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년.
덴마크 왕 올라프 1세가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국이었던 덴마크를 북유럽 평정과 무역 진흥을 통해 강국으로 부상시켰던 올라프 1세.
그의 뒤를 이어 삼남인 크누트가 42세의 나이에 크누트 1세로 왕위에 올랐다.
새 왕인 크누트 1세는 즉위식날,동방 원정의 준비를 명령했다.
향후 10년 안에 동방 원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게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에 따라 전 지역이 군비 증강 태세로 들어갔다.
9년 후,1138년.
크누트 1세는 드디어 동방 원정의 개막을 알렸다.
크누트 1세 본인은 새로이 장군으로 임명된 어린 두 동생인 크리스토퍼와 스웨인을 포함한 380명의 군대를,
그리고 두번째 동생 하데크누트는 180명의 군대를 이끌고 각각 리보니아와 프러시아를 침공했다.
리보니아에서는 400명의 반란군이 왕의 군대와 맞섰다.
숫자상으로도 별 차이가 없었던 왕의 군대는 400명의 반란군을 가볍게 쓸어버렸다.
230명을 학살하고,164명을 포로로 잡았으나,아쉽게 6명은 놓쳐버렸고,이는 공성전으로 돌입하게 되는 주요 원인을 제공한다.
그러나,왕은 이 전투에서 두 동생인 크리스토퍼와 스웨인을 잃었다.
이에 격분한 왕은 우선 포로로 잡힌 164명은 풀어주었으나,
다음 해 벌어진 공성전에서 포로로 잡힌 3명은 바로 처형시켜버렸다.
프러시아에서는 2600명의 반란군이 하데크누트의 군대와 맞섰다.
전력상으로 확실한 열세였으나,리보니아와는 반대로 프러시아 반란군은 대부분이 농민병.
이 점을 예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하데크누트 왕자는 각개 격파로 맞섰고,
418명을 학살하고 1011명을 포로로 잡은 다음 1171명의 나머지 반란군들도 포로로 잡아버렸다.
웬만해서는 포로들을 죽이지 않았던 왕 크누트 1세와는 달리,
하데크누트는 천성이 아주 잔악한 인물이었다.
포로로 잡힌 2072명의 반란군들을,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명령했고,
이는 곧바로 행해졌다.
1140년,마침내 크누트 1세는 리보니아와 프로이센을 본격적으로 자신의 지휘하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리보니아에서 왕의 암살 기도가 실패로 끝나고 나서 왕은 정신적으로 변화하였다.
결국,1142년에 왕은 자신의 병사들만을 이끌고 리투아니아를 공격한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병력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리투아니아의 병력들은 모두 성으로 숨어버렸으나,
곧바로 도적떼가 창궐,왕은 홀로이 도적들과 반란군의 이중공격에 둘러싸인 형편을 맞이하게 된다.
1144년,왕은 대규모의 반란군을 상대로 홀로이 맞서고,
이후에 왕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크누트 1세는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결단력이 있었고,그 장점 하나만으로 동방 원정을 실천,프러시아와 리보니아를 얻게 했다.
특히나 리보니아에서는 자신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까지 했다.
크누트 1세가 전사한 그 때,덴마크 본국에서는 왕의 전사 소식을 듣고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남자,
왕의 첫번째 동생 발데마르가 발데마르 1세로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선왕 올라프 1세의 사남이었고,왕의 일곱 아들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던 발데마르.
그가 1145년에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첫댓글 대제칭호는 어느왕이 받을지..
새 왕으로 즉위한 발데마르 1세에게 붙여볼까 생각중입니다.사실,크누트 1세를 죽게 한 이유가 발데마르를 빨리 왕으로 즉위시킬려는 진행자의 흉계였다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