산 다니는 사람들을 막연히 좋아한다.
곱다.
영흥정이라고 해서 迎興亭(흥겨움을 맞는 정자)일 줄 알았는데, 靈興井(신령스러움이 일어나는 우물)이란다.
1643년 9월에 금오산을 찾은 김하천(金廈梴)이 쓴 '금오산에 다녀온 기록(유금오산록)'에 따르면, 금오산성 안에 아홉 개의 연못을 팠다고 적혀있다. 이번에 내가 맛본 우물은 세 개였는데 맛이 모두 좋았다. 돌산에 물이 귀할 법도 한데, 참 놀랍다.
해운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선대사가 창건했다 한다. 직지사에 딸린 절이다.
지금은 이 해운사와 조금 있다 들를 약사암, 그리고 오늘은 가지 않은 법성사, 사찰로는 이렇게밖에 모르겠는데,
조선 후기에 금오산을 찾은 선비들이 남긴 기록에는 산 아래에 대혈사, 북문 안에 만승사, 대혜폭포 앞에 화엄사 등이 있었고, 이 외에도 갈암사, 보봉사, 동양사 등 여러 사찰이 있었다고 적혀있는데, 그 위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금오산에 절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금오산에서 대략 40리, 16km 가량의 산길을 걸었다고 하니, 혹 내가 걸어보지 않은 길에 있었을 수도 있겠다.
내 눈은 자꾸만 계곡이나 봉우리의 단풍 쪽으로 끌리고
금오산성 북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금오산에는 산기슭(대략 3-4부 능선)에 외성을 두르고, 산 위로 내성(대략 8부능선)을 한 겹 더 둘렀던 것 같다.
위에 언급한 김하천 선생의 기록에 따르면, 병자 정축(1636-1637년) 연간에 재상 이원익이 설계하고 경영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미 고려 이전부터 있었다는 기록도 보이므로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산성을 조선시대에 증축 보수한 것으로 판단한다.
참고로, 김하천 선생은 본래 구미 출신의 선비로 어머니가 야은 길재의 후손이고, 재증조부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처남이시다.
이 북문은 외성의 일부인 것 같은데, 옛기록을 보면 이 성 안에 4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 한다. 적지 않은 규모다.
입간판이 있으면 꼭 읽어보려는 아내와 그 옆에서 멀리 안개에 싸인 구미시를 내려다 보고 있는 나.
안 읽어봤지만, 도선대사가 도를 깨우쳤다는 내용일 거 같다.
도는 그렇게 깨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그렇게 깨친 도로 알 수 있는 게 뭐였는지 궁금하다. AI에게 물어볼까.
구미시 고아읍의 접성산.
사실 이 고아읍이 조선시대 '善山'이라는 곳으로 구미공단이 들어서기 이전, 더 올라가 조선시대에는 여기가 이 고을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봉우리 이름을 몰라서 지도를 들여다 보니 호령봉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지도로 확인해 보니 엄마봉, 효자봉 이런 이름들이 보이는데, 무슨 유래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암튼 봉우리 이름은 잘 모르고, 그저 단풍이 이쁠 따름이다.
도선굴 오르는 길. 폰에서 지우기 기능을 썼더니 잘못 지워서 유령을 만들어 버렸네.
사실 이 산행에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찍기가 수월치는 않았다.
도선굴 위에 요런 명문(銘文)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왔다. 읽어보면, 금오산이 이곳 선산의 진산이며 중국의 숭산에 견줄만하다는 얘기, 도선대사가 도를 깨친 곳이며 야은 선생이 사셨던 곳이라는 얘기, 굴의 크기가 높이 11척, 너비 14척, 깊이 25척이라는 얘기, 사람들이 많이 찾기는 하는데 너무 위험한 길이어서 석벽을 깎아 길을 냈고 그 길을 만드느라 수고한 걸 생각해서 이 글을 새겨 달아놓는다는 얘기 등이다. 누가 해석해달라고 하시면 그때 해 드리기로 하고 대충 pass~~.
굴이 생각보다는 크지만,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굴에서 은둔이 가능한 이유를 굳이 꼽자면, 바로 옆에 있는 대혜폭포를 비롯하여 물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들겠다.
하지만 야은 선생도 여기서 생활하지는 않으신 것 같고,
옛기록을 보면, 칼다봉의 기슭 어딘가에 거처를 두시고 지내신 것 같다.
영조가 야은 선생을 기려 채미정을 지어 하사하셨는데 그 근처가 아닐까 한다.
이게 대혜폭포인데, 명금(鳴金) 폭포라고도 한다.
김하천 선생은 "허공을 나는 물 흐름이 백 자 비류로 중천(中天)에서 떨어진다."고 써 놓으셨다. 실제로는 대략 28m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칼다봉 부분이다.
대혜폭포를 지나면 온순했던 길이 스물스물 일어서기 시작한다.
이런 길만 만나면 공연히 나도 본색이 드러나면서 뛰어오르고 싶어진다.
그 결과, 일정 구간을 왕복하여 오르내리게 된다.
구미시 봉곡동 일대. 구미대학교와 구미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주요 학교들이 있는 중심지인 것 같다. 여전히 안개 속이다.
정상과 오형돌탑과 성안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 오형돌탑 쪽으로 향한다.
가다보니 절벽 위에 돌탑들이 보인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 돌탑 있는 부분이 백운봉으로 오르는 초입이다.
이따가 내가 백운봉 올라갔다 오는 동안 아내가 앉아서 쉰 곳이다.
왼쪽으로 조금 보이는 봉우리가 백운봉의 일부다. 여기는 자일이 드리워져 있기는 하나 오르려면 용기와 기술이 필요하다.
오형돌탑보다 조금 아래쪽에 있는 돌탑들.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칼다봉 능선.
그런데 조선시대 기록에는 이 돌탑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성된 시기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백운봉의 동남방향 절벽에 새겨져있는 마애여래입상. 10세기 경 고려때 조성된 것이라 한다. 불상 높이만 대략 4m.
모서리에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해 만들어 입체감이 느껴진다.
위에서 언급한 사찰 가운데 보봉사가 여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다.
마애입상을 보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나와 백운봉을 서남쪽으로 돌면 현월봉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현월'이라면, 달이 걸려있다는 뜻인데, 매우 시적인 표현이다.
책을 읽다보니 어떤 이는 현월을 초승달로 해석하여 이 봉우리의 생김새가 초승달 모양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앞의 뜻으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현월봉에서 내려다 본 남구미와 석적읍 방향.
낙동강이 잘 내려다 보인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되새기며.
우리말 어원을 연구하던 대구대 정호완 교수에 따르면,
거북이 꼬리라는 이름의 龜尾는 가야 시대 이전부터 낙동강에 살던 부족들이 갖고 있던 거북이 토템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낙남정맥의 끝점 부분인 구지봉에 나오는 거북이 토템과 동일한 문화권이라고 한다.
내가 볼 때는, 말 토템을 지녔던 북방계가 낙동정맥을 타고 내려와 거북이 토템을 지녔던 남방계를 정복한 역사가 그려진다.
금오산성에서 칼다봉으로 흐르는 능선인데, 저 볼록하게 솟은 봉우리는 이름이 없다.
그 봉우리가 칼다봉보다 훨씬 높아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두건님에게 나중에 묻기로 하고.
현월봉의 예전 정상석이라고 한다.
그럼 처음부터 저 위에 세우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포근한빛님의 금오지맥 산행기를 보고 알았다. 군시설 때문이라고.
현월봉에서 동쪽으로 난 문. 이름이 거창한데, 약사암의 일주문이다.
바위 사이로 난 일주문과 계단을 내려오면 약사암.
바닥 공사를 마쳐가고 있다. 여기에 구름다리가 있는데 아찔해 보인다. 아직은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놓고 있다.
백운봉 뒷면이다.
현월봉에서 남서쪽으로 이 봉우리를 돌면 아까 갔던 마애불과 오형석탑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쉽게 말해 이 백운봉을 한 바퀴 도는 꼴이다.
백운봉이 만만치 않아 몇 번이고 올려다 보았다. 어디 오르는 길 없나, 하면서.
돌탑이 참 많기도 하지만, 쌓은 솜씨가 너무 뛰어나다.
여길 돌면서도 샘물을 만났다. 성 안에 아홉 개의 우물을 팠다는 기록이 실감날 정도로 도처에 샘물이 있다.
심지어는 현월봉 정상에도 있다.
아내 왈, 물은 머땜시 짊어지고 왔을까이.
여길 지날 때 나무 위에 까마귀 너댓 마리가 날아다녔다.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마애불을 지나 아까 왔던 오형석탑으로 다시 왔다. 오형이란, 까마귀 모양이란 뜻이다.
금오산을 상징하는 까마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 승려 아도 화상이 이곳을 지나다가 저녁놀에 비껴 까마귀가 황금빛으로 반사되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오형돌탑에서 정상갈림길로 가면서 드디어 백운봉으로 오르는 희미한 길을 발견했다. 오호, 가자!!
아내와 같이 오르다 첫번째 봉우리에서 조금 쉬고 있으라 하고 혼자 백운봉 정상을 향해 올랐다.
아, 그런데 이건 거의 암벽 타기 수준이다. 오르는 길에 만난 선바위.
왼쪽 바위를 올라타야 한다.
백운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서 내려다 본 오형 석탑. 그리고 구미와 낙동강.
쉬고 있던 아내를 만나 이제 편안하게 내려간다.
할딱고개라 불리는 곳인데 전부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오를 때는 내가 두 번 오르는 동안 힘들다고 엄살부리던 아내가 내려갈 땐 아주 쏜살같이 내려간다.
금오산 북문에 당도했다.
실질적으로 산행을 마쳤다는 뜻이다.
영남 선비들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될만한지는 알 길이 묘연하다.
다만 산의 기운이 무척 강하다는 직감이 들고, 불교 색채가 짙게 전해온다고 느끼는 정도.
한라산에 잘 오를 수 있겠지, 하며 씩 웃는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첫댓글
삶의 성찰과 동반자 관계,
그리고 ‘의미 있는 완성’에 대한 내면적 이야기
끝까지 완주하려는 의지(성취)
함께 가는 삶의 의미(동반자)
산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성찰(정신성)
이 글은 ‘산행기’의 외형 속에 담긴 인생 철학과
관계의 미학을 표현한 인문적 자기성찰을 느낄정도로 글에 깊이가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죽잖은 글에 과찬이십니다. ^^
지맥님이야말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계시니
간혹 저처럼 미욱한 사람도 잘 봐주셔요.
항상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가을의 운치가 전해집니다.
집 가까이 있는 금오산 이지만 자주 가보지 못하네요.
정맥길 팔개님 덕에 씩씩하게 뛰어 다닙니다.
다시 한번 사모님과 팔개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동안 산행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즐거운 산행 이어가십시요.
ㅎㅎ 어제는 참 반가웠어요.
재밌게 마치고 가셨다 하니 기분 좋네요.
이제 호남정맥, 그 까칠하면서 매력적인 산줄기로 들어가시겠어요.
저도 호남정맥에 가끔 참석하고 있기는 하나, 워낙 짧게 끊어서 다니는 팀이어서
금세 저흴 추월하시겠군요. ^^ 힘!!!
금오지맥하며 금오산을 밤에 통과해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팔개님 덕분에 사진으로나만 잘 봤습니다^^
금오지맥 산행기를 다시 보니 의문점들이 많이 풀리네요.
실은 현월봉에서 내려와 백운봉 뒤꼍을 돌 때 그 길이 효자봉 쪽으로 이어져 있길래 어떤 산길이 있는 줄 알긴했는데, 그게 지맥길이었군요.
멋진 산행 죽- 이어가셔요~~
나도 예전에 금오산을 올라갔었는데
종주에 정신이 팔려서 마실 물이
많은지는 미처 몰랐네요...ㅎ
금오산에 가 보기전 고속도로를 지나가면서
뾰족하게 솟아있는 저 산이 무슨산이냐고 물어보니까
금오산이라고 하더군요.
금오산에 관심이 생겼고 언젠가는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하였고
구미역에서 시작해서 금오산을 한바퀴돌아 내려온 기억이 있네요.
부산 금정산에도 들릴것 같은데 연락하셔야합니다...ㅎ.
ㅎㅎ 그러셨군요. 산 하나로 만족하실 수 있었다면 그 자체로 정신력이 대단하신 일이지요. ^^
지은 죄(?)가 많은지라 부산 가면 제 명대로 뭇살 거 같으네유. 더 오래 살 듯. ㅋ
지맥과 반맥을 두어 개씩 엮어서 만든 환종주 코스 멫 번 해본 거 외에는 지맥 산행을 해보지 않아서 금오산에 가면서도 정작 금오지맥도 몰랐어요. ㅠ
그처럼 힘든 지맥 산행을 해 나가시는 준 대장님과 파랑새팀, 열렬히 응원합니다. 힘!!!
우리가 정맥 가는날 금오산 산행을 하셨네요
제가 있을때 오셨으면 함께할수 있었으면 더좋았을텐데요
나름대로 오셔서 즐거운산행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금오산 주변의 역사적인 사실도 해설해주시고 두분의
산행하시는 모습이 가을의 동화처럼 정겹습니다.
항상보는 금오산 풍경 즐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쁘게 봐 주셔서요.
구미는 가끔 갈 것 같습니다. 💕
배울것 많고 읽을것 많은 아주 유익한 산행기입니다
중간중간 재미난 농담도 하나씩 던져주신 덕에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몇번이나 다녀온 금오산인데..
써내려가신 산행기로 만나는 금오산은 전혀 다른 산인듯 합니다^^
덕분에 많이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노올랍게도 제가 딴 산 간 건 아니쥬?
제가 잘못 본 거 있음 갠적으로라도 꼭 알려주셈.
총무를 맡으셔서 많이 힘드실텐데 무던하신 성품으로 넉넉히 해 나가시리라 믿어요.
우리 제삼리 마을이 계속 행복하기를...
배움이 많은 산행기...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가을의 정취가 듬뿍 물씬 합니다.
오손도손 산행하시는 모습이 좋습니다. 항상 안산즐산하세요~
"아내 왈, 물은 머땜시 짊어지고 왔을까이."
빵 터집니다 ㅎ~ing ^^
안녕하세요, 전국구님. 오죽잖은 산행기에 따뜻하게 칭찬해주셔서 제 어깨가 으쓱해져요. ^^
저희는 산행을 다녀오면 참 행복하지요.
대신, 제가 아주 마님 모시듯해야 해요. ㅋ
늘 평안하셔요 ~~.
멋진 해석이 곁들여진 산행기~ 잘 봤습니다. 11월 중순인데 아직도 단풍이 한창입니다. 금오산에 가신다고 해서 정맥팀 지원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물론 저도 차를 가져왔으면 토요일에 들머리에서 봤으면 했지만... 아쉽습니다.ㅎㅎ
아무튼 지난 주말 바뿌고 알차게 보내셨네요!ㅎㅎ 지금도 선배님 공간이 생각이 납니다.ㅎㅎ 한라산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ㅋㅋ
여기 내 방까지 와 주셨는데 서운하게 대접해서 보내드린 건 아닌지... 암튼 반가웠고요, 모임은 잘 하고 가셨지요?
지금껏 치열하게 살아온 탓에 과감하고 격렬하게 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고질병이지요.
흙집 지으실 꿈이 참 아름답게 느꺼집니다.
택리지에 조선시대 선비 절반이 영남에서 나왔고
다시 그중 절반이 선산에서 나왔을 정도였다죠
산 높이가 조금만 더 높아 천고지만 되었다면 한반도 역사가 달라졌다는 금오산
먼길 다녀가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ㅎㅎ 금오산이 우뚝하여 그 기개가 대단하더구만요. 그래서 인물이 많이 났다고.
구미는 차로 두 시간 거리니까 멀진 않은데 제가 원체 운전을 좋아하질 않는지라 피곤하긴 해요. 방장님 수준쯤 되면 차라리 산길을 타고 뛰어넘어가련만. ^^
오늘도 좋은 하루 ~~
뭐가 바쁜지 이제서야 후기를 보내요~
전체적으로 역사 이야기는 잘봤구요..
몇가지 궁금해 하시는거는 차차 코멘트 달아 드리겠습니다.
우선 금오산 서봉과 부상리능선 전망대 코멘트 달았습니다.
여기는 백운봉이 아니고 현월봉 뒤 헬기장 돌아가면 있는 쌍거북이돌탑입니다.
여기가 약사암을 조망하는 최고의 뷰 포인트입니다.
지상파 방송에도 가끔 등장하는 곳이죠.
여기 샘은 용샘이라는 곳이고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전설이 있는 곳이고
용샘이 있는 이곳을 용궁이라 부릅니다.
참 그리고 여기 돌탑들은 현재도 살아계신 분이 직접 쌓은건데
죽은 손자 명복을 빌며 쌓은 것입니다.
손자 이름이 형석인데, 금오산의 오와 형석이의 형을 따서 오형돌탑이라 부릅니다.
할딱봉 뒷쪽으로 보이는 곳은 늑대와여우능선의 봉우리인데
오형돌탑으로 이어지는 능선입니다.
마니아 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입니다.
@두건(頭巾) 고맙습니다.
짧은 시간에 둘러보려니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알려주셔서 궁금증이 많이 풀렸어요. ^^
금오산 서봉과 '늑대와여우능선'을 엮어 한번 다시 가 보고 싶네요.
'쌍거북이돌탑'에서 동쪽 방향으로 수직 바위절벽을 한참 타고 올랐는데, 거기가 백운봉 정상이 아니었나요? ㅋ
다음에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둘러봐야겠어요. ^^
거듭 감사드려요. 행복한 오후 보내셔요~~
@팔개 서봉에 아래로 멋진 폭포가 이어지는데
그쪽도 정말 좋습니다.
금오산에 등산코스가 18코스가 넘고,
숨은 명소들이 참 많지요.
좋은 날에 한번 놀러오세요.^^
금오산 가본지도 꽤 오래되었네요..
저도 시간내서 금오산 한번 다녀와야 겠어요..
정맥길에 지원 와 주셔서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이번주 한라산~ 잘다녀오세요..
간김에 제주도의 가을도 만끽하시고요..^^
금오산이 명산인 거 같어요. 저도 또 가보고 싶어요.
멋진 셀레네님을 만나뵙는 일이 즐거움이지요. 이제 호남으로 가시니 뵙기 어렵겠지만, 늘 지금처럼 멋진 모습 보여주세요.
한라산은 12월 첫주에 가요. 그때까지도 매주 산에 가서 가을을 맘껏 누려야겠어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감사 합니다
글 또한 편안함을 주네요 다녀온지가 오래 되었지만 추억으로 간직하며 다녀 갑니다
제 글을 감상하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억의 사잔 뒷장에 몇 자 남겨진 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