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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노스님은 법안 스님 앞으로 다가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밀 하나를 더 알려주마
역대 조사들이 이 응무소주 네 글자의 짝을 맞춘 구절이 있다.
바로 연기즉각 각지즉무
다 무슨 뜻이냐 면
생각 하나가 일어날 때 즉시 알아차려라.
일단 알아차리면 그 생각은 힘을 잃고
금방 사라진다.
이것이 알아차리면 곧 없어진다
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즉 이라는 글자다. 생각이 막 일어나려는 찰나에 알아차려야지. 그게 커지도록 두면 안 된다.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 뒤에 알아차리면 힘이 든다. 그러니 마음을 고양이처럼 만들어라.
고양이가 쥐 구멍을 지키고 시시각각 경계하여 망념이 일자마자 낚아채야 한다.
오래 하다 보면 망염은 줄어들고 참마음이 드러날 것이다.
소주가 되면 성구라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금강경에 마냥 마음에 머무름이 있으면 그것은 머무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마음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면 진정한 안주가 아니다.
언제 마음이 진짜로 머무르는가?
진여 본성에 머무를 때 그것이 바로 성불이다. 하지만 주의해라.
모든 생각을 끊어 없애야 무소주 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좌선하여 일정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걸 무소주 라 생각하는데 그건 큰 착각이다. 그건 무기공이나 혼침이지 무소주가 아니다.
진정한 무소주는 신령스럽고 밝게 깨어 있어. 항상 아는 것이다.
일어날 생각은 그대로 일어나고
할 일은 그대로 하되
마음이 어디에도 들러붙지 않는 것이다.
마치 물위를 가는 배가 물을 가르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말이다.
동이 트기 시작하자.
노스님은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돌아가서 잘 음미하고 실천해라.
기억해라.
이 법문은 토론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닦으라고 있는 것이다.
법안 스님은 공손히 절을 올리고 감격에 젖어 물러났습니다.
그날부터 법안 스님은 노스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실천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마음이 정말 시시각각 머물고 있다는 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경을 읽을 땐 경에
좌선할 땐 다리에
밥 먹을 땐 맛에
잠잘 땐 꿈에 머물렀습니다.
가장 어려운 건 미세한 머무름이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속으로 뿌듯해하는 것
칭찬받고 기뻐하는 것
남이 수행 못하는 걸 보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
이 모두가 머무름이었습니다.
법안 스님은《 연기즉각 각지즉무》의 구절에 따라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처음엔 힘겨웠습니다.
생각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뒤늦게 알아차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알아차림은 점점 예리해졌습니다.
석 달 뒤 어느 아침 법안 스님은 뒷마당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뭇잎 하나가 팔랑이며 떨어졌습니다.
습관적으로 쓰러내리려던 그 순간 갑자기 마음속이 텅 비며 모든 생각이 뚝 끊어졌습니다.
그 찰나 스님은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동안 늘 내가 청소를 한다고 여겼던 그 생각이 장난을 치고 있었음을요.
그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빗자루질은 계속되고 있었고 오히려 더 가볍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스님은 계속쓸었지만 마음속에는 내가 쓴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손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꾀꼬리 한 마리가 날아가면서 맑은 소리로 울었습니다.
법안 스님은 분명히 들었지만 마음속에
이건 새 소리다라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소리가 일어나고 소리가 사라질 뿐
마음은 허구음처럼 아무런 물품이 없었습니다.
양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스님은 그 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응무소주 마음
본래의 참 마음은 항상 여기 있었는데
수없는 집착과 머무름이 가리고 있었을 뿐이구나.
이제 그 머무름이 사라지니
본성이 저절로 드러나는구나.
그 순간 스님은 금강경의 참뜻을 깨달았습니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는 말은
모든 형상이 마음이 머물러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머물지 않으면 형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업이 되고 집착하지 않으면 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법안 스님은 해원 노스님께 달려갔습니다.
노스님은 제자를 보자마자 빈그레 웃으셨습니다. 이제 조금 맛을 보았구나.
스님 이 경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까?
법안 스님이 급하게 물었습니다.
깨달음은 얻기 어렵고 물러나기는 쉽다.
노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랜 습관이 너무 강해서 방심하면 또 머물게 된다. 그러니 계속 공부해서 시시각각 깨어있음을 유지해. 완전히 견고해질 때까지 닦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이 경계에도 집착하지 마라. 집착하면 그것 또한 머무름이다.
무소주는
본래 그런 것이지
닦아서 얻거나
깨달아서 얻는 게 아님을 조심해라.
법안 스님이 또 물었습니다. 스님 왜 부처님께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셨을까요.
그냥 응무소주라고만 해도 되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노스님이 답하셨습니다.
만약 머무르지 말라고만 하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을 썩은 나무처럼 만들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특별히 마음을 낸다는 말을 붙이셨다.
무소주의 마음은 묘한 작용을 일으킨다.
이 묘용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다.
태양이 저절로 빛나고
달이 저절로 비추고
꽃이 저절로 피고
새가 저절로 노래하듯이 말이다.
이 일어나는 마음은 지혜이고 자비이며
모든 선한 법이다.
하지만 마음을 내되 그 내내 머물지 않고
사라지되 사라짐에 머물지 않는 것
이것이 이생기심의 뜻이다.
법안 스님은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한다는 생각이 없고
제도가 없으면서도 제도를 하는 것이군요.
그렇다 노스님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금강경에서 모든 중생을 내가 다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제도하였으되
실로 제도를 받은 중생이 하나도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중생을 구하는 건 묘한 작용이지만 구했다는 형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원만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대승보살의 경지다.
그 후로 법안 스님의 수행은 일취월장했습니다.
스님은 금강경 전체가 이 응무소주를 설명하고 있음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법도 취해서 말고 법 아닌 것도 취하지 말라는 것은 유법에도 무법에도 머물지 말라는 뜻이고
설법하는 자는 설법 할 법이 없다는 것은
설법하되 설법한다는 상에 머물지 말라는 뜻이며
불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장엄함이 아니니
이를 장엄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장엄하되 장엄한다는 상에 머물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또한 이 무소주의 공부가 일상생활에서도 큰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는 일을 할 때
늘 걱정하고 불안해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머물지 않으니 오히려 일을 더 잘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번뇌에 점령당하지 않으니 지혜가 드러나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예전엔 득실을 따지고 남의 태도에 따라 기분이 오르내렸지만
이제는 마음에 머무름이 없으니
남들이 좋게 하든 나쁘게 하든 집착하지 않아
오히려 더 조화로워졌습니다.
경을 읽을 때도 예전엔 감흥을 바라거나 깨달음을 구했지만 이젠 그저 맑게 읽을 뿐
결과를 구하지 않으니
오히려 신비한 체험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1년 후 해원노스님은 대중을 모아놓고 법안 스님에게 수행 체험을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법안 스님은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법상에 올랐습니다. 여러 도발 스님들 제가 겪은 작은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안 스님은 겸손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1년 전 스님께서 제게 응무 소주 네 글자의 법문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그 뜻을 몰랐으나 직접 닦아 보니 이것이 불법의 핵심이자 해탈의 열수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본부가 번뇌하는 이유는 마음이 어딘가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머물면 탐욕의 번뇌가 분노에 머물면 분노의 번뇌가 생깁니다. 수행의 목적은 마음을 머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머물지 않으면 번뇌는 즉시 사라집니다. 이것은 번뇌를 누르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 뿌리째 뽑는 것입니다. 어떻게 머무르지 않을까요? 늘 자신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마음이 어딘가에 머물면 대적하거나 누르지 말고 그저 바라보고 내려놓으십시오 이 공부는 일상에서 해야 합니다. 좌선할 때만 하는 게 아닙니다. 걷고 눕고 먹고 입고 사람을 대할 때 잠시도 쉬지 않고 이 무소주를 닦아야 합니다. 법안 승인은 대중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금강경은 형상에 머물지 말라고 합니다. 무엇이 형상입니까? 눈앞에 모든 것이 형상입니다. 형상에 머물지 말라는 건 보지 말고 듣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보도에 머물지 않고 듣되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거울이 사물에 비추듯 보면 비추고 가면 비우는 것입니다. 거울은 아름다운 걸 비춘다고 기뻐하지 않고 추한 걸 비춘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도 본래 그렇습니다. 다만 오랜 습관에 가려졌을 뿐입니다. 이제 응무 소주를 통해 본래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마음은 청정하고 밝고 자유로우며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깊이 빠져들어 듣고 있는데 한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법안 스님 마음이 머물지 않으면 아무 생각도 없는 것입니까? 그럼 목석과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법안 스님이 웃으며 답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우소주는 아무 생각 없는 게 아니라 생각하되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하고 안 할 땐 안 하고 생각하고 나면 내려놓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범부의 마음은 생각에 끌려다니지만 성자의 마음은 자신이 주인이라 자유자재합니다. 이것이 이 생기심의 묘용입니다. 다른 스님이 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습관이 너무 무거운데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 어렵습니다. 법안 스님은 진심을 담아 말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끈기입니다. 매일 조금씩 쌓이면 큽니다. 스님께서는 세 단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거친 머무름 미세한 머무름 아주 미세한 머무름입니다. 우리는 거친 것부터 시작합시다. 명백한 탐진치를 알아차리고 내려놓으십시오 기초를 튼튼히 해야 뒤로 갈 수 있습니다. 옆에서 듣던 해원 노스님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법안 스님은 덧붙였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수행 체험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하다 보면 좋은 체험도 있고 무서운 체험도 있습니다. 어디에도 머물지 마십시오 좋은 경기에 집착하면 탐욕이고 나쁜 걸 배척하면 분노입니다. 둘다 머무름이고 장애입니다. 오직 평상심을 유지하십시오 한 노스님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그 이치를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닙니다. 왜 안 되는 걸까요? 법안 스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습니다. 우리가 단지 이해만 하고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의식의 차원이고 깨달음은 의식을 초월합니다. 이에서 깨달음으로 가려면 실천해야 합니다. 매일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머물지 않음을 연습하십시오 양이 차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을 끓일 때 99도까지는 여전히 물이지만 1도를 더하면 수증기가 되듯 수행도 공력이 쌓이면 저절로 물길이 트입니다. 법회가 끝나고 많은 스님들이 법안 스님에게 가르침을 정했고 스님은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해원 노스님은 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아이는 오성도 뛰어나지만 더 귀한 건 깨달은 뒤에 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다는 것이다. 저게 진짜 수행자다. 몇년 뒤 해온 노스님은 노쇠하여 법안 스님을 다음 주지로 지목하셨습니다. 누구도 이 일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법안 스님의 수행력이 이미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노스님은 입적하기 전 법안 스님을 부르셨습니다. 나는 이제 간다. 이 응무소주 법문을 네게 맡기니 잘 지켜라. 전할 때를 알고 기다릴 때를 알아라. 이 건물은 귀하지만 아무에게나 함부로 전해선 안 된다. 상대의 근기를 보고 진심으로 법을 구하는지 살펴라. 소귀의 검은 곳 다리는 헛수고다. 그리고 너도 깨달았다고 끝이라 생각 마라 수행엔 끝이 없다. 깨달음의 경계에도 머물지 말아라. 법안 스님은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습니다. 회원노스님은 미소를 머금은 채 편안하게 입적하셨습니다. 법안 승인은 주지가 된 후에도 금강경에 이 법무를 널리 폈습니다. 청수사의 핵심 수행법으로 의무소주 네 글자를 삼고 모든 승려에게 익히게 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 법문 덕분에 오랜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거나 바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법안 스님은 늘 공을 돌렸습니다. 이건 다 부처님의 지혜예요. 역대 조사에 은덕입니다. 저는 그저 전달자일 뿐입니다. 말년에 법안 스님은 금강경 응무소주로를 지어. 이 수행법의 이론과 실천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 책은 널리 퍼져 금강경 연구의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서물에 스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금강경 5천여 자가 구슬 같으나 핵심을 잡자면 응무소주 4글자다. 이 네 글자를 사무치면 경 전체가 뚫리고 못 사무치면 경을 달달 외워도 입장난일 뿐이다. 수행자의 최대 장애는 마음에 머무릅니다. 명예에 머물면 명예의 노예가 되고 이익에 머물면 이익의 노예가 되고 정에 머물면 정의 노예가 되고 법에 머물면 법의 노예가 된다. 머무름이 없으면 얽매임이 없고 얽매임이 없으면 자제하다. 후학들은 이 네 글자를 이론으로 연구하지 말고 실천으로 닦아라. 그래야 묘한 맛을 안다. 법안 스님은 93세의 고령까지 사셨습니다. 임종 직전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평생 가장 큰 수확은 혜원 스님을 만나 응무소주 법문을 얻은 것이다. 이제 나는 간이 너희에게 이 법무를 전한다. 기억해라. 이건 우리 절만의 법이 아니라 불교 전체의 핵심이다. 금강경이 있는 한 이 법문은 있다. 누구든 진심으로 닦으면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 말을 마친 스님은 단정히 앉아 평온하게 입적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그 저수를 널리 알렸고 금강경에 이 비밀 코드를 세상에 전했습니다. 오랜 10월이 흘렀지만 청수산은 여전히 향불이 끊이지 않습니다. 절 안에는 비석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는 큰 글씨로 네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음무소주 저를 찾는 이들은 이 비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깁니다. 어떤 이는 문득 깨닫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멍하니 서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체험을 하든 이 네 글자는 그곳에서 조용히 인연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는 마음이 청정하면 곧 실상을 보리라 하셨습니다. 응무소주 이 네 글자는 간단해 보이지만 불법 전체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수행은 숙제를 얼마나 많이 하고 주문을 얼마나 외우느냐에 있지 않고 마음이 머물지 않게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이 머물면 자유롭고 머물면 속박당합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지혜이자 수많은 수행자가 평생을 바쳐 쫓는 궁극의 해탈의 길입니다.이니 형상에 머물지 않으면 그 자리가 바로 열애라는 뜻이었습니다. 모든 유의법은 꿈과 환상과 물거품 같다는 말은 유의법이 2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