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형제들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할례자들(유대인 회심자들로서 회심 후에도 유대교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비난합니다(1-3).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머물면서 함께 식탁 교제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도 그것이 율법을 어기는 것인 줄 알았지만,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례대로 자기를 비난하는 할례자들에게 설명해 줍니다. 결론은 16-17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은 것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이 주어졌으니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또한 이전까지 있었던 음식에 관한 법들은 복음 안에서 무효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씀의 성취임을 말합니다. 이에 유대인 회심자들도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은 생명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 확장되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것을 보여줍니다. 옛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을 이제 유대인들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로 흩어진 신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남부지역)에까지 전파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들 중에서 구브로에서 온 몇몇 사람이 안디옥에 있는 그리스인들에게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파하자 예수님의 손(능력을 상징)이 그들과 함께 하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21).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도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어 사실을 확인합니다.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곳에 있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권합니다. 바나바가 구브로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앞장섰던 구브로 출신의 전도자와 협력하는데 유리했을 것입니다(20). 바나바는 인격적으로도 아주 훌륭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사역을 하는 것보다 동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바나바는 160km 정도 떨어진 다소로 가서 사울을 찾습니다. 다행히 둘은 만날 수 있었고, 안디옥으로 돌아와 둘이서 1년 동안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외부인들이 불렀습니다. 이방지역에서 그들의 삶은 믿지 않는 자들이 볼 때에도 차이가 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할 수 있었기에 이렇게 부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 곧 구약과 신약시대가 겹치는 사도시대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하던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왔습니다. 그 중에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성령 안에서 말하기를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미리 예언을 들은 안디옥 교회는 잘 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안디옥의 교인들은 힘이 닿는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예루살렘 교회)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냅니다(30).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멀리 소아시아 지역에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안디옥에 사는 신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우리의 삶도 믿지 않는 자들이 보았을 때 달라야 합니다. 세상과 구분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서 그분의 길을 걷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의 삶은 외부 사람들에게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가 어려움을 처했을 때 한 마음으로 돕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안과 밖으로 구별되는 삶은 사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중심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26).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안으로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다른 교회를 돕는 교회가 됩시다. 나아가 우리 이웃을 도우며, 구별되는 삶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로 인식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