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픔을 독학했다
김대호
슬픔은 수학이었다
수시로 슬픔의 문제를 풀었다
슬픔의 공식이 있었으나 슬픔을 풀 때는 공식에 대입했다
내 슬픔과 당신의 슬픔을 잇는 가장 가까운 선을 구하는 문제는
아직도 푸는 중
당신의 인생을 더하고 내 인생을 빼고 당신과 나의 감정을 미적분하는 사이
날이 저물었다
오래된 내 병은 어떤 공식을 대입해도 풀리지 않았다
지독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넬슨 만델라는 모든 사람에겐 선이 있다고 믿었다
나 역시 성선설을 믿고 있지만 몸은 항상 뻣뻣하다
착하게 살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슬픔의 방정식은 풀린다
내 불행이 슬픔의 근육을 단련한다
허술한 희망보다 단단한 슬픔은 얼마나 건강해 보이는가
슬픔의 답안지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지우지 못한 살림살이같이 숫자와 공식과 괄호만 남아있다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2023. 시인동네
김대호 시인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2012년 《시산맥》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가 있다. 2019년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2021년 아르코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출처] 나는 슬픔을 독학했다 / 김대호|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