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 일상 19-13, 거창에서 첫 미용실 방문
하은이 머리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은 어머니가 직접 다듬었는데,
며칠 더 있어야 부모님이 거창에 온다고 해서
이번에는 미용실에 가겠다고 했다.
수업을 마친 하은이를 학교에서 차에 태우고 읍으로 향했다.
몇 곳 생각하기는 했지만 어디에 가야 좋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미스터류미용실은 사장님과 안면이 있고 쉽게 갈 수 있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몇 가지 이유로 망설여졌다.
미스터류는 배종호 아저씨, 이보성 씨가 단골로 이용하는 곳이다.
듣기로는 최근에 곽기영 아저씨가 사장님에게 자주 소식 전하며
왕래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사 와서 처음 가는 미용실인데 새로운 곳을 찾았으면 했다.
미스터류 말고는 개인적으로 아는 곳이 없어
군청로터리 주변에 서서 간판을 훑어보았다.
지나다닐 때 그렇게 많던 미용실이
왜 오늘은 다 숨은 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명랑핫도그 맞은편 건물에 있는 티트리미용실이 보였다.
“하은아, 저기 어때? 가볼까?”
하은이에게 말하고 보니 문제가 있었다.
미용실이 위치한 곳은 2층, 올라가려면 계단을 타야 했다.
괜한 오기가 들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하는 2층 미용실에 갈 수 있을까?
휠체어에 앉으면 늘 1층에 있는 곳만 가야 하나?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그래야 하는 걸까?’
하은이를 안고 계단을 올랐다.
미용실에 들어서며 인사하니 4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았다.
머리 자르러 왔다 하며 하은이를 자리에 앉혔다.
어린이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일반 의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은이 체구가 작으니 자꾸만 몸이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머리하는 도중에 사장님이 하은이를 의자 한 쪽에 붙여 앉히고,
한 쪽 빈 공간에 받침대를 받쳐 몸을 지탱했다.
조금 나았지만 여전히 자세가 불안해 쭈그려앉아 하은이 몸을 붙잡았다.
최경희 씨를 따라 미용실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김정숙미용실 사장님은 최경희 씨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가운을 둘러 머리를 했다.
휠체어에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은 얼마쯤 감수해야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 같았다.
사장님에게 휠체어에 앉은 채로 가운을 두르면 어떠겠냐고 물었다.
시도해보려 했지만 가져온 하은이 휠체어가 유모차형이라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유모차형 휠체어는 머리 위쪽까지 시트가 있어 고개를 지탱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은이는 의자에 앉고, 사장님은 하은이 뒤에 서고,
직원은 하은이 앞에 쭈그려앉은 상태로 머리를 했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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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에 살다 작년 11월에 거창으로 이사 왔다고 하은이를 대신해 소개했다.
웃음과 소리로 의사를 표현한다는 말과,
지금까지는 어머니가 직접 머리를 다듬었는데
아주 깔끔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은아, 마음에 들어? 어때?”
깔끔해진 하은이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옆으로 살짝 꺾어 바라보며 웃었다.
긍정의 표현이다. 하은이도 마음에 드나 보다.
“내려갈 때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올라올 때도 말씀하셨으면 도왔을 텐데.”
하은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왔다.
사장님이 휠체어를 들고 뒤따랐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전화주시면 내려와 있을게요.
인터넷 검색하면 번호 나오거든요.
전화로 사회복지사라고만 말하면 내려와서 도울게요.”
사장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돌아섰다.
하은이 거창에서 첫 미용실, 사장님 덕에 무사히 다녀왔다.
계속 다니면 단골이 되겠지.
2019년 3월 29일 일지, 정진호
임우석(국장): ① 티트리미용실 사장님 고맙습니다. 미용실 사장님들은 다들 마음이 좋으신 것 같아요. ② 나라면 그냥 다니기 편한 미용실을 선택했을 텐데. 훗날 정진호 선생님의 오기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르겠습니다. ③ 한 곳만 고집하지 말고 두루 다녀봐요. 거창에 100개가 넘는 미용실이 있다고 하니….
월평: 미용실 사장님에게, 사장님 인생에, 오늘은 어떤 날인가! 역사를 쓰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첫댓글 선생님의 오기가 참 고맙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입주자를 지원할 때면, 계단과 턱이 늘 반갑지 않은 대상이죠.
그럼에도 지역사회 두루 다니려면 요령을 찾고 둘레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부탁을 하고,
때로는 돕는 사람의 이런 오기가 지역사회를 변화하게 할 것입니다.
문득 글 읽으며, 아이들이 머리 손질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어요.
오늘처럼도 좋고, 아빠가 아이를 안고 깎이듯이 누군가 하은이를 안고 있으면...
저는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하기 힘든 아이들을 제가 안고 한답니다^^
한 미용실에 자주 가다보면 사장님께서 머리 손질하기 수월한 방법을 먼저 제안하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