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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홍모(輕如鴻毛)
가볍기가 기러기 털과 같다는 뜻으로, 아주 하찮은 것을 나타낼때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다.
輕 : 가벼울 경(車/7)
如 : 같을 여(女/3)
鴻 : 기러기 홍(鳥/6)
毛 : 터럭 모(毛/0)
출전 :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중국의 사성(史聖)으로 불리는 사마천(司馬遷)은 동양을 넘어 세계 역사서의 걸작 사기(史記)를 남겼다.
공자(孔子)의 춘추(春秋)와 같이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에서 제왕의 연대기 본기(本紀)와 뛰어난 인물의 일대기 열전(列傳)을 중심으로 한 기전체(紀傳體)의 효시로 꼽힌다.
전설 속의 황제(黃帝)부터 3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130권, 52만 60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양에 압도되기보다 치욕을 이기고 절대 역사서를 완성한 점과 사필소세(史筆昭世),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집필정신이 더욱 정사의 모범으로 칭송받는다.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문학적인 가치도 인정받는데 그 위에 일상의 고사성어 약 25%가 여기서 유래한다니 놀라울 정도다. 와신상담(臥薪嘗膽), 토사구팽(兎死狗烹) 등 고사를 설명한 성어가 대부분인데 다른 글에서 내려오는 것도 제법 있다.
기러기의 털(鴻毛)처럼 가볍다(輕如)는 이 말은 하찮은 것을 나타낼 때의 비유다. 앞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대분망천(戴盆望天)과 같이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란 글에 실려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사마천은 흉노(匈奴)에 항복한 친구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했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한 것은 오직 태사(太史)인 가업을 이어 사서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죽은 듯이 보내는 사마천에게 또다시 임안(任安)이란 친구가 도움을 요청했다. 임안은 전한(前漢) 무제(武帝)때 일어난 무고(巫蠱)의 난에 휩쓸려 억울한 죽음을 눈앞에 둔 처지였다.
하지만 사마천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처지라 그의 자인 소경(少卿)에 보내는 글에서 구구절절 이해를 구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은 이렇다.
人固有一死(인고유일사)
사람은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或重於泰山(혹중어태산)
어떠한 사람에게는 태산과 같이 무거울 것이요
或輕於鴻毛(혹경어홍모)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기러기 털처럼 가벼울 것입니다.
태산홍모(泰山鴻毛)라 하여 무겁고 가벼운 것을 대비하기도 하는데 죽음의 무게를 다루면서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사마천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를 잘리는 치욕을 당하고서도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하더라도 숱한 소들의 몸에 있는 털 하나가 없어지는 구우일모(九牛一毛)로 여겨질 터이니 구차하게 이은 생명이 태산보다 더 큰 위업을 이뤄 복수한 셈이 됐다.
남을 위한 일이나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이처럼 뚜렷한 목적을 잊지 않는다면 커다란 성과를 남긴다. 또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젊은이들이 고된 삶을 이겨내는데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마천의 고백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는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이 옥에 갇힌 옛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임소경서를 읽으면 사마천을 알게 되고, 사마천을 알아야 사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사마천은 사기(원 제목은 태사공서太史公書)라는 역사서의 완성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고뇌에 찬 심정을 보임소경서라는 편지글에서 술회하였다.
보임소경서는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비통함과 치욕을 뒤로 하고 역사서의 완성이라는 부친의 유훈(遺勳)과 역사적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오직 집념으로 살아야만 했던 위대한 역사가(歷史家) 사마천의 명문장(名文章)으로 알려져 있다.
전날 사마천은 옛날 동문수학한 이릉(李陵) 장군이 흉노를 토벌하러 가서 큰 공을 세웠으나 세궁역진(勢窮力盡)하여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투항함으로써 대역죄를 지었을 때 그를 변호하다 한무제(漢武帝)에게 미움을 사서 투옥되고 궁형(宮刑)의 치욕스런 형벌을 받았다.
출옥 후에 얼마가 지나서 다시 중서령(中書令)에 임명되었는데, 겉으로 보면 궁중의 중요한 직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개 환관(宦官)의 신분으로서 내정(內廷)에서 시중을 들었으므로 일반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다.
그러나 사마천은 비참한 몰골로 전락한 고통과 남들의 천대 속에서도 부친의 유언에 따라 발분하여 사기의 초고를 완성시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간에 옛 친구 임안(任安)은 황제와 태자간의 무고(巫蠱)의 난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되고, 임안은 자신의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하는 편지를 사마천에게 보냈다. 임안은 사마천이 중서령이라는 관직을 이용하여 자신이 선처되도록 힘 써줄 것을 부탁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과거 자신이 당했던 끔찍한 현실에 대한 인식 때문에 임안의 부탁을 들어주기가 어려워 내내 답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이 일단 처형되고 나면 영원히 답장할 기회를 잃고, 이것이 또 다른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될까 염려되어 답장을 썼던 것이다.
그는 편지에서 임안을 위로하는 한편 자신의 뼈아픈 심정을 전하고 자신이 왜 여태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사기를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고백하였다.
이 서신은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한 사마천의 애절한 심경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고통 받았던 위인들의 고난을 언급하고 있으며, 구절구절 옳고 그름에 대한 그의 철학과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현대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報任安書/ 司馬遷
太史公牛馬走, 司馬遷再拜言少卿足下, 曩者辱賜書, 敎以順於接物, 推賢進士爲務.
태사공(太史公)인 저 사마천(司馬遷)이 재배하며 삼가 소경(少卿) 족하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번에 외람되이 서신을 보내셔서 가르치시기를 교우관계에 있어 도리를 따르고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여 벼슬에 나가도록 하는 일에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意氣懃懃懇懇, 若望僕不相師, 而用流俗人之言, 僕非敢如此也.
말씀의 뜻이 은근하고 간절하셨는데, 만일 제가 받들어 따르지나 않을 것처럼 원망하신 것 같았습니다만, 세상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제가 감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僕雖罷駑, 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 顧自以爲身殘處穢, 動而見尤, 欲益反損, 是以獨鬱悒而與誰語.
제가 비록 미련하고 재주는 없으나, 어른들의 유풍을 어렴풋이나마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건대 몸으로써 궁형(宮刑)의 잔해를 입고, 더러움에 처하여, 거동할 때면 허물을 입고, 잘 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일을 그르칩니다. 그러므로 혼자 답답하고 근심에 쌓일 뿐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諺曰, 誰爲爲之, 孰令聽之, 蓋鍾子期死, 伯牙終身不復鼓琴, 何則. 士爲知己者用, 女爲說己者容.
속담에 이르기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누구를 위해 일하고, 누구로 하여금 듣게 하겠는가(나에게 귀를 기울이도록 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대저(大抵) 종자기(蓋鍾子)가 죽자 백아(伯牙)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한다면,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쓰이려고 하고, 여자는 자기를 기뻐해주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미기 때문입니다.
若僕大質已虧缺矣, 雖才懷隨和行若由夷, 終不可以爲榮, 適足以見笑而自點耳.
만일 저처럼 본 바탕이 이미 이지러져버리면, 비록 재능이 수후(隨侯)나 화씨(和氏)와 같은 능력을 품고 있고, 행실이 허유(許由)나 백이(伯夷)처럼 고결하다 해도, 끝내 영광스럽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함으로써 스스로 욕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書辭宜答, 會東從上來, 又迫賤事, 相見日淺, 卒卒無須臾之閒得竭志意, 今少卿抱不測之罪, 涉旬月迫季冬.
당신의 서신에 의당 회답을 드려야 했는데, 공교롭게 황상(皇上)을 따라 동쪽으로 오게 되고, 또 급한 개인적인 일도 맞닥치게 되었었습니다. 서로 만나 볼 날이 부족했고, 갑작스레 잠깐의 한가한 시간을 내어 저의 뜻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소경(少卿)께서는 생사가 어찌될지 모르는 죄에 쌓인지 달포가 지나 12월이 가까워졌습니다.
僕又薄從上雍, 恐卒然不可爲諱, 是僕終已不得舒憤懣以曉左右, 則長逝者魂魄, 私恨無窮.
저는 또 황상을 따라 옹지(雍地)로 갈 날이 가까워져서, 당신께서 뜻밖에 죽음을 당할까 걱정됩니다. 이렇게 되어 제가 끝내 제 마음속에 있는 울분과 고민을 드러내지 못하고 당신께 알리지 못한다면, 멀리 저 세상으로 간 당신의 혼백에 대해 나는 한없이 유감스러울 것입니다.
請略陳固陋, 闕然久不報, 幸勿爲過.
이제 저의 고루(固陋)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답장을 드리지 못했으나, 저의 허물로 여기지 않으신다면 다행입니다.
僕聞之, 脩身者智之符也, 愛施者仁之端也, 取與者義之表也, 恥辱者勇之決也, 立名者行之極也, 士有此五者, 然後可以託於世, 而列於君子之林矣.
제가 듣건대, 수신(脩身)이란 것은 지혜의 징표이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의 시작이며, 서로 간에 받고 주는 것은 의의 표현이고, 수치와 욕된 것을 참는 것은 용감한 결정이며,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행동의 극치라고 들었습니다. 선비는 이 다섯 가지가 있고나서, 그런 연후에 세상에 몸을 맡길 수 있고, 군자의 무리에 같이 설 수 있을 것입니다.
故禍莫憯於欲利, 悲莫痛於傷心, 行莫醜於辱先, 詬莫大於宮刑, 刑餘之人無所比數, 非一世也, 所從來遠矣.
그러므로 화액(禍厄)으로 말하자면 이익을 탐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없고, 슬픔은 상심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없으며, 행동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것이 없고, 부끄러움으로는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형을 받아 흔적이 남은 사람이 보통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지금 세상만이 아니라, 멀리 옛날부터 좇아 내려온 바입니다.
昔衛靈公與雍渠同載, 孔子適陳, 商鞅因景監見, 趙良寒心, 同子參乘, 袁絲變色.
옛날 위나라 영공(靈公)이 환관인 옹거(雍渠)와 함께 수레에 오르므로 공자(孔子)께서 (예의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서 위나라를 떠나) 진(陳)나라로 가셨습니다. 상앙(商鞅)이 환관인 경감(景監)으로 인하여(소개로 진나라 효공을) 만나자, 조량(趙良)이 상앙을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환관인 조담(趙談)이 문제(文帝)를 모시고 수레에 오르자, 원사(袁絲)가 화가 나서 안색이 변했습니다.
自古而恥之, 夫以中才之人, 事有關於宦豎, 莫不傷氣, 而況於慷慨之士乎.
이와 같이 옛날부터 환관을 멸시 했었습니다. 무릇 보통 사람들도 모든 일에 환관이 연관되면 기가 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기개 있는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如今朝廷雖乏人, 奈何令刀鋸之餘, 薦天下豪俊哉, 僕賴先人緖業, 得待罪輦轂下, 二十餘年矣.
그러니 지금 비록 조정에 인재가 모자란다고는 하나, 어찌 궁형을 받은 제가 천하의 호걸과 준걸을 천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선대에 일찍 이루어놓은 공로에 힘입어 벼슬하긴 했으나, 왕 앞에 죄 받기를 기다린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所以自惟, 上之, 不能納忠效信, 有奇策才力之譽, 自結明主.
이런 까닭에 스스로 생각해보니, 위로는 충성을 드리지 못했고 신의를 바치지도 못했으며, 훌륭한 책략이 있어서 재주와 능력이 있다는 칭찬을 받지도 못하였고, 밝으신 군주에게 스스로 매여 있지도 못했습니다.
次之, 又不能拾遺補闕, 招賢進能, 顯巖穴之士.
다음으로는, 또한 취사선택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일도 잘 못하며, 현사를 천거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벼슬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잘하지 못하여, 은거하고 있는 선비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지도 못하였습니다.
外之, 又不能備行伍, 攻城野戰, 有斬將搴旗之功.
대외적으로는, 군사를 대오에 맞춰 거느리고,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우며, 적장의 목을 베고 군기를 빼앗는 공로를 세우지도 못하였습니다.
下之, 不能積日累勞, 取尊官厚祿, 以爲宗族交遊光寵.
아래로는, 오랜 세월 공로를 쌓을 수 없었고, 높은 관직이나 후한 봉록을 받지도 못해서, 종친이나 친족이나 친구들과 교유하면서도 은총을 베풀지도 못했습니다.
四者無一遂, 苟合取容, 無所短長之效, 可見如此矣.
이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하였고, 구차하게 남의 비위나 맞추고 일신상의 안위를 구하면서, 작거나 크거나 간에 아무런 공로를 세운 바가 없음이, 보시는 바와 같이 이렇습니다.
嚮者, 僕亦常廁下大夫之列, 陪外廷末議, 不以此時引維綱, 盡思慮, 今已虧形, 爲掃除之隸, 在闒茸之中.
이전에, 저 역시 낮은 하대부 서열에 있을 때, 조정의 뜰 밖에 말석에서 모시어 서서 논의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기강을 바로 세우지 못하였고 사려를 다하지도 못하였으므로 지금 이지러진 몸을 가지게 되었고, 청소나 하는 노예처럼 천한 무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乃欲仰首伸眉, 論列是非, 不亦輕朝廷, 羞當世之士邪.
그런데 도리어 제가 머리를 꼿꼿이 세우며 고고한 태도로써, 옳고 그름을 논하여 늘어놓는다면, 이는 역시 조정을 무시하고, 당세의 재능 있는 선비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嗟乎, 嗟乎, 如僕尙何言哉, 尙何言哉, 且事本末, 未易明也.
탄식하며 또 탄식하는 바입니다. 저와 같은 자가 더욱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또 더하여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또한 일의 본말이 쉽게 밝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僕少貧不羈之材, 長無鄕曲之譽,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奏薄伎, 出入周衛之中.
저는 젊었을 때 가난했지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재능이 있다고 자부했었습니다. 그러나 장성하고 나서는 시골구석에서조차 조그마한 평판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황상께서 저의 선친의 연고로 은혜를 베풀어, 저의 얕은 재주나마 바칠 수 있도록 하셔서, 태사의 일을 이어받게 하시어, 엄중한 궁중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
저는 물동이를 이고서 동시에 어찌 하늘을 쳐다볼 것인가?(오직 한마음으로 임금을 보필하여야 할 사람은 또 다른 개인적인 일을 돌 볼 수가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빈객과의 사귐도 끊고, 집안일도 잊어버렸습니다. 낮과 밤으로 불초한 능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마음으로 오직 직무에만 힘쓰면서 황상으로부터 총애를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뜻밖에 크게 잘못 되어, 그렇게 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夫僕與李陵,俱居門下, 素非能相善也, 趣舍異路, 未嘗銜盃酒, 接慇懃之餘懽.
대저 저와 이릉은 같은 문하에서 지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 서로 아끼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진로(進路)가 서로 달랐으며, 잔을 들어 함께 술을 마시는 경험도 해보지 못했고, 은근한 기쁨의 시간을 가져보지도 못했습니다.
然僕觀其爲人, 自守奇士, 事親孝, 與士信, 臨財廉, 取與義, 分別有讓, 恭儉下人.
그러나 제가 그 위인됨을 살펴보니, 기특한 선비의 기상을 스스로 지키고, 부모를 모시는 효성이 있으며, 선비와 더불어 사귐에는 신의가 있고, 재물에 대해서는 청렴하며, 주고받음에 있어서 정의롭고, 사리 분별에는 겸양이 있으며, 아랫사람에게는 공손하고 사치스럽지 않게 대했습니다.
常思奮不顧身,以徇國家之急, 其素所蓄積也, 僕以爲有國士之風.
그가 항상 생각하는 것은 몸을 떨쳐 일어나 일신을 돌보지 않고 죽음으로써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겠다는 것이나, 이는 본디 그의 마음속에 쌓아둔 바였습니다. 저는 이런 까닭에 그가 나라의 큰 선비로서의 기풍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夫人臣出萬死不顧一生之計, 赴公家之難, 斯以奇矣.
무릇 신하된 자로서 만 번 죽음의 자리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한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조정의 어려움을 구하려 달려 나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今擧事一不當, 而全軀保妻子之臣, 隨而媒糱其短, 僕誠私心痛之.
요즘 세상은 누가 큰일을 하다가 한 가지라도 잘못되면, 오직 자신의 몸을 보전하고 처자를 보호하는 데만 전전긍긍하는 신하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 잘못을 더욱 날조합니다. 저는 정말 마음속으로 이런 일을 통탄스럽게 생각합니다.
且李陵提步卒不滿五千, 深踐戎馬之地, 足歷王庭, 垂餌虎口, 橫挑彊胡, 仰億萬之師, 與單于連戰十有餘日, 所殺過當, 虜救死扶傷不給.
또한 이릉은 오천 명도 안 되는 보병을 거느리고, 오랑캐 땅 깊숙이 들어가, 흉노족 왕의 궁정을 걸어서 지나갔으니, 이는 먹이를 호랑이 입에 늘어뜨림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막강한 오랑캐에게 갑작스레 도전하여, 억만의 군대를 맞이하고, 흉노의 왕 선우와 더불어 연이어 10여 일을 싸웠는데, 죽인 자가 너무 많아서, 오랑캐는 죽어가는 자들을 구해낼 수도, 부상자를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旃裘之君長咸震怖, 乃悉徵其左右賢王, 擧引弓之人, 一國共攻而圍之, 轉鬪千里, 矢盡道窮, 救兵不至, 士卒死傷如積.
털옷을 입은 흉노의 군장(君長)들은 모두 떨며 두려워했고, 이에 흉노 인근의 좌우의 왕들을 모두 소집하고, 궁수를 모두 동원하여, 온 나라가 함께 이릉의 군대를 공격하고 포위하였습니다. 이릉의 군대는 천리 길을 이동하며 싸웠고, 화살은 다하고 길은 막다른 곳에 이르렀으며, 구원병은 오지 않고, 병졸들의 사상자는 쌓이기만 했습니다.
然陵一呼勞, 軍士無不起躬自流涕, 沬血飮泣, 更張空弮, 冒白刃, 北嚮爭死敵者.
그러나 이릉이 한번 큰 소리로 외쳐서 군사를 위로하면, 군사들은 몸을 일으키지 않는 자가 없었고, 스스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피로 얼굴을 씻고 눈물을 삼키며, 다시 화살도 없는 빈 활을 당기면서, 번쩍이는 칼날을 무릅쓰며, 북쪽을 향해 죽음과 싸우며 적에게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陵未沒時, 使有來報, 漢公卿王侯皆奉觴上壽, 後數日, 陵敗書聞, 主上爲之食不甘味, 聽朝不怡, 大臣憂懼, 不知所出.
이릉이 아직 전쟁에서 몰패당하지 않았을 때, 사자가 와서 보고하자, 나라의 공경과 왕후가 모두 술잔을 들어 황상께 축수(祝壽)를 드렸습니다. 수일이 지난 후에 이릉이 패전하였다는 소식이 들리자, 황상께서는 식사를 해도 맛을 모르시고, 조회에 참석해도 기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들도 걱정하고 두려워 어찌 해나가야 할지 방도를 몰랐습니다.
僕竊不自料其卑賤, 見主上慘愴怛悼, 誠欲效其款款之愚.
저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비천하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황상께서 몹시 비참해하심을 뵙고, 저의 어리석은 충정을 바치기를 조심스럽게 원했습니다.
以爲李陵素與士大夫絶甘分少, 能得人死力, 雖古之名將不能過也.
이릉은 평소에 사병들과 장교들과 더불어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며 동고동락(同苦同樂)하여 왔기에, 능히 부하들로 하여금 사력을 다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비록 옛날의 명장이라 할지라도 이릉보다 못합니다.
身雖陷敗, 彼觀其意, 且欲得其當而報於漢, 事已無可奈何, 其所嶊敗功亦足以暴於天下矣.
그가 비록 중상모략(이릉의 공로를 시기하여 지원군을 보내지 않은 자들에 의한)에 빠져 패하기는 했지만, 그 뜻을 보건대, 장차 적당한 기회를 얻어 우리나라에 보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일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그가 드높게 적을 패퇴시킨 공로는 역시 천하에 드러내기에 족한 것입니다.
僕懷欲陳之而未有路, 適會召問, 卽以此指推言陵之功, 欲以廣主上之意, 塞睚眦之辭.
제가 이러한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당장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침 황상께서 회의를 소집하시고 듣기를 청하시기에, 제가 이러한 취지로써 이릉의 공로를 말씀드려, 황상의 답답한 마음을 비워드리고, 소인들의 하찮은 원망의 말들을 막으려 했습니다.
未能盡明, 明主不曉, 以爲僕沮貳師, 而爲李陵遊說.
그러나 제 생각을 다 밝힐 수 없었으며, 밝으신 황상께서는 저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시고, 제가 이사 장군의 뜻을 저지하고, 이릉을 위해서 유세한다고 여기셨던 것입니다.
遂下於理, 拳拳之忠終不能自列, 因爲誣上, 卒從吏議.
마침내 저는 다스려져 하옥되었고, 저의 간절한 충성심을 끝내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황상을 속였다는 죄로, 마침내 옥리들의 뜻대로 심문한 결과를 따라야 했습니다.
家貧貨賂不足以自贖, 交遊莫救, 左右親近不爲一言, 身非木石, 獨與法吏爲伍, 深幽囹圄之中, 誰可告愬者.
저의 집은 가난하여 형벌을 면할 수 있을 만큼의 재물이 없었고, 사귀던 벗들은 아무도 나를 구하려 하지 않았으며, 황상 좌우의 측근인물들도 나를 위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목석도 아닌데(사람으로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교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옥리와만 더불어 어울려 있으면서, 깊은 옥중에 갇혀 있었습니다만, 누구라도 내 사정을 하소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此眞少卿所親見, 僕行事豈不然乎, 李陵旣生降, 隤其家聲, 而僕又佴之蠶室, 重爲天下觀笑.
이것은 진정코 소경(少卿)께서 친히 보신 바이니, 저의 행사가 어찌 그러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릉이 이미 살아서 적에게 항복하니, 그 가문의 명성은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뒤를 따라 잠실에 던져져 치료를 받으며, 또 다시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悲夫, 悲夫,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僕之先, 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歷, 近乎卜祝之閒, 固主上所戲弄, 倡優所畜, 流俗之所輕也.
슬프고 또 슬픕니다. 저의 일을 세상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부부단서(剖符丹書)를 가질 만한 공로가 없습니다. 천문(天文)·태사(太史)·율력(律曆)과 같은 일을 담당하였는데, 점치는 일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일은 본래 황상께서 장난삼아 노시던 것으로, 양육된 바 광대와 같으며, 세상에서도 경시하는 것이었습니다.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蟻何以異, 而世又不與能死節者, 特以爲智窮罪極, 不能自免卒就死耳.
만약 제가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털 하나 잃어버리는 것과 같으니, 땅강아지나 개미의 죽음과 비교하여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저를 능히 절개를 지키다 죽은 사람으로 기리지도 않을 것이며, 특별히 지혜가 다하고 죄가 극에 달해, 스스로 면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죽었다고 여길 뿐입니다.
何也, 素所自樹立使然也, 人固有一死, 或重於太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왜 그렇겠습니까, 제가 평소에 스스로 세워놓은 바가 그렇게 여기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본디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 하나보다 더 가볍습니다. 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太上不辱先, 其次不辱身, 其次不辱理色, 其次不辱辭令.
가장 훌륭한 죽음은 선조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얼굴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언사에 욕됨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其次詘體受辱, 其次易服受辱, 其次關木索, 被箠楚受辱, 其次剔毛髮, 嬰金鐵受辱, 其次毁肌膚, 斷肢體受辱, 最下腐刑極矣.
그 다음은 몸이 내쳐져 욕을 받는 것이고, 그 다음은 죄수복을 갈아입음으로 욕을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형틀에 밧줄로 묶여서 채찍으로 매질을 당하며 욕을 받는 것이고, 그 다음은 머리를 깎이고 목에 견고한 쇠를 두르며 욕을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맞아서 살갗을 훼손당하고 수족을 잘리므로 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악은 궁형이라는 극형을 받는 것입니다(사형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기 때문).
傳曰, 刑不上大夫, 此言士節不可不勉勵也.
옛글에 전해져 오기를 “형벌은 위로 대부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선비가 절개를 힘써 지키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猛虎在深山, 百獸震恐, 及在檻穽之中, 搖尾而求食, 積威約之漸也.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에 있으면, 모든 짐승이 떨면서 두려워 하지만, 구덩이에 빠져있게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하게 됩니다. 이것은 위엄의 약해진 것이 점점 쌓여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故士有畵地爲牢, 勢不可入, 削木爲吏, 議不可對, 定計於鮮也.
그러므로 선비는 땅 위에다 그림을 그려 감옥이라 한다 해도 선비의 기개로서 그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나무를 깎아 형리(刑吏)로 삼아 심문할지라도 그에게 대꾸해서도 안 됩니다(장난으로라도 선비가 굴욕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말). 따라서 형벌을 받아 죽어 없어지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마음속에 미리 결정을 내리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今交手足, 受木索, 暴肌膚, 受榜箠, 幽於圜牆之中, 當此之時, 見獄吏則頭槍地, 視徒隸則正惕息.
저는 당시에 손발이 엇갈려 묶이고, 나무칼에 동아줄로 묶였으며, 살갗을 다 드러내고, 채찍으로 매질을 당했으며, 담장으로 둘러쌓인 감옥 깊숙히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면, 옥리를 볼 때마다 머리를 창처럼 땅에 밖아 조아리고, 같은 죄수 무리들을 보면 곧바로 두려워 숨이 막힐 지경이 됩니다.
何者, 積威約之勢也, 及以至是, 言不辱者, 所謂强顔耳, 曷足貴乎.
왜 그렇겠습니까? 위세가 약해진 것이 쌓여서 만들어진 모양일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 치욕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소위 뻔뻔스러운 사람입니다. 어찌 그를 귀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且西伯伯也,拘於羑里, 李斯相也,具于五刑, 淮陰王也,受械於陳, 彭越․張敖,南面稱孤, 繫獄抵罪.
또 말씀드리자면, 서백(西佰)은 백작이었지만 유리(羑里)라는 곳에 갇혔었고, 이사(李斯)는 진(秦)나라 재상이었지만, 오형(五刑)을 다 받았습니다. 회음후(淮陰侯)인 한신(韓信)은 왕이었지만 진(陳)이라는 곳에서 형틀에 묶이는 신세가 되었고, 팽월(彭越)과 장오(張敖)는 남면 (南面)하여 왕 노릇을 하였으나 감옥에 갇혀 죄를 받았습니다.
絳侯誅諸呂, 權傾五伯, 囚於請室, 魏其大將也, 衣赭衣, 關三木, 季布爲朱家鉗奴, 灌夫受辱於居室.
강후(絳侯) 주발은 반란을 일으킨 여씨(呂氏)들을 베어 권력이 오패(五覇)를 능가하였으나 나중에 감옥에 갇혔고, 위기후(魏其侯)는 대장군(大將軍)이지만 붉은 죄수복을 입고 목과 수족에는 세 개의 형구가 채워졌습니다. 계포(季布)는 주가(朱家)에 의탁해 목에 칼을 쓴 죄수가 되었고, 관부(灌夫)는 거실(居室)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此人皆身至王侯將相, 聲聞鄰國, 及罪至罔加, 不能引決自裁, 在塵埃之中, 古今一體, 安在其不辱也.
이 사람들은 모두 왕후장상의 지위에 이르렀고, 그 명성이 이웃나라까지 들리게 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 갇히게 되었을 때 결단하여 즉시 자결하지 못하고, 감옥의 먼지 속에서 수형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어찌 거기 처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았습니까?
由此言之, 勇怯勢也, 强弱形也, 審矣, 何足怪乎, 夫人不能早自裁繩墨之外, 以稍陵遲, 至於鞭箠之間, 乃欲引節, 斯不亦遠乎.
이로써 말씀드리건대, 용기와 비겁은 형세에 의한 구별이고, 강함과 나약함은 형편에 의한 구별일 뿐입니다. 살펴보건대, 이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대저 사람은 법에 의해 처벌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인지를 일찌감치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가벼이 여기다가 늦어져 기회를 놓치고, 태형을 당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절개를 지키고자 한다면, 이는 멀어져 물 건너간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古人所以重施刑於大夫者, 殆爲此也, 夫人情莫不貪生惡死, 念父母, 顧妻子,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
옛 사람들이 대부에게 형벌을 시행할 때 신중을 기했던 바는, 대부분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리에 지극히 감동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부득이한 정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今僕不幸, 早失父母無兄弟之親, 獨身孤立, 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
지금 저는 불행히도 일찍이 부모님을 잃었고 형제의 친밀한 도움도 없이 홀로 외로이 살아왔습니다. 소경(少卿)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에 대해서는 어떤 것 같다고 여기십니까?
且勇者不必死節, 怯夫慕義何處不勉焉, 僕雖怯懦, 欲苟活, 亦頗識去就之分矣, 何至自沈溺縲紲之辱哉.
또 용감한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절개를 지켜 죽을 필요는 없는 것이며, 유약한 사람이라도 의(義)를 사모하면 어떤 처지에서도 힘쓰지 아니하겠습니까? 제가 비록 겁이 많고 유약하여 구차하게 살았습니다만, 물러감과 나아감의 명분도 자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포승에 묶이고 착고에 채워지는 치욕에 스스로 빠져들어 가야만 했겠습니까?
且夫臧獲婢妾, 由能引決, 況僕之不得已乎, 所以隱忍苟活, 幽於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陋沒世, 而文采不表於後世也.
또한 저 천한 남녀종들이나 미천한 첩도 능히 자결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제가 부득이하게 자결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제가 속마음을 감추고 욕됨을 참으며 구차하게 목숨을 보존하면서, 더러운 흙먼지의 감옥에 갇힘을 사양하지 않은 것은, 나의 마음속에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이 있음을 한스럽게 여겨서입니다. 곧 만일 제가 비루하게 죽어버린다면 후세에 문장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한이 되기 때문입니다.
古者, 富貴而名摩滅, 不可勝記, 唯倜儻非常之人稱焉, 蓋文王拘而演周易, 仲尼厄而作春秋.
예전에, 부귀하면서도 이름이 소멸된 인물이 기록할 다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오직 기개가 있고 뜻이 커서 남에게 매이지 않는 비범한 인물만이 일컬어질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문왕(文王)께서 구금되시어 주역(周易)을 풀이하셨고, 공자(孔子)께서는 불행할 때 춘추(春秋)를 저술하셨습니다.
屈原放逐, 乃賦離騷, 在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脚, 兵法脩列, 不韋遷蜀, 世傳呂覽, 韓非囚秦, 說難孤憤, 詩三百篇, 大抵聖賢發憤之所爲作也.
굴원(屈原)은 추방을 당하고서 비로소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이 눈이 먼 후에 마침내 국어(國語)가 있게 되었습니다. 손자(孫子)는 슬개골(膝蓋骨)을 잘린 후에 병법을 더욱 깊이 연구하여 가르쳤으며, 여불위(呂不韋)가 촉에 유배되어 옮겨간 후에 여씨춘추(呂氏春秋)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한비자(韓非子)는 진나라에 갇힌 뒤에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지었고, 시경 삼 백편도 대개 성현께서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此人皆意有鬱結, 不得通其道, 故述往事, 思來者, 乃如左丘無目, 孫子斷足, 終不可用, 退而論書策, 以舒其憤, 思垂空文以自見.
이 사람들은 모두 가슴 속이 답답하고 맺힌 바가 있어 그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뜻을 이해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는 좌구명이 눈을 잃고 손자가 다리를 잘리고서 한 일들과 같습니다. 이들은 끝내 관리로 임용되지 못하자 물러나 책을 썼습니다. 이로써 마음속의 울분을 풀고, 자신의 생각이 담겨있으나 (실제로 자신이 등용되어) 실천할 수는 없는 글을 세상에 남겨 이로써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僕竊不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略考其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紀.
저는 불손한 줄 알고는 있으나 남모르게, 근래 들어 스스로 실력도 없는 저의 글 솜씨에 의탁해서, 세상에 잃어버린 옛날 이야기들을 망라하여, 그 사실을 간략하게 고증하고, 원인과 결말을 종합하여, 성공(成功)과 실패(失敗), 흥성(興盛)과 쇠망(衰亡)의 이치를 상고하고 있습니다.
上計軒轅, 下至于玆, 爲十表, 本紀十二, 書八章, 世家三十, 列傳七十, 凡百三十篇, 亦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위로는 헌원(軒轅) 황제(黃帝)를 헤아려 넣고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표 10편으로 하고, 본기 12편, 서 8장,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도합 130편을 지어 또한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관계를 궁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살펴, 한 개인이 보는 역사의 글을 이루려 했습니다.
草創未就, 會遭此禍, 惜其不成, 是以就極刑而無慍色, 僕誠以著此書, 藏諸名山, 傳之其人, 通邑大都, 則僕償前辱之責.
그러나 초고를 시작하여 다 쓰기도 전에, 이런 화를 만나게 되었으므로 일을 끝내지 못할 것을 애석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궁형이라는 극형을 받는 데까지 갔으나 노여운 기색을 나타낼 수만 없었습니다.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함으로서 명산에 보관해 두었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촌락과 큰 도시에 유통되게 한다면, 저는 이전에 치욕적으로 받은 책벌에 대해 보상받는 것입니다.
雖萬被戮, 豈有悔哉, 然此可爲智者道, 難爲俗人言也, 且負下未易居,下流多謗議.
그렇다면 비록 수만 번 죽임을 당해도, 어찌 회한이 있겠습니까(비록 궁형을 받고 치욕스런 삶을 살았지만 역사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이런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속인들에게 말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또 말씀드리자면, 죄명(罪名)을 쓴 처지에서 속인들과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하류배(下流輩)는 비방하는 말만 많기 때문입니다.
僕以口語遇遭此禍, 重爲鄕里所戮笑, 以汙辱先人,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 雖累百世, 垢彌甚耳.
제가 말로써 이러한 화를 만났고, 다시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더러움으로써 조상을 욕되게 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의 묘소를 다시 찾아 가겠습니까? 수많은 세월이 흐른다 해도, 수치만 더 심해질 뿐입니다.
是以腸一日而九迴, 居則忽忽若有所亡, 出則不知其所往, 每念斯恥, 汗未嘗不發背沾衣也.
이로 인하여 창자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뒤틀리며, 집에 있으면 갑자기 정신이 몽롱하여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고, 문을 나가서는 가야 할 곳을 모르기도 합니다.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등에서 흘려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身直爲閨閤之臣, 寧得自引於深藏岩穴邪, 故且從俗浮沈, 與時俯仰, 以通其狂惑.
몸이 궁중의 내시와 같이 되었으니, 깊은 바위 굴속에 깊이 감춰진 것과 같은 상태에서 어떻게 스스로 끌어내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풍속을 쫓아 부침하고, 때에 따라 처신하면서, 그럭저럭 미쳤거나 미혹된 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今少卿乃敎以推賢進士, 無乃與僕私心刺謬乎, 今雖欲自雕琢曼辭以自飾, 無益於俗, 不信, 適足取辱耳.
지금 소경(少卿)께서는 도리어 저를 가르치시기를 현인을 추천하여 벼슬로 나가도록 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아무래도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위배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제가 비록 스스로를 다듬고 아름다운 말로써 스스로를 꾸미고자 한들,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사람들도 불신할 것이니, 욕을 받는 일을 당하기에나 충분할 것입니다.
要之, 死日然後是非乃定, 書不能悉意, 略陳固陋, 謹再拜.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죽은 후에나 옳고 그름이 비로소 가려질 것입니다. 글로는 모든 생각을 표현할 수 없지만, 고루한 생각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삼가 재배드립니다.
(解說)
보임안서 (報任安書) 혹은 보임소경서 (報任少卿書)는 사마천이 자신의 친구인 임안(字:少卿)에게 보낸 유명한 서신이다.
사마천이 낭중의 벼슬에 오르면서 같은 직위의 이릉을 만나게 되었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이릉이 죄를 지었을 때 이를 변호하다 황제에게 미움을 사 투옥되었다.
궁형의 치욕스런 형벌을 받고 다시 태사령이 되어 발분하여 사기를 완성시킬 무렵, 옛 친구 임안이라는 장수가 황제와 태자간의 무고(巫蠱)의 난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되자 임안에게 보낸 서한이 보임소경서다(報任安書라고도 한다).
사마천은 형을 받은 후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불만과 울분의 심경을 서한에서 오히려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비장하게 서술하고 있다.
(註)
임안(任安) : 자는 소경(少卿). 형양(滎陽) 사람으로 청년시절 매우 가난하였으나, 후에 대장군 위청(衛靑)의 시종(侍從)이 되어다가 그의 추천으로 낭중(郎中)이 되었다. 그후 관직은 익주자사(益州刺使)에 이르렀다.
기원전 91년, 여태자(戾太子)의 반란, 즉 무고(巫蠱)의 난이 발생하였다. 당시 임안은 경성(京城) 금위군(禁衛軍)의 북군(北軍)을 관리하는 군관으로 있었다.
그는 여태자의 출동 명령을 받고도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북군의 한 말단 관리의 모함으로 이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처형될 상황이 되었다.
임안은 처형되기 전에 사마천에게 구원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사마천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답장마저도 제때에 하지 못하였다. 그해 겨울, 임안은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에 처해지고 말았다.
▶️ 輕(가벼울 경)은 ❶형성문자로 軽(경)의 본자(本字), 䡖(경)은 통자(通字), 轻(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수레 거(車; 수레, 차)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巠(경; 세로로 곧게 뻗은 줄)로 이루어졌다. 곧장 적에게 돌진하는 전차, 경쾌한 일, 가벼움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輕자는 '가볍다'나 '가벼이 여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輕자는 車(수레 차)자와 巠(물줄기 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巠자는 방직기 사이로 날실이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방직기 사이로 실이 가볍게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巠자에 車자가 결합한 輕자는 '수레가 가볍게 지나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輕자에서 말하는 '가볍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 마차의 중량이 '가볍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輕자는 단순히 '가볍다'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輕(경)은 (1)가벼운 중량(重量)이 비교적 가벼운 육중하지 않은의 뜻 (2)경쾌(輕快)하고 간단한 등의 뜻으로 ①가볍다 ②가벼이 여기다 ③가벼이 하다 ④업신여기다 ⑤천(賤)하다 ⑥빠르다 ⑦성(姓)의 하나 ⑧가벼이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거울 중(重)이다. 용례로는 죄인을 가볍게 처분함을 경감(輕勘), 가볍게 다침을 경상(輕傷), 가벼운 홀몸을 경단(輕單), 가벼운 정도를 경도(輕度), 언행이 가볍고 방정맞음을 경망(輕妄), 아주 작고 가벼움을 경미(輕微), 기분이 가볍하고 유쾌함을 경쾌(輕快), 경솔하게 행동함을 경거(輕擧), 움직임이 가뿐하고 날쌤을 경첩(輕捷), 덜어내어 가볍게 함을 경감(輕減), 가벼운 범죄 또는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을 경범(輕犯), 언행이 진중하지 아니하고 가벼움경솔(輕率), 언행이 경솔하고 천박함을 경박(輕薄), 가볍게 봄을 경시(輕視), 가벼운 무게를 경량(輕量), 가벼움과 무거움을 경중(輕重), 하는 짓이나 태도가 들뜨고 경솔함을 부경(浮輕), 줄이어 가볍게 함이나 등급을 낮춤을 감경(減輕), 일이 가볍지 아니함을 비경(非輕), 남에게 경멸을 당함을 견경(見輕), 가볍지 아니함을 불경(不輕), 말이 가볍고 방정맞음을 언경(言輕), 말이나 몸가짐 따위가 방정맞고 독실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박자(輕薄子), 가볍고 망령되게 행동한다는 뜻으로 도리나 사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경솔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경거망동(輕擧妄動), 경쾌한 수레를 타고 익숙한 길을 간다는 뜻으로 일에 숙달되어 조금도 막힘이 없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경거숙로(輕車熟路),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패배함을 일컫는 말을 경적필패(輕敵必敗), 가벼운 가죽옷과 살찐 말이라는 뜻으로 부귀영화를 형용해 이르는 말을 경구비마(輕裘肥馬), 마음이 침착하지 못하고 행동이 진중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경박부허(輕薄浮虛), 무슨 일에나 승낙을 잘 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적어 약속을 어기기 쉽다는 말을 경낙과신(輕諾寡信), 마음이 침착하지 못하고 행동이 신중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경조부박(輕佻浮薄), 경망하여 예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경이무례(輕而無禮), 제 것을 남에게 잘 주는 이는 무턱대고 남의 것을 탐낸다는 말을 경시호탈(輕施好奪), 재주는 있으나 경박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박재자(輕薄才子), 조그마한 일에 후한 답례를 함을 이르는 말을 경사중보(輕事重報),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많이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구부러뜨릴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적은 힘이라도 일치 협력하면 강적에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을 군경절축(群輕折軸),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도로 솟는다는 뜻으로 웃 사람이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말을 듣지 않게 된다는 말을 퇴경정용(槌輕釘聳), 목숨을 의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뜻으로 의로움을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鴻(기러기 홍/원기 홍)은 ❶형성문자로 鸿(홍)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크다의 뜻을 가지는 江(강, 홍)으로 이루어졌다. 큰 새의 뜻으로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鴻자는 '큰 기러기'나 '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鴻자는 江(강 강)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기러기는 물가에서 먹이 잡기를 하니 江자와 鳥자의 결합은 적절한 조합으로 보인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鴻자를 보면 工(장인 공)자와 鳥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기러기'를 뜻하기 위해 工자가 발음역할로 쓰인 것이다. 후에 소전에서는 工자가 江자로 바뀌면서 오히려 기러기의 특성과 더 잘 어울리게 되었다. 鴻자는 때로는 '크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鴻자가 다른 새들보다 큰 기러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작은 기러기는 雁(기러기 안)이라고 한다. 그래서 鴻(홍)은 ①기러기, 큰기러기 ②홍수(洪水),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③원기(元氣) ④성(姓)의 하나 ⑤크다 ⑥넓다 ⑦성하다, 번성하다 ⑧굳세다, 강하다 ⑨같다, 같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러기 안(雁)이다. 용례로는 배운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은 사람을 홍학(鴻學),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를 홍안(鴻雁), 기러기의 털을 홍모(鴻毛), 큰 뜻을 홍지(鴻志), 큰 행운을 홍희(鴻禧), 넓고 큰 은혜를 홍은(鴻恩), 크나 큰 공로를 홍공(鴻功), 크고 작은 기러기들이 돌아옴을 홍귀(鴻歸), 넓고 큰 덕 또는 그런 덕을 가진 사람을 홍덕(鴻德), 크고 넓은 계획을 홍도(鴻圖), 큰 명예나 더 없이 밝음을 홍명(鴻明), 큰 기러기의 우는 소리를 홍성(鴻聲), 넓고 큰 은혜를 홍자(鴻慈), 큰 절조를 홍절(鴻節), 뛰어나게 잘된 글을 홍필(鴻筆), 배운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홍박(鴻博), 큰 사업을 홍적(鴻績), 큰 은혜를 홍택(鴻澤), 큰 기러기와 고니라는 뜻으로 곧 큰 인물을 비유한 말을 홍곡(鴻鵠), 큰 기러기가 아래로부터 차차 위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차례를 따라 벼슬이 올라감의 비유한 말을 홍점(鴻漸),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이라는 뜻으로 영웅 호걸의 뜻이나 원대한 포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홍곡지지(鴻鵠之志), 점점 높이 날아 하늘위까지 날 수 있는 큰기러기의 날개라는 뜻으로 점차 높은 자리에 오르는 유위한 재능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홍점지익(鴻漸之翼), 글을 배우면서 마음은 새를 잡는 일 따위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마음이 엉뚱한 곳에 있어 일이 몸에 배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홍곡장지(鴻鵠將至) 등에 쓰인다.
▶️ 毛(터럭 모)는 ❶상형문자로 芼(모)는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눈썹이나 머리털이나 짐승의 털 모양으로, 본디는 깃털의 모양이라고도 하지만, 老(로)의 옛 자형(字形)의 머리털을 나타내는 부분과 닮았다고 한다. ❷상형문자로 毛자는 '털'을 뜻하는 글자이다. 毛자는 본래 새의 깃털을 그린 것으로 금문에 나온 毛자를 보면 양 갈래로 뻗어있는 깃털이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毛자는 새나 사람, 짐승의 털을 포괄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털처럼 보이는 것까지 毛자가 쓰이고 있어 사용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 상용한자에서는 毛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는 단 1자밖에 없지만, 부수 이외에 글자에서는 모두 '털'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毛(모)는 (1)동물의 몸에서 깎아낸 섬유(纖維). 털 (2)십진(十進) 급수(級數)의 단위(單位)의 하나. 이(厘)의 아래, 곧 이(厘)의 10분의 1이며 분(分)의 100분의 1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터럭(몸에 난 길고 굵은 털), 털 ②모피(毛皮) ③희생(犧牲) ④짐승 ⑤풀(=芼), 식물 ⑥나이의 차례(次例) ⑦털을 태우다 ⑧잘다, 자질구레하다 ⑨가볍다 ⑩없다 ⑪가늘다 ⑫가려 뽑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터럭 호(毫), 터럭 발(髮)이다. 용례로는 털이 붙어 있는 짐승의 가죽을 모피(毛皮), 사람의 몸에 난 온갖 털을 모발(毛髮), 털구멍을 모공(毛孔), 털실로 짠 피륙을 모직(毛織), 털뿌리를 모근(毛根), 털뿌리가 살갗 밖으로 나온 부분을 모간(毛幹), 담요를 모포(毛布), 모피의 털이 붙어 있는 겉면을 모면(毛面), 털로 만든 물건을 모물(毛物), 털 가진 짐승을 모족(毛族), 털로 만든 방한구를 모구(毛具), 털끝 만한 작은 일이나 죄를 하나하나 들추어 냄을 모거(毛擧), 온 몸에 털이 많이 난 사람을 모인(毛人), 짐승의 몸에 난 털의 길이를 모장(毛長), 몸에 털이 있는 벌레를 모충(毛蟲), 땅이 메말라서 곡물이나 푸성귀 같은 농작물이 잘 되지 아니함을 불모(不毛), 다리에 난 털을 각모(脚毛), 털이 빠짐 또는 그 털을 탈모(脫毛), 몸에 털이 많음을 다모(多毛), 빽빽하게 난 털을 밀모(密毛), 콧구멍의 털을 비모(鼻毛), 털을 옮겨 심음을 식모(植毛), 가는 털을 호모(毫毛), 뿌리의 끝에 실같이 가늘고 부드럽게 나온 털을 근모(根毛), 얼굴에 난 잔털을 면모(面毛), 털을 깎음을 삭모(削毛), 머리털을 물들임을 염모(染毛), 묵은 털이 빠지고 새 털이 나는 일을 환모(換毛), 모수가 스스로 천거했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추천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모수자천(毛遂自薦), 아주 끔직한 일을 당하거나 볼 때 두려워 몸이나 털이 곤두선다는 말을 모골송연(毛骨悚然), 새의 깃이 덜 자라서 아직 날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 어림을 이르는 말을 모우미성(毛羽未成), 배와 등에 난 털이라는 뜻으로 있으나 없으나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복배지모(腹背之毛), 일의 가닥이 자차분하고도 어수선함을 비유하는 말을 잠사우모(蠶絲牛毛), 털만으로 말의 좋고 나쁨을 가린다는 뜻으로 겉만 알고 깊은 속은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이모상마(以毛相馬)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