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운명(運命)-11*
"혜정아. 마스크!"
김혜정은 긴장된 상황에서 내가 마스크를 주며 쓰라고 하자 놀랐다. 그러나 주변 분위기 때문에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받아 착용하였다. 나는 엔진을 꺼고 빽쌕을 메고 혜정의 손을 잡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여 현관으로 갔다. 현관 앞의 보도는 양 옆의 정원석들이 군데 군데 자리하고 있는 사이로 나 있었으며 작은 자갈들이 깔려져 있었다. 현관에서 집 주변을 둘러 보았다. 전혀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현관의 문은 이중으로 되어있었으며 첫번째 문은 락이 되어있지 않았다. 두번째 문 우측 옆에 흰색 바튼이 있었다. 서너 번 눌렀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잠시 기다린 후 다시 눌렀지만 역시 무반응이었다. 나는 좌측 편 거실이 보이는 창가로 가서 1.5미터 높이에 있는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거실 쇼파가 있었고 그 뒤로 주방이있었으며 주방과 문이 열려 서적들이 보이는 서재 사이에 난 2층 계단이 보였다. 그 이층 계단 아래쪽에 검은 물체가 보였다. 나는 빽쌕에서 후레쉬를 꺼내 비춰보았다. 물체는 쓰러진 사람이었고 여성이었다. 나는 놀라 현관으로 달려갔다.
"제임스!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아직 모르겠지만, 혜정아. 내 뒤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
나는 말을 마치고 핸들을 잡아 당겼다. 문은 잠겨져 있었다. 나는 잠깐 동안 바깥 주변을 살폈다. 인기척이나 어떤 움직임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바닥에서 정원석 옆에 있는 주먹크기의 돌을 줏어들고 심호흡을 한 후 손잡이 옆의 유리를향해 가볍게 툭 쳤다. 유리창은 보기 좋게 창문 손잡이 옆이 깨어졌다.'쨍그랑' 하며 유리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혜정은 놀라지 않고 나를 믿고 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잠시 기다렸다. 아무런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나는 손을 유리창이 깨어진 틈으로 넣어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제서야 문은 열렸다. 혜정이가 나를 밀치고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혜정이를 팔로 당겨 왼쪽 겨드랑이 사이로 꼈다. 그리고 바닥을 봤다. 좌측 신발장 아래 바닥에는 남성용 검정색 구두 한 켤레와 나이키 흰색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브라운 색의 여성용 하이탑 부츠와 역시 흰색의 새것 같은 나이키 운동화가 나란히 있었다.
"여보세요! 어머니! 나진희 엄마! 혜정이 왔어요! 아무도 없어요!"
혜정이 소리치는 그와 동시 나는 거실로 달려 들어가 좌우를 살피며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로 갔다. 후레시에 비친 사람은 50대 여성이었다.
"어머니! 으아악! 엄마!"
나진희라는 것을 안 혜정은 놀라움에 소리치며 달려와 엄마를 껴안으려 하는 것을 내가 잡았다.
"안돼! 김혜정. 잠깐만 기다려. 우리가 손 대어서는 안돼."
그러나 인륜을 어떻게 막으라. 의사이니 더 잘 알겠 거니 생각 들었다.
"혜정아. 너가 의사이잖아. 침착해야 돼. 어머니를 움직이면 안돼. 내가 이층에 가 보고 오겠다. 알았지?"
혜정이는 내 말에 이해가 갔지만, 무릅꿇고 앉아서 오열하고 있었다. 나는 뛰어 2층으로 올라갔다. 침실의 침대위에 한 남자 가 옷을 입은 채 누워있었다. 주변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그 남자의 곁에 가서 사망여부를 확인하였다. 그는 사망하였고 입가에 피가 흘러 있었다. 나는 즉시 아랫층으로 내려가 혜정을 살폈다.딱하게도 어머니를 앞에 두고 오열하고 있었다. 코비드 바이러스 때문 만은 아니었다. 경찰의 초동수사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119를 불렀고 다시 114를 통해 사망을 알렸다. 그리고 이덕구에게 전화하였다. 그 시각은 정확하게 7시였다.
사인은 극약 복용이었다. 두 사람 모두 에이즈 말기와 코비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다. 사인이 검시의에 의하여 확인되고 시체는 그 곳에서 화장하였다.그곳에 있던 우리 두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하루 종일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겨울이고 깊은 산속이라서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신원은 박성철로 밝혀졌고, 그는 나진희와 동거한 인물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경찰이 연락했음에도 오지 않았다. 모든 상황은 일사천리로 끝을 맺었다. 에이즈와 코비드-19가 그러한 상황을 만들었다.
울진 경찰의 조사반이 먼저 달려왔다. 우리는 거실에 그들과 마주앉아 조사에 응했다. 우리가 이 집에 들어 온 시각과 발견시각 그리고 발견 시 초동행동 등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 다행이 발견 당시 그대로 현장 유지를 해 둔 것이 더 복잡한 질문과 일들을 발생치 않게 했다. 그리고 사체 검시관이 와서 사체를 검시하였고, 방역반이 와서 주변을정리하는 동안 나와 혜정은 길곡의 박선희 집으로 찾아갔다. 달리 가까운 곳에서 숙식을 할 수가 없었다. 혜정은 기진 맥진하고 있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저희에게 방이 여유가 있어요. 혜정이 엄마가 가끔 사용하던 침대방을 사용하세요. 어서 혜정이를 눕히세요. 얼마나 힘들까?"
박선희는 혜정을 딸처럼 살뜰하게 대해 주었다. 잠시 후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들어 온 혜정을 안아주었다.
"혜정아. 힘들지? 견뎌내야 한다. 힘을 잃으면 안돼. 내가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 우선 잠을 푹 자라. 그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그쟈?"
"예. 제임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제임스가 옆에 있어서 제가 견디어 낼 수 있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자. 이제부터 아무것도 생각 말고 잠만 생각해. 알았지?"
"ㅎㅎㅎ 제임스. 웃겼어요. 어떻게 잠만 생각해요. 당신도 생각해야 죠."
나는 이 와중에 듣고 보는 혜정이의 웃음소리와 좀 밝아진 얼굴을 보며 기운이 나고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때 밖에서 찾는 소리가 들렸다. 사고처리반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예상대로 그들은 간단하고 신속하게 이 사건을 처리하려 하였다. 나는 혜정이 잠 든 것을 보고 살며시 방안을 나와 그들과 만났다.
"사망사고 조사반 반장 조일수입니다.이덕구라고 아십니까?"
그는 대뜸 그렇게 먼저 물었다.
"예. 그런데?"
"아. 좀 전에 사건 현장을 다녀갔습니다. 이번 이 사건은 단순 자살로 결정되었습니다. 검시결과 두 사람 모두는 에이즈 감염자이고 말기였습니다."
나는 놀랐다. 이건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다.
"그리고 또?"
"예. 불행하게도 두 사람 모두 코비드-19에 감염되어 에이즈 바이러스와 내부에서 혼합작용하여 치명적인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추한 마지막을 남기지 않으려고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였으며 그것이 결정적 사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부에 그렇게 사실을 보고 하였고, 사체는 가족에게 통보 후 현장에서 소각처리 하기로 결정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는 언론사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내일 아침 8시에 소각처리 될 것입니다. 아 참, 박성철의 가족은 참석하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박성철?"
"아. 2층 침대 위에서 자살한 사람입니다. H건설 회장이었다가 1년 전에 은퇴한 60세의 이혼한 남자입니다."
상황이 짐작되었다.
"나지희씨의 딸인 김혜정에게 알릴 겁니까?"
"그래서 선생님을 뵙자고 하였습니다. 경찰 쪽에서는 타살 흔적이 전혀 없는 단순 자살 사건을 지금 코비드 상황에서 길고 복잡하게 끌고 가길 원하지 않습니다. 이덕구 부장님도 선생님과 김혜정을 복잡한 일에 끌어 들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알다시피 이 건은 저희 경찰이 더 파고 들 건더기가 없습니다. 이런 사고 사건은 겨울에도 자주 발생합니다. 이의가 없으시면, 출발 전에 사망사건 처리결과서에 김혜정씨가 싸인만 해 주시면 됩니다. 싸인 전에 요구사항이나 부탁할 것들을 정리하여 말씀해 주시면 저가 처리하겠습니다."
"김혜정에게는 내가 전하겠습니다. 그녀는 캐나다의 의사입니다. 가능한 있는 그대로 전 할 것입니다. 재차 묻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또 이 사인을 알고 있습니까?"
"경찰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오직 선생님에게만 말씀 드렸습니다. 지방 신문사 기자들도 전혀 모릅니다. 고인들의 명예를 위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덕구의 힘이 느껴졌다. 이게 한국이고. 나는그들이 떠나자 거실에 있는 박선희에게 갔다.
"아이고.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 데요?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저 별장이 지어 지기 전에는 일년에 2번 정도 와서 쉬었다 가셨어요. 혜정이가 자는 저 방을 이용하였어요. 저는 뭐라고 말씀드릴 것이 없네요. 그저 참 좋은 분이라는 말 외에는."
"그렇군요. 나지희씨는무엇 하는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자세히 는 모르고… 대학교 교수이고 올 때 몇 번 학생들하고 같이 왔어요. 화폐수집에 관심이 많고 그 방면에서 일하신다고도 하셨어요. 참 아름답고 서글서글한 성격의 좋은 분이셨어요."
그때 옆 방의 문이 열리고 자다 깬 혜정이 눈을 부 비며 나왔다.
"벌써 아침이예요? 다들 계시네요."
나는 얼른 일어나 혜정이를 부축해서 쇼파에 앉혔다. 그러자 박선희씨가 일어나 커피를 잔에 담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