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사랑하게 된 나의 자리,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찾아줘야 하지.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더는 사랑할 수 없는 나의 자리’
- 봉주연 詩『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
- 시집〈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현대문학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떠 출근을 했다. 잠이 줄었다. 자다 자꾸 깬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벌써 그러면 어떡하니. 어머니께선 혀를 찼지만, ‘저도 이젠 중년의 나이인걸요.’ 속엣말은 꿀꺽 삼켰다.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꾸뻑 졸기는 했으나, 아침을 일찍 맞이하는 건 좋은 일이다. 폭 깔리는 입김을 뱉어가며 어깨를 잔뜩 움츠리는 겨울이면 더 그렇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도 좋고 거리 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는 생기를 느껴보는 일도 좋지만, 으뜸은 조용한 서점을 보게 마주하는 일. 책장 속 시집들은 어째 자고 있는 것만 같다. 걸음도 손길도 조심스럽다. 습관이 되어버린 아침 커피도 망설여진다. 이 고요를 조금 더 누리고 싶다. 카운터에 기대서서 우두커니 서점을 보고 있으면, 새삼 내가 이곳을, 나의 서점이라 부르는 열댓 평 공간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는 부모의 심정을 어설피 짐작해본다. 두 시간쯤 뒤면 누군가 서점 문을 열겠지. 책장 가득한 시집들 하나둘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듯 첫 손님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내맡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온전히 책들과 나만의 시간.
이것이 ‘일상’이겠지. ‘사랑’일 테고, ‘일상’도 ‘사랑’도 참으로 가까이 있으며 그리하여 종종 이 소중한 상태를 잊고 마는 거겠지. 일상을 일상답게 제자리에 두고 기꺼이 사랑하는 일은 뜻밖에 어렵지 않을 것이며, 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각오를 새삼 새긴다. 나는 서점 내부 조명 스위치에 손을 대고는 또 한참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