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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구유를 통한 성탄 의미... 친밀함, 가난, 구체성”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4일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강론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구유를 바라보자고 초대했다. 아울러 예수님의 친밀함을 신뢰하고, 가장 작은 이들을 사랑하며,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희망을 되살리자고 당부했다. 또한 “이 세상의 사람들이 부와 권력에 굶주려 우리 이웃과 형제를 먹어 치운다”고 규탄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강론에서 “성탄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초대했다. 아울러 구유는 작고 겉으로는 하찮아 보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무대로 들어오시는” 표징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성탄이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계시다는 것을 뜻한다”며 “믿음이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이십니다. 희망을 잃은 이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날 작은 희망을 품도록 도와줍시다!” 교황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영감을 받아 하느님께서 이 거룩한 밤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바를 풀이했다. 교황이 말하는 구유는 아기 예수님 성상이 놓인 바로 그 구유다.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시작 전 노래한 “구원자 탄생 선포(canto della Kalenda)”가 끝나자 부제가 구유로 다가가 아기 예수님 성상을 덮어둔 베일을 벗겼다.
성탄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 구유를 바라봅시다
교황은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 탄생을 전하는 대목에서 구유를 세 번이나 언급했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언급은 마리아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루카 2,7 참조)는 대목이고, 두 번째 언급은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루카 2,12) 보게 될 것이라고 알리는 대목이며, 마지막 언급은 목자들이 “구유에 누운 아기”(루카 2,16)를 찾아냈음을 밝히는 대목이다. 교황은 베들레헴의 상황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며 “많은 준비를 요하는 호적 등록이라는 중요한 행사를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베들레헴의 분위기는 오늘날 성탄 축제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려면 구유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왜 구유가 그토록 중요할까요? 구유는 우연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구유는 그분께서 당신의 오심을 알리시는 방식입니다. 역사 자체를 다시 태어나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태어나시는 방식입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에서 강론하는 교황
구유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친밀함, 가난, 구체성을 말씀하십니다
교황은 구유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적어도 세 가지”를 알려주신다며 “친밀함, 가난, 구체성”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친밀함과 관련해 교황은 “구유는 먹이통 역할을 한다”며 “짐승들이 여물을 더 빨리 먹을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구유는 우리 인류의 한 측면인 소비에 대한 탐욕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는 짐승들이 마구간에서 먹이를 먹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 이 세상의 사람들이 부와 권력에 굶주려 우리 이웃과 형제를 먹어 치웁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전쟁을 보았나요!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짓밟히고 있나요! 늘 그렇듯이 인간 탐욕의 주요 희생자는 나약한 이들, 취약한 이들입니다.”
“이번 성탄에도 예수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돈에 굶주리고 권력과 쾌락에 굶주린 세상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과 가난한 아이들, 잊힌 아이들처럼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저는 특히 전쟁, 가난, 불의로 피폐해진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거기로 오십니다. 배척과 버림받음의 구유에 아이로 오십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안에 모든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삶, 정치, 역사를 보도록 초대받습니다.”
“여러분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곳에서”
교황은 “배척과 불편의 구유”에 인류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소유하고 소비하려고 탐욕스럽게 달려드는 데서 나오는 무관심입니다.” 교황은 “구유에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며 “구유에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 가까이에 계심을 발견한다”고 설명했다. “그분은 우리의 양식이 되시려고 먹이통으로 오십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자녀를 먹어 치우는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 애틋한 사랑으로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사랑만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유일한 힘이라고 일러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거나 강요하지 않으시고 겸손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교황은 “여러분이 예수님께 있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가까이 오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주님께서 구유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고 말했다. “만약 너희가 온갖 일로 지쳐 있거나 죄책감과 부족함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너희가 정의에 굶주려 있다면, 너희의 하느님인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나는 너희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알고 있다. 내가 구유에서 몸소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의 부족함과 과거의 실패를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언제나 너희와 가까이 있고 앞으로도 가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 태어났다.”
“용기를 내십시오. 두려움과 체념, 낙담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이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시려고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길 원치 않으시고 구원하실 수 없는 그 어떤 악이나 죄도 없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계시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이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추운 마구간은 우리에게 “사람이 진정한 자산”이라고 말합니다
베들레헴의 구유는 또한 우리에게 가난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구유가 따뜻한 여관이 아닌 추운 마구간에 있었다고 상기한 교황은 그곳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요셉, 목자들에게만 둘러싸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모두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와 큰 성공이 아니라 사랑과 경이로움으로 일치돼 있었습니다.” 교황은 “삶의 참된 풍요로움”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관계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첫 번째 사람, 가장 큰 자산은 예수님입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우리는 그분의 편에 서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그분에게 가까이 가는가? 우리는 그분의 가난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이익과 관심사에 안락하게 안주하기를 선호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분이 계신 곳, 곧 우리 세상의 가난한 구유에 계신 그분을 찾아 뵙고 있나요? 거기에 그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난하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가 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에 참례한 수도자들
가난한 이들을 외면한 성탄은 진정한 성탄이 아닙니다
교황은 순교자 성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의 사목서한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는 불의의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지지하고 축복하며, 오직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곧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가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유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베들레헴 동굴의 적나라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세속의 안락한 온기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난한 이들을 외면한 성탄은 진정한 성탄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합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께서는 가난하십니다. 사랑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합시다!”
예수님은 말이 아닌 경배와 사랑으로 이뤄진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교황은 “구유는 우리에게 구체성에 대해 말한다”고 언급했다. “참으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은 충격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곧, 하느님께서 참으로 살이 되셨음을 일깨워 줍니다. (...)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가난하게 사시다 가난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가난에 대해 그다지 많이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를 위해 끝까지 가난을 살아 내셨습니다.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뚜렷하고 구체적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말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농담조로 우리를 사랑하신 게 아닙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겉치레에 만족하지 않으셨다”며 “단순히 좋은 의도 이상을 원하신다”고 말했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공허한 말과 껍데기가 아닌 경배와 사랑으로 이뤄진 구체적인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벌거벗은 채 구유에 누워 계시고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은 우리에게 진리를 요구하십니다. 적나라한 현실로 가서 우리의 모든 변명과 합리화, 위선을 구유 밑에 두라고 요구하십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헌화한 어린 소녀가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성탄에 “선행”을 합시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겉모습이 아니라 구체성을 원하신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교황은 “이번 성탄에는 꼭 선행을 하자”고 초대했다. “오늘은 그분의 생신이니,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선물을 드립시다! 성탄에,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이십니다. 희망을 잃은 이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날 작은 희망을 품도록 도와줍시다!”
“예수님, 저희는 구유에 누워 계신 당신을 봅니다. 저희는 주님을 가까이에서, 언제나 저희 곁에서 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몸소 가난하게 되신 당신을 봅니다. 당신께서는 참된 자산은 물질이 아닌 사람, 특히 가난한 이들 안에 있음을 가르쳐 주시려고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저희가 가난한 이들 안에서 당신을 알아 뵙고 섬기지 못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뚜렷하고 구체적이니 저희도 당신을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보게 하소서. 예수님, 저희의 신앙에 살과 생명을 더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폭력을 거부”할 책임이 있는 이들을 위한 아랍어 기도
보편 지향 기도는 중국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인도의 말라얄람어, 아랍어로 바쳐졌다. 아랍어로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바쳤다. “평화를 사랑하시고 평화를 주시는 모든 이의 아버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에게 폭력을 거부하고 민족들 사이에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이 밖에도 아기 예수님 성상에 헌화하기 위해 이탈리아, 인도, 필리핀, 멕시코, 엘살바도르, 대한민국, 콩고 등지의 어린이 12명도 함께했다. 무릎이 아픈 프란치스코 교황을 대신해 조반니 바티스타 레(Giovanni Battista Re) 추기경이 중앙제대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가 끝난 후 바티칸 성가대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 동안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 내에 준비된 구유 쪽으로 아기 예수님 성상을 모시고 휠체어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