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유금란
괌 실탄사격장
주인은 총알값부터 내라고 했다
계급장이 있던 자리에 낡은 웃음이 지나갔다
귀를 막고
안전줄을 믿어보세요
총은 쏘는 게 아니라 잡아당기는 겁니다
안전줄이 목숨 줄로 들렸다
목숨 줄을 쥐고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
저격수가 되는 안내문이 달콤하다면
오늘쯤은 없애볼 만하다는 거다
본 적 없는 생각과
본 적 있는 눈코입이 한 줄로 꿰어졌다
되돌릴 수 없을 만큼의 방향과
돌이킬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사랑은 붙잡는 게 아니라
위험한 방아쇠를 내 심장 쪽으로 당기는 것
내가 먼저 숨을 멈추는 것
손끝에서 얼음이 부서지고
멈춘 숨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따당 탕 탕 탕
아름다운 신부가 사라졌다
노래가 사라졌다 이름이 사라졌다
어제가, 오늘이, 한순간이
사라졌다
구멍 숭숭 뚫린 가슴이 코앞에서 흔들거렸다
화약 냄새 자욱한 검붉은 밀실에서
그렇게 내가 죽었다
고작 미화 60달러에
웹진 『시인광장』 2023년 8월호 발표
유금란 시인
2021년 계간 《시산맥》을 통해 등단. 동주해외신인상 수상. 제 11회, 16회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산문집『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5인 작품집『바다 건너 당신』이 있음. 현재 『문학과 시드니』 편집주간.
[출처] 신혼여행 - 유금란 ■ 웹진 시인광장 2 023년 8월호 신작시 □ 2023년 8월호 ㅣ 2023, August ㅡ 통호 172호 ㅣ Vol 172|작성자 웹진 시인광장